정정호 / 영어영문학과 교수

파국의 시대를 위한 ‘희망’의 인문학

엉망이 된 시대, 아, 이 저주스러운 실패,
내가 그것을 바로 잡으려 태어나다니.
(『햄릿』 1막 5장 196-197행)

  올해 한국에서는 큰 재앙이 터졌다. 4월에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참사는 군대의 총기 난사사건, 윤 일병 구타사망사건, 송광호 의원 구속 동의안 부결 등의 사건으로 이어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압축근대화와 초고속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누적되었던 한국사회의 위기와 재앙들이 파국의 시대의 예고편인가? 이 중에서도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로 치달아온 한국사회의 가장 징후적인 사건이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중층적으로 누적되었던 모든 문제가 판도라 상자처럼 한꺼번에 터진 형국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참사를 통해 우리 자신들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조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결국, 모든 위험과 재난의 원인은 우리 자신들 즉 인간의 문제로 귀착된다. 한국사회와 문화를 주재하고 운영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들이 아닌가? 이런 사태 속에서 인문 지식인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나겳痢??과연 누구인가?’라는 간단하지만,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자. 그동안 우리는 개발과 발전신화, 무한경쟁과 업적주의, 승자독식주의, 천민자본주의 등에 철저히 침윤되어 우리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과 비판도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 이러한 한국적인 위기와 사건에서 겸손과 두려움으로 우리 자신의 내면에 대한 철저한 사유와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태에 대한 치유와 회복을 위해 인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인문학을 통한 상상력의 교육과 배양만이 지혜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 P. B. 셸리에 따르면 상상력은 타자에 대한 사랑이며 도덕의 요체이다. 상상력을 통해 이웃과 공감하고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타자되기가 가능하다. 사르트르는 타자를 지옥이라고 언명한 바 있지만, 타인은 우리가 화이부동의 정신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운명체의 이웃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의 모든 사고와 위험은 모두 자기 자신과 집단의 이익만을 맹목적으로 생각하는 데서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희망 없는 개인과 사회는 방향을 잃은 난파선이다. 인문 지식인들은 인간의 상상력 복원을 통해 조용히 변혁과 쇄신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인문학은 현 사태에 대한 즉시 처방이나 만병통치약을 제시할 수 없다. 변화와 개혁은 오래 걸리는 혁명의 시작이다.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공동체를 위한 희망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자기 절제와 각고의 인내로 변혁을 꿈꿀 수 있다. 작금의 사태들이 난국으로 치달아 파국에까지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파국으로의 접근은 새로운 시작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파국이 가져다주는 축복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야말로 서서히 메말라 가고 있는 인간성과 날로 광포해지는 문명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의 해독제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