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모범시민>, 그리고 남겨진 자들


  올여름, 한국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아마도 교황의 방한이었을 것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4박 5일간 한국에 머무르면서 수많은 명언과 이슈를 남겼다. 세월호의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의 말을 전했고, 청년들에게는 깨어나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장애 아동들도 만났다.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서도 그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지만, 성직자로서 가족을 잃은 사람의 고통과 대면한 자리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으며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랐다”고 말했다. 이렇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제에 귀 기울이는 그의 모습은 한국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권력자들의 일방적인 소통 방식과 권위적인 태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에 지쳐있던 한국인에게 그의 모습은 더더욱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종종 박근혜와 비교되었다. 교황이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이 가진 힘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통해 어떻게든 문제를 덮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권력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지금 요구하는 것은 중립을 지키려는 권력자가 아니라 낮은 자들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는, 소통하는 권력자였다.
  신의 대리자, 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인 교황의 방문은 한국 땅에 신이 다녀간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제어할 수 없는 자연적인 재해를 신에게 기도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해왔다. 니체에 의해 신의 공식적인 죽음이 선언되고, 신을 지식(혹은 과학)이 대체해감에 따라 우리는 인간들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을 터득해왔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발생한 여러 사회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된 듯하다.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그것에 대항하기에는 한없이 작은 자신의 힘을 깨달았을 때, 우리에게 교황이라는 신의 대리자가 등장한 것이다. 마치 영화 <밀양>(2007, 이창동)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신의 존재가 인식되었듯이.
  신에 의지하지 않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결을 살펴보자. <모범시민>(2009, F.그레이)이라는 영화에서는 강도들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은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인 강도들과 그들을 처벌하지 않은 공권력에 무자비한 복수를 감행한다. 영화 초반, 복수에 초점이 맞춰진 그의 범죄 행동은 후반으로 갈수록 악인에 대한 심판에 가까워진다. 인간이 만든 제도의 허술한 부분에 의해 풀려난 죄인과 그 허술한 제도에 타협한 검사, 판사 등이 그에게 처단된다. 이 모범시민은 신에 의지하는 대신 무능한 공권력에 대항해 스스로 신이 되는 길을 택했다.
  교황이 만난 사람들도 <모범시민>의 주인공과 같이 억울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공권력의 무능에 좌절하고 있었고, 그에 더해 그 억울함을 덮고 무마하려는 공권력의 더러움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해소할, 영화 주인공이 가지고 있었던 실질적인 힘이 없었다. 교황을 만나 흘린 이들의 눈물은 자신들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던 권위와는 대비되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낮은 자를 돌보는 또 다른 권위에 대한 감동의 눈물이었다. 많은 한국인들은 그의 권위에 의지하고 위로받았으며, 그의 권위와 한국의 권위를 대조시키면서 권위의 밝은 면을 보았고 한 줄기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교황은 떠났고 한국의 권위는 남았다. 그들은 떠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사회문제도 그들의 무능력과 비리도 우리와 함께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신이 필요할 때마다 비를 내리고 번개가 빚나가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니다. 신에 의지함으로써 위로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면 신의 역할은 거기서 끝난다. 인간에게 닥친 문제는 인간이 해결해야 하듯이 우리 앞에 놓인 문제 또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모범시민>의 주인공이 되는 길을 택하여 공권력에 대항한 무자비한 테러를 저지를 수는 없다. 또한 선한 자가 권위를 잡기를 기도하는 것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프란체스코 교황 같은 사람이 권력을 잡든, 지금 한국의 문제되는 자들이 권력을 잡든 옳은 방향으로 권력이 행사되는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남겨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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