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승 / 사진학과

나의 목소리가 들려 

  어렸을 적 농담 삼아 친구들과 이런 얘기 한 번쯤은 나눠 본 적 있을 것이다. 일찍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늦게 결혼하게 되고, 늦게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일찍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땐 결혼이라는 것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시기였기 때문에 과연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부푼 희망으로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어느덧 삼십 대 초반이 되어 결혼이라는 것이 당장 내 앞에 놓인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남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인생의 어느 때들을 놓치거나 혹은 미뤄두게 되면서 저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와 보니 모든 것엔 때가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어떤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매우 운명론적인 해석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런 운명도 결국은 나의 작은 바람과 어떤 의지가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겠지만 막상 어떤 ‘때’를 만나면 그런 과정들 보다 운명적인 강한 끌림을 먼저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이 결국 이때를 위해 존재했단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나는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에서 몸이 닳게 원했고 그래서 그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노력하고 시도했지만 결국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놓쳤고 혹은 실패했으며 결국 포기한 일이 있었다. 또 어떤 일은 너무 어려울 것 같았지만, 그 과정이 매우 자연스러웠고 그래서 힘들다고만은 생각하지 않게 되었으며 불가능할 것만 같던 문제들을 만나도 의외의 해결점을 찾게 되어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를 수 있으며 또 어쩌면 내게 맞는 것들은 이미 어떤 식으로든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어떤 값진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현재에 숨겨진 가치를 찾아냄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감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의 나를 돌보고 확인하며 원하는 것을 차근차근 채워나가면서 쌓이는 하루하루가 주는 작은 행복은 그 어떤 만족감보다 값지다고 말하고 싶다. 현재에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가꿔나가는 것이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가장 완벽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이 반드시 어떤 결과를 동반할 거라는 무모한 믿음은 때론 돌이킬 수 없는 좌절과 일방적인 상처만 남길 수도 있다. ‘노력하면 다 된다’는 식의 마인드는 일종의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도록 강요한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 놓은 현재의 우리를 보자. 과연 지금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혹은 이룬 것은 무엇이며 그래서 인생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어떤 것을 찾았는가? 아니, 그런 생각을 해 볼 여유는 있었는가? 명확하고 분명한 목표만이 전부는 아니다. 또 그것을 어떤 때에 이루어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 어떤 상황 앞에 놓인 나를 마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