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준아 /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 편집장, 방송작가

은밀하고 위대한 개인의 취향 
<노처녀잡지>

 

 
 

  ‘피부색도 상관없고, 나이와 지역도 상관없고 학력도 상관없다. 갔다 온 사람도 좋으니 제발 좀 가라’는 엄마의 탄식! 저기요, 엄마. 다단계를 해도 저런 건 물어보거든요.
  그러니까, 2012년 나는 노처녀였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결혼적령기는 이미 훌쩍 넘긴 나이라 안팎으로 노처녀 주홍글씨가 아로새겨졌다. 골드미스는 아니었다. 흔한 올드미스였다. 그 나이까지 미혼인 이유가 비혼의 삶을 원했던 때문도 아니었다. 대체, 왜, 나같이 괜찮은 여자가 결혼은 둘째치고 연애조차 하기 어렵나? 순전히 개인적인 의구심에서 <노처녀잡지>는 만들어졌다. 표지에 대놓고 <노처녀잡지>라 박아놓으면, 어느 노처녀가 맘 편하게 펼쳐 들까 싶어, 대외적으로는 우아하면서도 고상하게 사이먼 앤 가펑클의 서정적인 노래 April come she will을 잡지명으로 빌려왔다. July come she will, 7월이 오면 그녀가 올 거야. 그렇게 <노처녀잡지: July Come She Will>은 2012년 7월, 세상에 왔다.
  <노처녀잡지>가 지향하는 바는 이랬다. “대한민국의 3?0대 ‘노처녀’들은 피로하다. 연애불능시대! 결혼파업시대! 단군 이래 가장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는 노처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그렇다. 지금을 사는 내 또래 노처녀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서른이 넘었어도 여전히 산다는 것은 질풍노도이며 아노미였으니까 말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출판의 이유를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덧붙여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는 계기’라고도 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외롭고 갈팡질팡하는 노처녀가 나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거겠지.
  잡지가 발행된 게 7월. 그리고 9월에 연애를 시작했고 이듬해 4월에 나는 결혼했다. 오 마이 갓! <노처녀잡지>의 쾌거라고 해도 좋다. 왜냐하면 <노처녀잡지> 창간호를 만들기 위해 두 달여 동안 동분서주하면서, ‘왜 나는 연애와 결혼이 힘들까?’의 해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개인의 고민에서 시작된 독립잡지는 발행인 자신에게 고민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취업의 문턱에서 번번이 낙방하면서 만들어낸 <월간 잉여>가 그렇고, 사표를 던지고 싶은 직장인의 고뇌가 비정기간행물 <사표>를 만들었다.
  물론 고민의 결말이 ‘결혼’으로 연결되긴 했지만, <노처녀잡지> 편집장이 결혼했기 때문에 단순하게 노처녀의 ‘엔딩’은 ‘웨딩’이라고 정리하는 건 섣부르다. 인생에는 ‘정답’이란 것이 애초에 없으니까 모든 ‘노처녀’의 결말 또한 천편일률적인 스토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NO처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창간호에 이어 <노처녀잡지> 본격 1호를 준비 중이다. 4월 말이면 확인할 수 있다. ‘노처녀’가 아닌 ‘NO처녀’가 얘기하는 <노처녀잡지>, 왠지 어불성설 같다. 하지만 발을 담그고 있을 때 코앞에서 본 풍광, 그리고 걸어 나와 먼발치에서 보는 풍광의 차이라고 하면 어떨까. 게다가 ‘노처녀’에서 ‘NO처녀’가 되니,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더 많아졌다. 어쩌면 이 지점 또한 독립 잡지가 지닌 매력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한 주제를 자유자재로 확장해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날이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한 별의별 독립잡지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아마도 저마다의 ‘소통’을 위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출판을 매개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일 테다. 물론 기존 상업 잡지들도 분야별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고는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취향은 그보다 더 세분되고 내밀해졌다. ‘자기 전에 봐!’야 한다는 <젖은 잡지>는 대놓고 도색잡지를 표방한다. 냄새나는 잡지 <Scent>는 해당 주제의 냄새를 잡지에 담아 비닐로 밀봉해 판매한다. <계간 홀로>는 비연애인구 전용잡지로, 연애하지 않을 자유도 있음을 얘기하고, <구여친 1집>은 실연당한 한 개인의 지질하고도 뒤끝 있는 후일담을 엮었다.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취향으로 발행되는 독립잡지가 어찌 보면 기존 잡지 생태계에서는 돌연변이와도 같다. 이들 잡지는 더욱 많은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덕목으로 하기보다는 소수라 하더라도 은밀하고 세밀한 취향의 소통을 원하기 때문이다. 상업 자본으로부터 ‘독립’함으로서, 주류보다는 비주류, 그리고 다양성과 실험성이라는 목소리를 갖게 된 변종, 독립잡지.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돌연변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변이성이야말로 밭에서 나는 모든 멋진 산물의 원천이다.’ 그렇다. 변종의 탄생이 멋진 생태계를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취향이 더욱 사소한 것에 머물 때, 예측을 빗나간 전혀 새로운 관점의 독립잡지가 나올 가능성이 커지는 법이다. 그리고 독특한 독립잡지의 발행은 출판이라는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단비가 되지 않겠는가.
  덧붙여, 이번에 <노처녀잡지>는 새로운 이름,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으로 본격 1호를 시작한다. <July Come She Will>의 서정성을 버리고 <농>이 된 까닭, 그리고 편집장의 고민이었던 ‘왜 나는 연애와 결혼이 힘들까?’에 대한 해답 역시 4월 말 직접 확인해주길 바란다.

 

 

<노처녀잡지> 주변 이야기

  개인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처음 밖으로 내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독립잡지 제작 안내 강좌들을 통해 자신만의 방향성을 점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독립잡지’의 조상이라 불리는 <싱클레어> 편집장 ‘피터’가 상상마당에서 ‘마가진 가쎄’를 3년째 이끌고 있고, ‘마가진 가쎄’를 통해 배출된 독립잡지 제작자들이 ‘헬로인디북스’라는 강좌를 진행한 바 있다. 또 최근에는 소규모 출판물을 판매하는 ‘스토리지 북앤필름’에서도 독립잡지 제작자들로 구성된 강좌 ‘리틀 프레스’가 시작됐다. 이 강좌들을 통한다면 독립잡지라는 생태계를 이해하고 그곳에 첫발을 내딛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개인의 작업에 박수를 보내는 마음으로, 근래에 본 이색잡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계간 홀로>다. ‘솔로’의 우리식 표현으로 ‘홀로’를 내세워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 전방위, 무정형으로 건드리고 있다. 특히 밸런타인데이, 빼빼로데이, 크리스마스 같은 특정날짜에 발행하며, 통 크게 무료 배포하고 있는데 얼마 전 화이트데이에 발행된 1주년 기념호는 ‘텀블벅’이라는 온라인 펀딩 플랫폼을 통해 잡지 제작비용을 지원받기도 했다. 최근 독립 잡지 트렌드라 할 수 있는 눈부신 퀄리티의 디자인을 지양하고, 구시대적으로 한글 편집을 고집하는 배짱과, 배꼽을 잡게 하는 콘텐츠 대부분을 편집장이 홀로 채운다는 점에서 변종 중의 변종 독립잡지라 소개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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