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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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문화
[미술] 미술의 금융화와 그것의 미학적 논리서동진 / 계원예술대 교양교육과정 교수
문성준  |  tmhbit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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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승인 2013.12.07  11: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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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다카시, <이브 클라인을 위한 오마주>, 2011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란 용어는 비단 금융부문이 주된 이윤의 원천이 됐다거나 주주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이른바 기업지배구조에서의 변화, 혹은 부채와 신용을 통해 가계를 꾸려가야 하는 노동자 살림살이의 급변 같은 것을 이르는 것만은 아니다.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자본이란 모든 것을 화폐화하고, 다시 그 화폐가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맹렬하고 무제한적인 권력을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술이라고 해서 자본의 지배로부터 면제된 구역일리 만무하다. 미술의 금융화란 말이 무색하리만치, 지난 수십 년간 미술과 금융의 결합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무엇보다 미술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심심찮게 최고가를 경신한 옥션하우스에서의 작품 가격을 알리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불과 얼마 전 동료 화가인 루시앙 프로이트를 그린 프랜시스 베이컨의 3부작 초상이 1억 4천2백만 달러에 낙찰됐다. 단일 작품 경매가로는 사상 최고치였다. 크리스티에서 베이컨을 사고파는 사이, 옆의 소더비에선 앤디 워홀 작품 한 점이 1억 5백만 달러에 팔렸다. 옥션하우스가 사랑하는 생존 작가는 단연 제프 쿤스이다. 그의 작품 역시 다시 최고가를 경신했다. 6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그의 오렌지색 푸들 모양 풍선이 누군가에게 낙찰됐다. 멕시코의 IT 재벌이거나 러시아의 마피아 억만장자이거나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달러를 자산에 투자해야만 하는 중국의 어느 금융업자가 임자일지 모른다. 아니면 리무진을 타고 맨해튼을 달리며 컨설턴트와 카섹스를 나누면서 딜러에게 전화를 건 어느 투자의 달인일지도 모를 일이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코스모폴리스>(데이빗 크로넨버그, 2013)에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 환장한 월가의 환투기 금융업자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초현실적 소설 속 이야기같이 들린다고 해서 우리와 무관한 것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술이 금융화 되었다는 것은 미술이 투자대상, 나아가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술을 둘러싼 미학적 원리 자체가 변이하는 것을 가리키고, 우리는 그것의 자장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다.


예술의 민주화, 예술의 시장화


  굴지의 아트펀드가 없다 해서,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옥션하우스가 없다고 해서, 미술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큰 손이 없다고 해서, 한국의 동시대 미술이 미술의 금융화라는 추세의 바깥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플라토 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수퍼플랫>이란 전시에서 우리는 일본 현대 미술의 앙팡 테리블인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됐다. 그가 한국에서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미술관을 반년 가까이 차지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전시제목인 ‘수퍼플랫’이 문자 그대로 알려주듯, 모든 것이 평평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메와 망가에서 차용한 이미지나 형상을 소재로 한 그의 작업이 굳이 지역적 팝아트의 새로운 흐름이 아니라 마치 대단한 미학적인 이념이라도 되는 양 수퍼플랫이란 이름으로 지칭되는지 생각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태평양 건너의 미학자들과 미술평론가들이 열에 들떠 떠들어댔던 ‘예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을 요약하는 모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서 단토나 데이브 힉키 같은 미술이론가들은 아방가르드 혹은 보다 넓게는 모더니즘 미술처럼 세계를 향해 어떤 전망을 제안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미적 실천이 예술이라면, 그것은 이제 끝났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역사의 종말 이후, 즉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한 이후 이제 그런 예술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힉키의 말마따나 미술에서 ‘아름다움’이 되돌아오게 됐다. 그가 볼 때 아름다움의 세계는 시장의 세계와 같다. 각자 자신의 욕구에 따라 시장에서 상품을 사듯 우리는 이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리고, 관람하고, 전시하고, 수집하거나 투자하면 된다. 아마 이런 예술의 세계를 가리키는 이름으로서 ‘수퍼플랫’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그들은 이를 예술의 종말 이후 예술의 민주화라고 부를 것이고, 우리는 예술의 시장화, 금융화라고 부르는 것이 다를 뿐이다.


금융화 된 미술의 풍경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전령사인 파이낸셜타임즈는 어느 기사에서 ‘아름다운 투자’란 이름으로 미술 투자에 세례를 베푼 적이 있다. 물론 그것이 말하는 아름다움의 비밀은 수익곡선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미술작품에 투자하는 이는 과거처럼 감식안이 탁월한 교양 있는 부르주아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몰락 귀족이나 신흥 산업가처럼 자신이 열광적으로 숭배하는 미술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이들은 이제 아트펀드의 매니저와 딜러들의 포트폴리오를 점검하는 투자자로 대체됐다. 그리고 한 때 미적 엘리트주의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감식안은 미술이라는 자산 집단에 대한 안목과 위험 자산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주저하지 않는 기업가정신에 의해 대체됐다. 조세피난처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스위스 같은 곳에 창고를 두며, 뉴욕, 런던, 파리 등지의 아트페어를 휘젓고 다니고, 금융위기에 따른 침체와 손실과 상관없이 20퍼센트가 넘는 수익률을 자랑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이른바 아트펀드는 전례 없는 미술의 권력이 돼가고 있다. 아트 펀드가 지금까지와 전연 다른 논리를 미술시장에 도입한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트펀드의 역할과 미술시장의 판도 변화는 비단 ‘시장’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비평가들과 미술사가들은 무디스나 스탠다드앤푸어스 같은 신용평가사의 역할을 대신한다. 신용평가기관이 자산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그들은 미술작품의 자산 가치를 감정하고 평가하는 인물들로 되어가고 있다. 만약 루벤스나 램브란트 혹은 빌 비올라,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관해 정통한 미술사가이거나 평론가라면 그는 장차 소더비 경매장이나 아트페어의 카탈로그에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것이 미술평론이라 할 만한 것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다. 물론 미술가가 자신을 재현하거나 정체화하는 방식 역시 바뀔 것이다. 그들은 이제 팝스타와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스타가 되거나 아니면 그 자체 브랜드가 돼가고 있다. 이른바 거장이라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놀랄 만한 꼼꼼함으로 세부적으로 시기가 분류되고, 작품의 스타일, 시시콜콜한 연애사, 병력을 비롯한 전기적인 세부사항까지 관련되어 제시된다. 물론 그것은 가격의 차이를 결정한다. 물론 이는 거장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동시대 미술이 제아무리 완강하게 저항하려해도 이제 미술가는 자신을 브랜드로 내세운다. 미술가를 위한 신생 오디션 프로그램을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당연히 전시와 전시 제도, 공간 역시 바뀌어가고 있다.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그리고 블록버스터 전시는 얼마 전부터 미술 전시의 기본적인 유형이 됐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미술의 대중화를 내세운다. 그러나 관객 수입과 박스오피스를 통해 기업과 똑같이 성과를 내야하는 미술관이 시장화 된 경영 논리 탓에 그런 전시를 조직하는데 혈안이라는 것은 그렇다치자. 서글픈 것은 갤러리들 역시 이런 전시 관행에 앞장선다는 점이다. 이름난 갤러리들은 더 이상 동시대 미술작가를 후원하고 새로운 흐름을 조직하는  일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 역시 블록버스터 전시와 다르지 않은 전시를 조직하는데 혈안이다. 그들이 전시한 작품 가운데 몇 점은 아트펀드로부터 임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껏 말한 모든 것이 금융화된 미술 세계의 풍경을 이룬다. 다시 미술에서 자본주의를 읽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몸짓이 다시 예술을 경제로 환원하는 퇴행이라고? 그런 항의가 있다면 주저 없이 대꾸해야 할 것이다. 설마 농담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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