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영 / 평화연대네트워크 활동가


  지크프리트나 페르세우스 같은 신화 속 영웅들은 망각의 미덕을 갖고 있다. 여행과 전투를 거듭하다 죽어버리는. 하지만 영웅이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은 망각의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자다. 망각의 불가능은 원한 즉, 불가능한 복수로부터 내재화되는 개념이다. 그들은 착취와 억압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분노로부터 원한을 느끼지만 이는 현실에서 해결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오직 머릿속, 혹은 사후세계와 같은 관념적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그 세계 속엔 동일하게 심판자가 존재한다. 원한의 대상을 벌할 전능한 존재이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대상화되는 물신화된 세계 속에서 노동력상품 소유자들인 노동자들은 무엇인가 잘못됨을 느끼기도 하고, 정리해고의 위협이나 사회보장의 경계에서 불안전한 삶을 산다. 하지만 그들은 손에 쥔 생산수단을 놓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간다. 이런 아이러니가 지배하는 현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원한과 그 원한의 해결불가능한 공백을 매우고 있는 공포는 어느새 희망으로 치환되기에 이른다. 이런 희망은 오래된 기원을 갖고 있다. 가깝게는 근대의 계몽기획인 진보라는 신화에 그 혐의가 있을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국가간체계, 세계경제와 이를 구성하고 행위하는 국가라는 진보의 담지자를 지탱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의 힘일 것이다.
 

1968년의 두 가지 계기


  1968년 5월 파리는 노동자, 학생, 지식인 등의 온갖 시민들의 함성과 분노로 들끓었다. 5월 혁명은 이후 미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체코, 라틴아메리카 등 서구, 동구, 제3세계 가릴 것 없이 확산됐다. 당시는 미국헤게모니의 절정이자 활황기였음에도 많은 민중들은 동시대적으로 거리를 뒤덮었다.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는 아래로부터의 원한과 도전을 포섭하여 위험하지 않은 형태로 변형시켜왔다. 보통선거와 교육의 기회를 주어 누구든 원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게 해줬으며, 노동의 보호와 사회보장을 통해 안전을 제공했고, 민족동일성의 신화를 통해 누구든 동등한 위치로 호명했다. 이런 식의 개혁은 국가간체계의 모든 국가에서 진행되는데, 이것의 주체는 당-국가로 소급된다. 동시에 국가는 진보달성의 유일한 대안이 되고, 국가장치는 강화되며, 사회혁명은 유예된다. 하지만 진보의 담지자로서 국가가 걸어 나갔던 길은 유토피아보다는 국가장치의 강화, 불평등, 권위주의, 엘리트주의의 가시덤불이었고, 대중정치의 소멸이라는 구렁텅이였던 것이다. 60년대 말의 세계혁명은 이런 환경 속에서 단절을 품고 태어났다. 

 
 

  68혁명은 4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되고 재현되며 소비된다. 하지만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장-루이 꼬몰리가 비판하듯, 영화나 다큐에 등장하는 68혁명은 주로 학생들만 위치시키고, 개인적인 청춘의 열정, 미성숙적 일탈, 파편화된 분노, 그리고 현실로 되돌아감을 주로 보여준다. 최근에 한국에 재개봉한 <몽상가들>(베르나르도 베르톨로치, 2003)이나 <평범한 연인들>(필리프 가렐, 2005)과 같은 최근 작품들 속의 68혁명의 이미지는 청춘의 아름다움 속에서 낭만주의적으로 재현되는 파편들이다. <몽상가들>엔 쁘띠 부르주아적이고 자유주의에 충실한 테오(루이스 가렐)가 등장한다. 그는 쌍둥이 이사벨(에바 그린)과 유아기적인 도착 관계에 머물러 있는 비성숙 자아이기도 하고, 이사벨의 첫 성경험을 승인하고, 감시하는 가부장성을 동시에 지닌 모순적 주체이다. 테오와 주인공들은 <국외자들>(고다르, 1964)에 등장하는 ‘루브르 질주’ 씬을 재현함으로써 루브르가 갖는 역사성, 권위를 전복하는 시도를 보여주지만, 이내 집안에 틀어박혀 기행을 거듭한다. 영화를 사랑하지만 ‘시네마 테크’가 공권력에 점령당하는 것을 목도하고도 집에 숨어버리는 모습에서 집은 자궁으로 유비된다. 마오쩌둥 포스터를 붙여놓고 문화대혁명의 급진성을 논하지만 그가 위치한 공간은 고급와인과 담배연기로 가득 찬 방 안이다. 종국에 그는 거리로 나와 행진하고 화염병을 던지지만, 그 행위는 이미 앞에서 켜켜이 쌓여온 이미지들에 잠식당해 자아비판의 결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공허함으로 혹은 젊음의 호기 정도에 머물러버린다. 영화는 오로지 갈팡질팡하는 청춘의 아름다운 순수성만을 그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68혁명이 지녔던 본래의 급진성과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했던 기억은 망각되고 아름다운 파편들만 고스란히 남아 재현되고 소비된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은 금기다. 뱉어질 수 없는 단어가 된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현재도 문혁에 대한 일반적 언급부터 토론과 이론적 연구까지 금지하고 있다. 문혁이 금기가 된 것은 문혁이 담고 있는 왜곡된 기억의 조각들 때문이기도, 문혁이 담고 있는 당과 국가권력에 대한 부정이라는 쟁점들 때문이기도 하다. 문혁에 대한 일반적 해석은 마오의 권력투쟁으로 시작된 문혁이 홍위병에 의해 폭력적으로 전개돼 결국 중국을 초토화시키고 지식인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혁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쟁점을 갖고 있다. 파리코뮌적 전망을 통해 문혁의 이념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문혁16조>가 시간이 흐르면서 원시 공산주의적 잔재를 포함했다며 폐기되는 국면, 홍위병이 노홍위병/조반파홍위병으로의 분리, ‘대중들의 공포(대중에 대한 공포/대중 스스로에 대한 대중의 공포)’라는 문제, 당-권력-다양한 계급이라는 복잡한 차원 등이 교차한다. 문혁 시기 동안 주체들 또한 보수파 대 조반파의 대립이 아니라, 조반파 대 조반파, 조반파 내부에서도 학생, 노동자, 도시민, 농민 등으로 분화된다. 이러한 다층적 복합성에 의해 문혁을 뚜렷하게 읽기도 쉽지 않지만, 문혁 자체가 꺾이고, 일그러지게 된다. 

 
 

  소련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는 마오에게 중요한 질문은 ‘중국의 사회성격은 무엇인가’이다. 마오는 레닌을 수용하면서 당시의 중국의 사회주의를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이행기(과도기)로 인식한다. 이러한 문제틀 속에서 문혁은 자본주의로의 회귀의 가능성(주자파의 문제)으로부터 ‘어떻게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막을 수 있는가’ 즉, 이데올로기혁명(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대한 전복)의 성격을 갖는다. ‘4구타파’, ‘조반유리’ 그리고 지적차이 감축을 위한 ‘상해7.21대학모델’ 등의 교육혁명 나아가 ‘사령부(당)를 포격하라’는 구호 등이 그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인민해방군의 개입과 무력진압에 의존하고, 개인적 복수의 문제로 지식인을 색출겾봅槿求?등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생산이 아닌 반지성주의라는 역설로 귀결되는 비극이 된다.   
  문혁은 그것이 제기했고, 열어둔 쟁점들을 뒤로한 채 금기가 돼버렸다. 자유주의국가 내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됐던 국가권력의 강화와 엘리트주의 즉, 대중정치의 실종 그리고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로 인한 지적차이의 심화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돌파하려했던 문혁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들을 던져준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억되는 문혁은 폭력과 반지성주의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뿐이다.  
 

망각에 대한 저항



  망각의 미덕을 가질 수 없는 초인이 아닌 우리들은 결국 기억해내기 위해 무언가를 망각할 뿐이다. 망각은 기억하기 위함인데, 무엇을 망각하고, 기억할지는 우리 손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68혁명의 이미지는 왜곡된 채 망각돼 운동의 의미와 맥락, 다양한 주체들은 생략되고, 낭만주의적으로 회고할 정도로만 조각된 채 기억에 머무르고 있다. 문혁의 경우는 그보다 심하다. 아예 기억조차 거부당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승리가 던져줬던 진보라는 문제. 점진적으로 다가와야 할 인류의 역사에서 진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국가장치의 강화와 정치의 실종이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약속했던 것들이 필연적으로 주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다종다기한 저항들을 통해 증명했던 1968년의 두 가지 계기에 대해 다시 사고해야 한다. 이는 망각에 대한 저항을 통해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것으로부터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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