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기 / 자유기고가

 
 

  <심슨>, <사우스 파크>, <퓨처라마>, <패밀리 가이>……. 미국의 블랙코미디 애니메이션들은 자국민들에게 실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심슨 같은 경우 일찍이 한국에도 수입돼 EBS에서 잠시 방영되기도 했으며 케이블 채널에서 꾸준히 재방송 중이다. 그러나 사우스 파크 TV판은 2001년 국내 케이블 방송인 투니버스에서 1시즌의 초반부를 방영하다가 바로 심의의 철퇴를 맞고 벌금을 물게 됐다. 작중 주인공인 스탠의 할아버지가 “후레자식들아, 늙어서 오래 살면 뭐해? 그러니까 나 좀 죽여 달라고 개새끼들!”이라 말한 에피소드가 문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공식 사이트를 통해 모든 에피소드를 다운 받을 수 있었기에 한국에도 두터운 팬층이 생성됐다. 미국산 정치풍자나 문화현상에 대한 폭넓고 신랄한 조롱들이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코스타리카의 벌목현장에 미국의 환경보호단체가 찾아가 캠패인을 벌이는 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미국 대기업의 힘과 코스타리카의 열악한 경제력을 조롱했던 에피소드는 사우스 파크의 노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의 관점에 따르면, 배고픈 코스타리카 노동자가 일당을 벌기 위해 미국 벌목회사에 취직한 것을 환경보호라는 이름하에 무작정 비판하는 미국 시민들은, 코스타리카의 노동자를 자신들과 똑같이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조롱받아 마땅하다. 이처럼 사우스 파크는 언제나 개인의 자유, 그중에서도 경제적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해왔다.
  이 애니메이션의 정치적 노선은 의외로 확고하다. 미국의 군소정당인 자유당과 이들의 기본 이념인 자유의지주의식 사고방식이 꽤 자주, 그것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주의는 로크의 사상을 이어받아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본다. 자유의지주의자들의 기본 전제는 누구나 자발적으로 자신의 복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경제적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전적인 자유주의와는 달리 국가가 개인을 제한하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기 때문에 아나키즘과도 겹치는 구석이 많지만 합리적으로 합의된 제도는 긍정한다는 면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동시에 ‘최소 정부’를 정치적 목표로 두기 때문에 경제면에서는 신자유주의와 흡사하지만 낙태, 마약, 동성애 등의 개인적인 문제에 국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인 미국의 신자유주의와는 그 결이 다르다. 사우스 파크에서 이러한 사회적 이슈들을 보수의 관점으로 속단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애니메이션의 노선을 좌파적인 것이라고 믿는다면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시청자들은 사우스 파크가 무엇이든 거침없이 조롱하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입장에 편중되지 않았으며,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우스 파크의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연예인, 정치인, 환경보호, 종교를 무참히 조롱하고 시청자들은 거기서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을 동시에 비판하고,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구원책으로 제시되면 다른 정치적 입장, 의견들이 너무 쉽게 묵살되는 반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개인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침해한다는 입장에 서면 모든 것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작자인 스톤과 파커는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사우스 파크의 주민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인 히피들이 말로는 변화를 외치면서 모여서 대마초나 피우고 음악이나 듣는 쓰레기라 욕하고, 히피 집회를 트럭으로 밀어버리기까지 한다. 이를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분노로 읽을 수는 없을까? 다르게 말하면 정치적 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안심시킬 수 없는 세대가 출현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거침없는 표현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정치인과 연예인을 놀려대는 미국산 블랙 코미디는 한국의 프로그램들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이 더 객관적이라거나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월등히 보장된 미디어 상품이라고 해서 프로파간다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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