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희 / 사회복지학부 명예교수

<카드놀이하는 아이들>, 르냉, 17C: 중세 아이들은 일찍부터 어른의 세계에 섞여 일, 놀이를 함.
<카드놀이하는 아이들>, 르냉, 17C: 중세 아이들은 일찍부터 어른의 세계에 섞여 일, 놀이를 함.

  엘렌 케이가 ‘20세기는 아동의 세기’라고 지적했듯이, 오늘날 우리는 아동의 행복한 삶을 위해 많은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아동기를 특별하고 민감한 시기로 여겨 아동들에게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아동에 대한 인식은 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아동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러한 상황을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가장 취약한 존재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동들을 대하는 관점의 변화를 살펴보면, 아동이 시대의 흐름에 따른 사회의 가치와 사상, 가족구조 및 경제구조 등과 같은 사회변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아왔는지 알 수 있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강인한 시민을 기른다는 명목하에 남아들에게 모진 과업에 대한 준비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건강하지 않은 남아들은 들판에 버려지기도 하고, 만 7세에 가족을 떠나 공공병영에서 강인한 군인으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로마에서도 아동에게 애정을 보이는 것을 피했고, 시민으로서 가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영아를 붕대에 꼭 싸두기도 하였다. 4세기까지 로마의 부모들은 장애가 있는 아동이나 사생아인 자녀를 계획적으로 죽이는 영아살해가 행해지기도 하였고, 이러한 영아살해의 관행은 중세 유럽에서도 계속되었다.

중세: 아동은 성인의 축소판

   중세는 봉건제도와 종교의 영향이 강했던 시대이다. 봉건제도는 주군과 기사 간의 주종서약이라는 신분관계와 거기 대응하는 토지와 토지에 속한 노동력 등을 함께 주고받아 지배·예속관계가 기초를 이루는 생산체제를 말한다. 탄생과 동시에 계급이 정해지는 엄격한 신분제인 봉건사회에서 아동은 부모가 속한 신분에 따라 신분이 정해졌으며, 신분에 따라 아동의 처우도 매우 달랐다. 대부분의 일반 아동들은 가족, 장원의 단순한 소유물로 취급되었고, 질병과 가난으로 고생했다. 중세에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하면서 많은 도시에서 빈민이 발생하였다. 빈민들은 부적절한 공중위생과 여러 다른 도시오염원들의 문제를 안고 있어 농촌 지역에 비해 도시 빈민들은 질병에 더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아동들은 질병에 의해 죽거나 출생결함으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더 높았고, 출산 시 비위생적인 환경은 산모의 생명을 빼앗는 경우도 허다해 도시에는 고아들이 생겼다. 이들은 거리로 나가 구걸, 도둑질, 매춘 등으로 삶을 유지하기도 했다.
  또한 로마제국이 몰락한 중세 초기에 기독교가 전 유럽으로 점진적인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성악설에 기초한 기독교의 신념은 아동의 양육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훈육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이러한 세태는 중세 유럽의 그림과 문서를 통해 잘 드러난다. 중세 그림 속 아동들은 크기만 작게 만든 성인의 옷을 입고 있으며, 상점이나 마당에서 성인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여 술을 마시며 떠드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아동을 성인의 축소판으로 여긴 것이다. 또한 이 시대의 법은 일반적으로 아동기 범죄와 성인 범죄 사이의 차별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아동의 잘못에 대해서도 형사상의 처벌을 가하여, 물건을 훔친 10세 아동을 교수형에 처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귀족계급의 아동들은 일반 아동들과 다른 대우를 받았다. 귀족 계급의 아동을 위한 묘비가 이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중세 후반에는 아동 출생과 초기 영아 보살핌에 대한 조언을 하는 의학서적들이 등장하는 등 신분에 따라 일부 아동들의 권리가 인정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아동들을 성인으로부터 분리시켜 독특한 개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르네상스의 그림에서는 아기 예수를 실제 아기와 더 많이 닮게 묘사하여 성인과 다르게 표현하였다. 또한 일상의 가족생활에 대한 세속적인 그림과 개별 아동들의 초상화가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 아동들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도 묘사되어 아동을 그들만의 욕구를 가진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근대: 아동기의 중요성 인식

  근대사회의 과학적인 지식과 기술의 발전은 아동발달에 관한 과학적인 관심을 초래하였으며 아동에 대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아동기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루소의 교육소설 <에밀>에서 아동은 선함을 가지고 태어나고, 아동기를 특권이 있는 시기로 설명하였다. 또한 아동을 연령별로 유아기(출생∼2세), 아동기(2∼12세), 아동후기(12∼15세), 청년기(15~20세)의 4단계로 구분하였고, 각 단계가 갖는 독특한 특성에 따라 아동의 본성을 고려하여 교육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로크는 아동이 백지상태로 태어난다는 가정 하에 아동기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아동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아동기를 보는 관점도 다양해졌다. 문학에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의 경우에는 아동기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기로 노래하는 반면, 디킨즈는 <올리버트위스트>에서 질병, 가난, 아동학대와 아동노동이 자행되는 암울한 시기로 아동기를 묘사하기도 했다. 
  이 시기 과학계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우세한 시기로 다윈은 인간행동의 변화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기록하려 했다. 이러한 과학계의 사조는 19세기 후반 이후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아동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연구를 부추겨 홀과 게젤 등의 심리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홀은 <아동 마음의 내용>이라는 논문을 통해 아동을 사랑과 따뜻함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산시켰고, 게젤은 아동기의 발달특성을 체계화하여 연령별 순서적인 발달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했다. 반면 프로이드는 아동의 심리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아동의 정서적 경험과 애정 욕구를 강조하는 등 아동의 특성은 다각도로 연구됐다.
  아울러 과학의 발달은 보건위생, 영양, 환경 등 아동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향상시켜 아동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었고, 가족계획의 보급으로 아동의 수가 적어지는 변화를 가져왔다. 아동의 수가 적어지면서 아동의 가치가 높아지는 계기가 됐고, 아동에게 보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게 됐다. 전통사회에서 아동을 무력하고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존재로 간주한 반면, 현대 사회에서는 아동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이와 같은 아동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는 아동을 성인의 축소판, 어른이나 부모에게 예속된 존재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을 가진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게 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모든 아동은 그들의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행복을 위해 필요한 요소를 보장받아야 함을 세계아동헌장에서 선포했다. 이를 시작으로, 아동의 가치는 적극적으로 해석되었고, 국가는 아동을 미래의 투자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아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국가적 관심의 증대로 이어지게 됐다.
  시대의 변화는 아동관을 함께 변화시켰고,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따라 아동관도 변화해 왔다. 아동과 사회 환경은 단순히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가속화시키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한다. 이 역동적 상호작용 과정의 주인은 아동이다. 가족의 문제에서도, 교육의 문제에서도, 또래 간 갈등에서도 우리는 아동이 자신의 삶에 주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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