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 이공계 대학원생

 
 
  A라는 대학원생이 있다. 그 학생의 통장에는 매달 130만 원이 입금된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몫이 아니다. 그의 몫은 50만 원이다. 나머지 80만 원은 ‘연구실 공금조성’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비 담당자에게 반납된다. 그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한다. 실험이 끝나지 않는다면 남들 다 쉬는 주말에도 출근한다. 그는 월급으로 50만 원을 받는다.

  이것은 필자와 가깝게 지내던 본교 대학원생의 이야기이다. 대학원생들의 실태에 대해 잘 모르는 일부 사람들은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편하게 공부나 하면서 몇 년을 보내고 졸업하면 좋은 직장을 얻어서 취직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생활은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원생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 또한,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방학은 없다. 직장인처럼 휴가가 있을 뿐이며, 그것도 지도교수에 따라 기간이 정해진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고, 직장인이 받는 임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이공계 대학원생이 매 학기 지불해야 하는 등록금은 평균 6-700만 원이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하는 많은 대학원생이 있다.

  물론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성적우수 장학금이나, 실험·연구조교 등을 통해 등록금을 충당한다. 하지만 타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지 못하고, 연구실 당 매해 한번씩 단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실험조교 및 연구조교 장학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매달 들어오는 50만 원을 가지고 등록금을 낸다. 그들에게 처음 들어오는 130만 원이 온전히 그들의 것이라면 한 학기 동안 등록금 600만 원을 내고도 180만 원이 남는다.

연구비 통합관리, 내 소유가 아닌 내 통장 

  그럼 매달 80만 원은 어디로 갈까? 일례로 2011년 6월 27일 이낙연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에 발표한 ‘최근 3년간 서울 소재 사립대와 전국 국립대의 연구비 횡령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 유명 사립대 공대교수 B씨는 2007년 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학생연구원의 인건비, 장학금, 출장비 등 7억3천147만 원을 연구실 학생 통합관리 계좌로 돌려받은 뒤 이 중 7천413만 원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적발된 사례가 밝혀졌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통합 관리했다’는 말이다. 실험을 주로 하는 연구실에서는 학교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로는 실험에 필요한 재료 및 장비를 구입하기에 부족하므로, 국가나 기업에서 요구하는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그 대가로 연구비를 받는다. 그 연구비를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연구실 공금 조성’이라는 명분으로 대학원생들의 인건비 통장을 연구비 담당자가 ‘통합 관리’한다. 대학가에서 대학원생의 인건비 통장과 도장을 교수 또는 교수가 지정한 연구원 한 명이 ‘통합관리’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많은 대학원생은 이러한 행동들은 관례라고 생각하고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규정 위반이다.

  작년 10월 한국연구재단이 배포한 ‘국가연구 개발사업 연구비 집행 및 정산’ 교육 자료를 보면, 학생연구원의 개인통장 회수, 인건비 재분배 등 연구책임자 및 연구실 단위의 학생인건비 공동 관리는 규정 위반이라고 명시돼있다. 이런 상황이 적발되면 연구비를 환수하거나 연구 참여를 제한하게 된다. 관례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인건비 통장을 통합 관리함으로써 교수가 중간에서 인건비 일부를 가로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맹점으로 2012년 10월 18일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원생의 안정적 연구 분위기 조성을 위한 인건비 지원제도 개선안’에 대해 발표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기존 대학원생의 인건비가 국가과제 참여율 100%를 기준으로 학사과정 100만 원, 석사과정 180만 원, 박사과정 250만 원 지급 상한선만 제시하여 오던 것을 개선하여 최소 인건비 지급기준을 명시하고, 정부연구비 실지급액을 석사 80만 원, 박사 120만 원 이상의 지급 하한선을 명시하고 보장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만큼 지급받지 못하는 학생의 경우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신고할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대학원생을 연구 현장의 정당한 연구 인력으로 인정하고 대학원생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정식 의제로 삼기 시작한 ‘BK21’사업 이후 처음으로 대학원 인건비 정책을 다시 언급한 점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지만, ‘학생 인건비 현실화’라는 취지에서 보면 연구 현장의 대학원생들의 눈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측면에서 허점이 드러난다. 그중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은 과제에 따른 이공계 학생들의 최저 참여율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생 1인이 낼 수 있는 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상정하고 한 과제에 몰입해야 나오는 수치가 100%의 참여율이다. 이 학생은 코스웍을 마쳐서 수업을 안 들어도 된다고 치자.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 과제 하나에 100% 참여율로 과제를 수행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뤄 볼 때, 과제 2개 진행은 기본이고 심각한 경우 1인이 5개 과제에 참여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참여율의 참여 하한선이 없기 때문이다. 참여율이 1%든 참여율이 100%든 연구과제를 진행하는데 드는 노동력은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그런데 좀 더 많은 과제를 끌어와 더 많은 과제를 학생에게 떠맡길 수 있는 것은 참여율을 교수들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과제의 경우 교수의 최저 참여율을 미리 결정해 교수의 병행과제 개수를 제한하려 했으나 과제의 금액 규모에 비해 최저참여율이 크다는 항의를 받고 현재는 책임연구자의 경우 최대 5개 과제 이내로 선을 그었다. 이 제약은 대학원생에게 동일 적용된다. 교수 입장에서야 과제를 5개밖에 못한다는 내용이지만, 대학원생으로서는 과제를 5개나 할 수 있다는 소리다. 참여율 100%의 인건비를 받기 위해선 결국 과제 5개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경우 지급 하한선과 함께 과제에 따른 학생의 최저 참여율도 보장하는 것을 통해 과제를 5개씩이나 참여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과제에 관한 실험을 수행하는 것도, 국가나 기업에 제출해야 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학생들의 몫이다. 심지어 과제를 따내기 위한 제안서도 학생들이 작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대학원을 운영하는 상당 부분의 재원이 학생의 노동으로 마련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노동으로 인한 대가는 학생들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받는 인건비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충당하기 때문에, 과제를 충분히 ‘따내는’ 것이 지도교수의 의무 중 하나로 인식되는 실정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연구실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인건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박사과정으로 입학하는 학생의 경우에는 지도교수가 될 사람과 인건비에 대한 협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점은 학생과 교수 모두 대학원생을 피고용자로, 교수를 고용자로 인식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단지 연구비와 실적만을 위해서 학생과 연구실의 연구방향과는 부합하지 않는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에, 주 업무가 과제 수행을 위한 연구가 되고, 학생은 자신의 연구 및 논문 작성을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심지어 회사를 함께 운영하는 교수의 경우에는 그 연구실의 학생들을 마치 그 회사의 사원인 것처럼 취급하면서 그 회사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지만, 임금과 관련해서는 사원이 아닌 학생으로 취급되면서 연구보조금 혹은 장학금 정도의 수준만을 학생에게 지급한다.

  교수들도 할 말은 있다. 대학에서 처리해야 하는 각종 행정업무에 치여서 연구과제를 수행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재단과 정부, 기타 각종 단체에서 요구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차분히 연구에 전념할 수 없다”며 “그래도 연구업적은 쌓아야 하기 때문에 제자들의 땀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제자들의 땀을 빌리면서 왜 땀의 대가까지 가로채려고 하는 것일까. 교수들은 그저 ‘오래된 관행’이라고만 답할 뿐, 제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나서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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