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문학(특히 순수문학) 출판시장은 책의 질서를 만드는 것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 기업형 거대 출판사에서 나온 책만이 경쟁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대 출판사에서 나온 문학책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한 두 명의 스타 작가를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거대 기업형 출판사에서 시집을 매달 두 세권씩 발간한다는 것은 자사(특정 출판사)가 어떤 문인들을 보유하고 있는가, 어떤 문예적, 사상적 색깔을 지니고 있는가를 홍보하려는 목적으로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출판사는 스타 비평가를 편집위원이라는 이름으로 고용하고, 책의 질서를 만드는 데에 열중한다. 서점 시집 코너의 시집들은 특정 비평가가 손수 데뷔시킨 시인들의 작품이며, 자신들의 평론집에서 다룬 작품들, 자신들의 이론이나 사상에 이바지하는 작품들이다. 문학서적을 소비하는 독자들은 비평가가 먼저 고른 시집을 읽게 된다. 대학에 개설된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은 전 세대(3~4년 사이로 세대가 나눠지며 전 세대의 문학은 세대가 지나면 다시 읽히지 않는다)의 비평 담론을 아주 조금 비트는 것으로 만족하며 다시 비평가가 된다. 창조적으로 오독하거나 행간을 읽고 소통하기 보다는 문학 비평가처럼 사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책을 자유롭게 전유할 가능성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진다면 독서의 즐거움은 줄어들 것이며 시장 또한 훨씬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저자들 또한 어떻게 하면 담론을 생성할 수 있을지 미리 예상함으로서 정동을 마음껏 표출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문학 출판이 어쩌다가 이러한 곤경에 처하게 됐는지를 분석하려면 과거 한국의 문학 출판의 역사를 복기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격의 비평가들을 너무나도 존경하고, 심하게는 성역화하면서 문학사를 연구하는 일만을 반복할 뿐 출판의 역사를 기록하고 복기하는 일은 등한시 하고 있다. 매켄지는 ‘텍스트의 의미 창출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상호 관계적 네트워크에 대한 탐색’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을 촉구한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란 말이 눈에 띈다. 책의 포장, 판매, 소비/전유(저자/인쇄업자/출판업자/판매업자/독자)를 분석함에 있어 특정 부분이나 대상에 함몰되지 않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더 능동적이고 역동적으로 파악하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반(反)휴머니즘에 대해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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