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영 / 전 월간 폴라리스 수석기자

현대 아동인권의 새로운 위기


  아동의 인권은커녕 아동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과거에 비하면 요즘의 아이들은 분명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고 있다. UN을 중심으로 아동인권선언문이 제정됐고, 각 국가 아동인권 관련 기관들의 연구와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아동인권 단체들이 연구와 홍보를 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드림스타트 사업을 통해 정부 차원의 아동인권 보호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사회로부터 보호받는 아동인권, 그러나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행복지수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본 결과, ‘교육’, ‘보건과 안전’, ‘건강관련 행동’ 영역에서는 대체로 높은 지수를 나타냈고, ‘물질적 행복’과 ‘가족 친구 관계’ 영역에서는 중간 정도의 지수를 나타낸 반면, ‘주관적 행복’ 영역에서는 최하위권의 지수를 보였다고 한다. 또한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연보’에 의하면 해가 갈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동·청소년의 자살에 의한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장애아동이나 저소득층 아동을 비롯한 소외계층 아동인권을 우선으로 정책이 추진되면서 이외의 평범한 아이들의 인권 보장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오히려 “요즘 아이들은 부족한 게 없어. 옛날에는……”이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던 건 아닐까. 필자는 유아교육을 전공한 교사로서, 아이들을 길러본 부모로서 현재 아이들의 인권 문제를 들여다봤다. 생계활동에 얽매여 아동에 대해 무관심하던 시절에 비하면 관심도 높아지고 사회·문화적 환경이 풍족하게 제공되고 있지만, 그에 따른 반작용도 있어 보인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맞벌이 가정과 핵가족이 증가하면서 자녀 양육에 어려움이 발생했고, 출산율 하락과 아동 방치라는 문제가 동반됐다. 이에 국가적 차원에서 돌봄 서비스가 확대됐고, 찬반 논란 끝에 무상 보육, 무상 돌봄도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과연 아동인권 신장에 일조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보육비가 지원되자 전업주부들도 영아기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육아를 국가에서 해줘야 할 몫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엄마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의 아이들이 보육교사에 의해 양육된다. 부모는 자녀가 처음 걷고 말하는 소중한 순간을 교사가 보내주는 사진이나 동영상, 편지글로 접하기도 한다. 기관에 맡겨진 아이들이 엄마 품에 대한 권리를 빼앗긴 채 성장하는 것이다. 아동복지 전문가들도 “무상 돌봄 서비스 확대는 아동이 아니라 성인을 위한 정책”이라 비판하고 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다니는 엄마를 대신해서 돌봐주는 정책은 정말 고맙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 본다면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양육될 권리를 빼앗긴 꼴이 됐다. 양육기의 시설보다 엄마 품을 더 필요로 한다. 엄마들도 맘껏 양육을 하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정책을 더 갈구한다. 아동의 행복을 가장 먼저 고려한 사회 인식과 정책, 그리고 그에 따른 실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새롭게 억압받는 아동인권의 문제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나가면 함께 놀 친구들이 몇몇 있다. 그런데 아이들 대부분이 1학년이나 2학년. 학년이 올라갈수록 노는 아이들의 수가 적어지고, 놀더라도 잠깐 들렀다 가는 수준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더 어릴 때부터 너무 바빠 놀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 UN의 아동인권선언문에는 ‘놀이와 여가 시간을 가질 권리’ 항목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이들은 남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어릴 때부터 사교육 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놀이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성인들의 치열한 경쟁사회의 축소판이 아이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는 부모들의 불안하고 조급한 심리를 이용한 사교육 시장의 상술도 한몫했다. 예전에는 없었던 과목이나 심지어 줄넘기, 인라인스케이트 같은 운동종목이나 블록 만들기까지 아이들이 시간을 내어 배우러 다닐 것들이 넘쳐난다. 또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배운다’는 말이 변질돼 놀이를 할 때도 어른들은 “이건 무슨 색이지?”, “이건 몇 개야? 세어볼까?”, “이건 영어로 뭐지?” 라고 물으며 학습과 연관시키려 든다. 아이는 놀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놀이를 즐길 수 없게 된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놀이 그 자체여야 한다. 2002년 5월에 열린 UN 아동특별총회에서 아동대표가 “어른들은 우리를 미래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현재이기도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이들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특히 아동기에 누릴 행복은 평생에 한 번 지나면 오지 않기에 더욱 귀중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기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놀이와 여가에 대한 자유와 시간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한편 거대해진 사교육 시장은 소득계층에 따른 새로운 차별을 낳고 있다. 시쳇말로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세상이라고 한다. 부모들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돈을 들여 더 많이 가르치고, 더 많은 정보를 쫓아 뛰어다닌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다양한 체험과 사교육을 통해 대학진학이 유리하다거나, 자녀수가 적을수록 한 자녀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 지출이 많아진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즉,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은 비례관계에 있고, 대학진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소득불평등과 차별에 의해 아이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교육에서 비롯된 불평등과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강화되고,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대학진학 과정이 정립돼야 할 것이다.

아동이 주체로, 새로운 아동인권

  그동안 아동은 발달 특성상 ‘제공’과 ‘보호’를 받을 권리가 우선됐다. 반면 판단력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의사 결정권과 참여권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아동의 참여와 의사 결정에 대한 권리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에 우리나라도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특별회의나 아동·청소년참여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을 한다. 이러한 고무적인 사례들이 이벤트성이나 생색내기용 정책이 돼 또 다른 아동과 청소년들의 인권 침해가 돼서는 안 된다. 그 실효성을 평가하고 모니터링해 꾸준히 발전시켜야 한다. 한편 부모들이 아이를 잘 이끌어줘야 한다는 명분하에 지나친 보호를 하고 모든 걸 대신해 주면, 아이들은 의사결정이나 의견제시 상황에서 자신감이 없고 수동적이 된다. 자신의 의사를 남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인권 박탈이다. 얼마 전 아들이 학교에서 땅콩 심은 화분을 가져왔는데, 싹이 나고 자라는 모습이 좋아 매일 아침 물을 듬뿍 줬다. 그런데 땅콩은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되는 식물이었고, 지나친 애정으로 인해 결국 뿌리가 썩어 버렸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적절한 보호와 뒷바라지가 필요하다. 아동들은 성인의 뜻에 잘 따르도록 훈육되는 게 아니라, 의사를 존중받으며 다양한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 적절한 참여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아동의 의견을 반영할 방법은 물론 범위와 수준도 논의될 필요가 있다. 과거에 비하면 아동인권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앞에서 짚어본 바와 같이 시대변화에 따라 아동인권에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고 새로운 권리가 요구된다. 아동은 아직 주체적으로 나서기 힘든 존재이기에 더욱 성인이 나서서 아동의 인권을 아동과 함께 돌아보고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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