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혜 / 한예종 영상이론학과 석사

어느 미나리꽝의 풍경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돌이켜 보면, <여정>(2003),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2004)와 같이 이주노동자들이 주인공으로 혹은 카메라를 든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는 2000년대 초중반으로, 이주노동에 대한 한국의 국가 정책이 산업연수생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전환됐던 2003년을 그 기점으로 한다. 새로운 정책 시행을 앞둔 한국 정부는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을 심화했고, 이에 이주노동자들은 단속추방 반대 운동, 노동권 쟁취 운동을 벌여나갔다. 2007년 전면적으로 실시된 고용허가제는 그간 연수생의 신분이었던 이주노동자들을 노동자의 신분으로 전환했지만, 매년 계약 갱신의 필요, 3년 뒤에는 돌아가야 한다는 점 등 연수생 제도에서 발생했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때문에 이 시기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에 있는 노동자가 아닌, 거리에 나온 투사로서 등장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반두비>(2009), <로니를 찾아서>(2009), <방가?방가!>(2010)와 같은 극영화들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들에서 이들은 이방인, 타자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인 친구와의 우정을 나누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등장하는 이 두 가지 영화적 경향 어디에서도 그들이 애초에 한국에 온 이유 즉, 노동을 하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볼 기회는 없었다. 

 
 
  2013년에 개봉한 장률 감독의 다큐멘터리 <풍경>은 14명의 이주노동자들의 꿈(夢) 이야기와 함께 그들이 일을 하는 노동현장의 모습을 기록한다. <풍경>을 본 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몇몇 장면이 있다. 하나는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뜯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여섯시 내 고향’과 같은 TV 프로그램 속, 허리를 숙이고 채소를 돌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대신해 동남아시아에서 온 젊은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여질 때, 그 생경한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던 바 아니지만, 한국 땅에서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데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을 찾기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소 와 닿는 장면이었다. 또 다른 장면은 마장동 축산시장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주로 익힌 소와 돼지를 부위별로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닐 커튼 너머로, 한 노동자가 입에 담배를 문 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익은 살덩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으로 가득 찬 밀폐된 실내작업실의 모습은 그렇게 담배연기라도 뿜어내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국내 농축산업 분야에 제도적인 이주 노동인력의 도입은 건설업이나 어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됐다. 그러나 그 수는 2007년 6천504명에서 2012년 1만6천484명으로 2.5배 이상 증가해 건설업과 어업의 수를 추월하게 되었고,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이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제조업을 제외한 업종에 대해 ‘소수 업종 특화국가’를 운영하고 있는데, 농축산업의 경우는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버마가 특화국가로 선정돼 있고, 이 중에서도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75%를 넘고 있다. 이들은 서울을 제외한 전국 각지 농가와 축가에 고용돼 일을 하고 있으며, 특히 경기도에서 높은 고용 비율이 나타난다. 이는 경기도에 작물재배업이 집중돼 있는 까닭으로,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작물재배업에 주로 고용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농축산어업 노동자에겐 근로기준법 제63조 조항에 의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조항은 농축산업 노동자들에게 휴일과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장시간의 저임금 노동을 합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이것이 이주노동자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2013년에 발간된 국가인권위원회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한 달 평균 283.7시간으로, 하루로 치자면 10시간이 넘는다. 근무시간이 가장 긴 응답자는 경상도의 미나리 재배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캄보디아 남성 노동자들로 한 달에 378시간을 일했다. 이들은 미나리 재배가 한창인 11월부터 5월까지는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끼 10분 내외인 식사 시간을 제하고 15시간 이상을 일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받는 월급을 월 평균 근무 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함은 당연한 일이다. 설문 응답자들은 월 10만6천원 가량의 임금을 덜 받고 있었으며,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월 평균 21.8시간의 무임금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를 계약서상에 사업장과 업무가 아닌 다른 사업장에서 다른 일들을 시키기도 하며 심지어는 다른 고용주나 사업장에 빌려주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일의 강도나 근무시간이 증가하는 것이 다반사다. 또한 지리적으로 외진 시골에 위치하고 있는 사업장의 특성상, 고용주가 마련한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는 대부분이 컨테이너나 패널로 지은 가건물이고 심지어 창고, 헛간인 경우도 있다. 욕실과 침실에 안전한 잠금장치가 없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50%에 육박했고, 남녀 숙소가 분리돼 있지 않은 경우, 모기장 같은 방충시설이 안된 경우도 있었다. 한 응답자의 경우, 재래식 화장실은 변을 퍼내지 않아 더러워서 못 쓰고, 하우스 근처에 있는 화장실은 고용주가 사용하는 것이라 쓰지 못해, 삽으로 구덩이를 파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이들을 노예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풍경>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무엇에 쫓기듯, 혹은 탈출을 하듯 한참동안 달린다. 횡단보도를 지나고 공터를 지나 후미진 골목 깊숙이 들어와 멈춰선 화면으로 가쁘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리고 카메라는 이윽고 하늘을 바라본다. 이는 아마도 앞서 기록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과 그들의 삶의 현실을 목도한 장률 감독의 것임과 동시에, 허리를 펴고 하늘 한 번 쳐다 볼 여력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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