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기 / 배우


  나는 과천에서 20년을 살았다. 과천은 아주 좋은 곳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엔 확실히 좋았다. 얼마나 좋았냐면, 저녁 7시가 지나면 길거리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우리는 무슨 짓을 해도 됐다. 사람이 없다고 황무지 같은 것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화목한 가족이 어느 순간 도시를 버리고 사라진 것처럼 포근했다.

  우리 가족도 화목했다. 우리는 과천에서만 세 번 이사했다. 11단지에서 1단지로, 1단지에서 10단지로. 문제는 11단지다. 11단지는 사라졌다. 11단지가 사라졌던 것은 2005년 말, 내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던 때였다. 그때 이미 모든 주민들이 떠나 스산했던 11단지 옆으로는 개천이 흘렀다. 주민등록증을 받고 나는 개천 옆 벤치에 앉았다. 겨울바람이 아주 차서 나는 친구를 불렀다. 친구는 닭꼬치를 잔뜩 사들고 왔다. 우리는 말없이 벤치에 앉아서 닭꼬치를 하나하나 입에 넣었다. 11단지는 내가 국민학교를 다닌 곳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쯤에는 이미 1단지에 살고 있었다. 국민학생이었던 내게 한 뼘을 훌쩍 넘는 나비나, 뒷산에서 만나는 도룡뇽 따위는 흔히 볼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런 것들도 이제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닭꼬치는 금새 식어 굳었다. 이가 아파왔다.

  11단지가 사라졌을 때 이미 나는 10단지에 살고 있었고, 10단지는 여전히 5층짜리 엘리베이터도 없는 골동품 같은 아파트로 남았다. 몇 년이 더 지나고 11단지가 화려한 신축 아파트로 변모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재개발은 여러 단지마다 순차적으로 이뤄졌고 다른 곳에 살던 어릴 적 친구 하나가 그 곳으로 이사를 왔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의 집에서 영화를 함께 보고 차를 마셨다. 사실 신축 아파트도 정다운 곳이었고,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예전 그 11단지는 물질적으로나 내 마음 속에서나 새롭고 높은 아파트에 의해 밀려났다. 나는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다. 11단지가 사라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고 해도, 내 안에서까지 지켜주지 못하는 스스로가 아주 비겁하게 느껴졌다.

  이제 나는 마포에 있다. 직장은 여의도에 있고 매일 새벽이면 버스를 타고 찬바람을 지나 회사에 간다. 마포는 교통이 편리하고 차들이 많다. 밤에도 사람들이 잔뜩 있다. 모든 것이 과천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이제는 과천에 가도 이곳과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11단지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더플코트를 입고 안경을 썼던 나도, 이젠 없다. 11단지가 날 측은해할 것도 같다.

  닭꼬치를 같이 먹던 친구와 나는 여전히 특별한 친구이지만 그 친구는 과천에 있고 나는 마포에 있다. 우리는 지금도 거의 매주 만난다. 그 친구가 서울로 차를 몰고 오면 나는 과천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닭꼬치를 들고 11단지가 찾아오는 것 같다. 근데 그런 핑계를 대며 과천에 가질 않으니, 나는 점점 더 비겁한 내 자신을 두려워하게 되었나 보다. 그래도 뭐 어떠랴 싶다. 다음에는 그 친구와 함께 홍대의 이자카야에라도 가서 야키토리를 먹으며, 사라진 11단지를 그리워하고 그런 후에, 사라져가는 홍대의 옛 모습도 새로이 아쉬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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