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은 / 심리학과 부교수

  대학원 선발 면접 과정에서 흔히 등장하는 질문 중의 하나는 “왜 대학원을 지원하냐”일 것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접한 답은 “더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이 표현의 이면에는 학부교육만으로 부족했던 지식을 더 쌓아보고 싶다는 것부터 더 나은 취업이나 이직을 위해 학위가 필요하기 때문인 것까지 넓게 포함돼 있을 것이다. 지금, 다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는가? 혹시 ‘진리 탐구’가 떠오르는 분은 없는가? 단순 지식 습득이 아닌 연구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대학원에서의 학문의 진실한 동기는 바로 ‘진리 탐구’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원에 진학한 당신에게 진리를 탐구할 권리는 제대로 보장돼 있는가? 이런 질문은 답보다는 다음의 질문을 낳을 것이다. 진리 탐구에 있어 마땅한 권리란 무엇일까? 아마도 필요로 하는 강의를 제약 없이 들을 수 있고, 양질의 연구 지도를 받으며, 제공한 연구/교육/행정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 등 많은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있다. “To question authority”라는 권리이다. 상대적으로 경험과 지식이 많은 권위자가 제시하는 답을 답으로 당연히 받아들이기 전에 의문을 던지고 과연 그 답이 진리일지에 대해 추궁할 수 있는 권리이다. 모든 지식의 발전은 이 권리를 행사한 사람들의 사고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1)  이러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지식을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도 했다. 황우석의 결과조작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류영준 교수(황우석이 지도교수였음2))를 대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구결과 조작으로 사임한 미국 하버드 대학의 하우저(Marc Hauser) 교수의 경우에도 자료 분석이 조작됐음을 밝혀내는 데에는 연구보조원과 대학원생들의 역할이 주도적이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하우저 교수가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권위로 잠재우려 했을 때,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밝혀낸 것이 대학원생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 덕에 심리학계에서는 원숭이도 인간 언어의 문법과 같은 규칙을 이해한다고 제시했던 하우저 교수의 연구결과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고, 하마터면 오랫동안 진리로 믿겨질 뻔했던 심각한 오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접하는 대다수의 대학원생들은 본인들에게 이러한 권리가 있음을 망각하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교수나 선배가 얘기하는 것엔 토를 달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교수가 제시한 것에 질문하는 것은 버릇없는 것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만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새삼 발견하고 있다면 당신은 대학원에서 진리를 탐구할 마땅한 권리의 기본을 상실한 것이다. 이러한 권리의 보장 없이 이뤄지는 진리의 탐구가 과연 올바른 진리를 탐구하게 할 수 있을까? 지적 권위에 항상 굴복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실천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비로소 대학원생들이 필요로 하는 진리 탐구에 있어 마땅한 다른 권리들도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지 않을지 모두 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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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eist, G. J., & Rosenberg, E. L. (2011). Psychology: Perspectives and Connections. (2nd edition). McGraw-Hill.
2)이재명(2014년 3월). 10살 소년 살리고 싶었다. 나·들 사람매거진, vol.17, 5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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