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자퇴 선언 이후, 학내 커뮤니티 중앙인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끝까지 특정 정당에 힘입어서 정치적 쇼를 벌인다”, “운동권이 바라는 진정한 학교의 모습이 무엇이냐?”, 라는 요지의 댓글들이 올라왔다. 지난 11일, 중대신문의 이시범 기자는 자신의 칼럼(“영화관에서 나와 달라”)에서 김창인씨를 우상화하거나, 비꼬고 격하하지 말 것을 촉구하며 “사람과 그 사람이 던진 메시지를 구분하지 못해 그저 영웅으로만 남아있는 사례는 고려대 김예슬 학생 자퇴 선언만으로 족하다. … 사람이 미래인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이 미래다. … 그가 던진 메시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썼다. 그런데 정말로 메시지에 대한 고찰만이 필요한 것일까? 본지는 타 대학에서 본교 대학원에 진학한 원생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원생 E씨는 “수요에 의해 이뤄진 대학의 시장성이 이제 다시 필요에 의해 축소돼야 한다”고 지적한 뒤 “통폐합이 학생들에게 주는 상처가 얼마나 클지는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녀는 “김창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번 대자보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는 자신이 의견을 피력해왔던 공간을 잃었다. 마음이 아프다”고 답했다.
이번 김창인씨의 자퇴 선언이 학생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실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 상징성 역시 곧 망각될 것이며, 필요에 따라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이 많은 대학원에서는 망각의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그의 행동을 합리성을 따져가며 판단하고, 메시지로 환원하는 것은 손쉽고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본교에서 겪었던 일들은 결코 몇 가지 슬로건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의 행보는 사건이기에 앞서 시간이기 때문이다. 테리 이글턴은 “주변이란 장소는 그곳에 있기가 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곳”이라며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버림받고 무시당한 자들이 입을 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만큼 존경받을 만한 과제도 별로 없다”고 썼다. 이는 이제 본교 원생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사람과 메시지를 구분한다면 그 과제는 결코 수행되지 못할 것이다.
김승일 편집위원 | seed12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