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엽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초기 비디오게임 아카이브

 
 

  한국은 게임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을 가진 나라이다.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만화 시장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10조 정도의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게임의 산업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정부와 학계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청소년의 학업을 방해하고 중독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사회겧??岵?관점에서 보아도 한국에서 게임은 만화나 애니메이션과 더불어 하위문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취급을 받아왔다. 셧다운제 논란이나 게임 중독에 관한 법률과 관련한 정치권과 정부의 문제 제기만 보아도 이러한 이중적인 시선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해외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국내와는 사뭇 다르다. 2011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성년자들에게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캘리포니아 주의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안토닌 스칼리아 판사는 게임을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하고 책이나 문학작품, 연극처럼 언론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듬해 미국 워싱턴의 세계 최대 박물관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비디오 게임 예술을 주제로 80개 이상의 유명 비디오 게임에 관한 전시회를 진행했다. 이외에도 비디오 게임을 예술로 간주하여 그 계보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호주 멜버른의 ACMI, 독일 베를린의 컴퓨터 게임 박물관(Computer Spiele Museum), 미국 뉴욕의 MoMA, 이탈리아 로마의 ViGaMus 등으로 확산되었다. 이 미술관들은 비디오 게임이 일종의 미디어 차원을 넘어서 개인의 표현성과 사상이 집약된 예술로 간주하고, 이들을 정리하고 보관하는 아카이빙 작업에 착수했다. 다시 말해 게임을 보존하고 전수해야 할 가치 있는 존재로 처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에 한국에서도 처음으로 비디오 게임을 소재로 다룬 박물관이 생겨나고 이를 바탕으로 일반 미술관 등에서도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와 접목하여 게임을 전시에 올리는 사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는 2012년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와 더불어 1세대부터 7세대까지의 게임 콘솔을 수집하고 게임 수천 종을 아카이빙하여 관람객들이 직접 플레이할 수 있게 한 전시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개최한 바 있다. 국내외의 여러 게임들을 계보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플레이할 수 있게 전시한 사례는 이 전시가 최초이다. 더불어 온라인 게임으로 유명한 넥슨이 2013년 제주도에 설립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실제로는 컴퓨터 박물관이지만 전시의 상당 부분을 게임에 할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국산 게임이자 동시에 세계 최초의 MMORPG인 <바람의 나라>의 1998년 복원판을 전시중이라는 점이다. 이 게임을 전시하는 것이 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하기 위해선 한국 게임 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세계 게임 시장에서 PS4나 XBOX 등의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지만, 국내에서 콘솔 게임은 3%도 채 되지 않는 미미한 시장 규모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신 그 자리를 온라인 게임, 특히 MMORPG가 대체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최근 몇 년간 모바일 게임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70% 가량에 육박한다. 그러나 DVD 디스크나 롬 팩 형태의 유형 디바이스가 존재하는 콘솔게임과는 달리 MMORPG는 무형의 서버-클라이언트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한 시점의 게임을 보존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올해 판교에서 열린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이 게임의 복원을 담당한 넥슨 컴퓨터 박물관과 저스트 나인 측에 따르면 <바람의 나라>는 1996년 처음 출시한 뒤로 1,000회를 넘는 크고 작은 업데이트가 이루어져서 현재 플레이어가 즐기는 <바람의 나라>와 1996년 출시 당시의 <바람의 나라>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때문에 회사 측에서 보관 중인 여러 백업 자료를 바탕으로 새롭게 일체를 프로그래밍하여 거의 출시 상태에 가까운 98년 버전으로 게임을 복원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러한 온라인 게임의 복원 사례가 전무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복원 사례는 게임 아카이빙의 매우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지난 50여 년간의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비디오 게임의 복원과 아카이빙에 힘써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로 유명한 이베이에는 랄프 베어가 1978년에 출시한 인류 최초의 TV와 연결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 콘솔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나 80년대 초반을 주름잡은 아타리 2600 등의 콘솔들이 여전히 콜렉터들을 중심으로 거래되고 있다. 또한 플래닛 에뮬레이션이나 에뮤 파라다이스 같은 게임 에뮬레이션 사이트에는 각각 수십만 종에 가까운 게임 롬들이 정리되어 있어, 레트로 게임을 즐기는 팬이나 게임학자들이 게임을 즐기고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 놓고 있다. 이러한 아카이빙 사이트들은 지난 50여 년간의 비디오 게임 역사를 망라해 놓은 디지털 박물관인 셈이다.


  문제는 한국 게임들도 온라인 게임으로 그 헤게모니가 넘어가기 전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PC 패키지 게임을 열심히 내놓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손노리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1994)>나 <화이트데이(2001)>,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1995)>, 스튜디오 자코뱅의 <디어사이드 3(1997)>같은 훌륭한 PC 게임들을 다시 접할 수 있는 창구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게임들을 연구하고 싶은 게임 연구자들은 중고 시장을 뒤지거나 어둠의 경로를 통해 알음알음 구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상당수의 미국 고전 게임들이 GOG나 스팀스토어를 통해 30년도 지난 게임들을 구입하여 현재의 PC 플랫폼에 맞추어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아카이빙 능력의 차이는 훌륭한 고전에 기반하여 이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경쟁력 약화를 불러온다. 모바일 게임이 돈이 된다고 우후죽순 몰려간 한국 게임 시장은 이제 새로운 인터랙션 메커니즘이나 연출적인 혁신,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당장 시장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카피캣 형태의 모바일 게임들을 양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 좋은 작품이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으려면 그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유무형의 사회적 기반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언제나 말로는 창의성을 내세우며 비디오 게임이 해외로 진출하여 많은 돈을 벌어오길 바라지만, 정작 기본적인 기반 조성과 아카이빙 인프라를 갖추는 데에는 단 한 푼도 쓰질 않았다. 언제나 이러한 아카이빙은 현재의 상황을 답답하게 여긴 몇몇 애호가들이나 게임 회사의 손에 맡겨졌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비단 비디오 게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만든다. 정부의 압박을 통해 몇몇 게임 회사들이 출자하여 출범하게 된 게임문화재단은 그간 해오던 게임 문화 잡지도 폐간해버리고 이제는 현 정부의 입맛에 맞추어 게임 중독 예방에만 재단 예산의 거의 전부를 집행하고 있다. 한 때 불었던 기능성 게임 개발의 붐마저 식어가는 요즘, 게임은 그저 천박한 민낯을 드러내고 나라 밖으로 나가 돈이나 벌어오면 되는 기러기 아빠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될까봐 두렵다. 어떤 문화를 장려하는 좋은 방법은 그 문화를 정리하고 보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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