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공영방송국 BBC는 지난 1월 한국의 선진적 IT 기술을 다루며 그것이 가능했던 조건으로 높은 교육열 혹은 교육수준을 꼽았다. 이어 높은 교육열이 한국의 자살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이 다뤄졌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에서 대중교육을 받은 대다수가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과잉교육과 경쟁은 실제로 많은 학생에게 좌절과 박탈감을 심어준다. 수능 때만 되면 심심찮게 입시생 자살에 관한 보도가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것은 그것을 방증한다. 

  높은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성한 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에 본교에서 한 유학생이 자살을 선택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우리는 죽음을 선택한 그들의 사유를 뉴스나 대학의 공지를 통해 접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어떤 문제들을 ‘생활고’, ‘취업에 대한 공포’, ‘삶의 비관’ 등의 유형화된 형태로 인식하고 나름의 머릿속에서 한심해하거나, 공감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무관심해한다. 이젠 식상한 얘기지만 한국은 OECD 국가 중 약 10년째 자살률 1위를 달리고 있으며, 하루 평균 40여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한 해의 자살률 등 수량화된 죽음 앞에서 자살은 사회적인 것이 되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상적인 층위에 놓인다. 

  대학원에 입학하는 이유는 원우 모두 다를 테지만, 대다수 학위수여 이후에는 취업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학부 졸업 후 취업하는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에 취업하게 되는 현실과 석·박사학위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취업의 문은 좀처럼 간단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원생들의 심적 부담은 높아지고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다시 자신을 공격한다. 이것은 학업중단, 우울,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사고 등 이차적 문제를 초래한다. 이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조기치료 개입임에도 사회적 대책 마련은 미흡한 실정이다. 각각의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 환원하기보다, 그 개인이 갖는 차이들을 사회(학교)적 차원에서 먼저 찾아가는 제도가 생겨야 할 것이다. 학교에 인권센터가 있고, 상담센터가 마련되어 있지만, 한국의 정서상 정신적인 문제로 상담센터를 찾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렇기에 상담센터 산하에 원생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는 기구나 제도가 생겨, 주기적인 설문과 상담이 상시화된다면 그러한 부담도 줄 것이고 극단적 선택의 적극적 예방 또한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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