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 평화를 향한 발자국 인천지부 집행국장

미국의 ICBM인 미니트맨3(Minuteman3)
미국의 ICBM인 미니트맨3(Minuteman3)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일과 대량살상무기인 탄도미사일 발사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기술적 기반을 토대로 이뤄진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이하 ICBM) 시험발사가 거의 같은 시점에 이뤄졌고, 유사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역사적으로 미소간 ICBM 기술경쟁은 위성 발사를 통한 우주개발, 우주안보 계획으로 발전했고, 결국 이를 버티지 못한 소련이 붕괴해 세계정세 격변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에서는 올해 초와 지난해 말 발사된 남한의 나로호와 북한의 은하3호가 경쟁적으로 발사됐다. 


우주개발과 탄도미사일 경쟁 약사


  로켓의 추진력으로 가속되어, 대기권 내외를 탄도를 그리면서 날아가는 미사일 중에서 통상 1만㎞ 이상의 먼 거리를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한다. 핵탄두를 싣기 때문에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갖고 있으며,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ICBM은 현대 군사전에서 중추적인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패권국가 미국을 필두로 한 군사선진국들과 후발국가들에 초미의 관심사일 뿐 아니라 각종 협정을 통해 기술 개발 이전에 엄격한 제약을 받고 있다.

  세계 최초의 ICBM 발사는 소련에서 1957년 5월 발사된 ‘R-7 세묘르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련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 나치정권이 개발한 V-2 로켓 기술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미사일 기술 개발에 나섰고 착수 3년 만에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사회주의 진영과의 대결 속에서 자본주의 패권을 확립해가던 미국에게 소련의 ICBM 개발 및 발사 성공은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왔다. 10여 년 전까지 핵무기와 운반수단을 독점할 수 있었던 지위가 심각하게 위협당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1958년 ‘아틀라스 SM-65’ 미사일의 첫 시험발사를 성공시키고, 59년 9월부터 실전 배치했다. 이때부터 두 강대국 간 ICBM 개발 경쟁이 본격 시작됐다. 그리고 곧바로 우주개발, 우주안보 경쟁으로 치닫는다.

  인류의 첫 번째 ICBM ‘R-7 세묘르카’는 불과 세 달 만인 57년 10월 스푸트니크 우주발사체로 변신에 성공하고,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시킨다. 이후 R-7 시리즈는 보스토크 로켓, 소유즈 로켓 2012년 현재 가장 최신형 상업용 로켓인 소유즈 2호의 토대가 되고 있다. 미국 역시 자신의 첫 번째 ICBM인 아틀라스를 개조해 우주발사체 아틀라스 센타우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69년에는 아폴로 우주선으로 소련에 앞서 사람을 달에 보내 우주개발 선두주자로서 자존심을 회복한다. 한 발 더 나아가 83년 3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인공위성 레이저 무기로 소련의 탄도 핵무기를 방어하겠다는 전략방위구상(SDI)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야누스의 얼굴, ICBM과 우주발사체


  소련과 미국의 역사적인 사례가 확인해주듯 우주발사체는 기본적으로 탄도미사일과 형상이나 구성요소, 적용기술 등 면에서 매우 유사해 쉽게 상호 전환이 가능하며, 국방부에서도 식별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탄도미사일과 우주발사체는 구조적인 면에서 모두 기체와 추진기관, 유도조종장치로 구성되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거의 같은 설계기술이 적용된다. 그럼에도 차이를 굳이 꼽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우주발사체의 기술적 목표는 추력과 비추력을 동시에 확보해 인공위성 궤도에 올릴 수 있는 페이로드 중량을 최대화 시키는 것이다. 반면 ICBM의 기술적 목표는 빠르게 발사하는 능력, 즉 발사대가 노출되는 순간부터 적의 선제·예방공습으로부터 기체를 보호할 시간을 최소화시키는 생존력의 확보다. 이러한 기술적 최종목표의 차이에 의해 우주발사체는 보통 액체 연료를, ICBM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게 된다. 또 다른 차이점은 발사 이후 비행체의 궤적에서도 나타난다. 우주발사체는 수직으로 발사되며, ICBM은 수직 발사 이후 곧바로 30도의 각도로 꺾어져 날아간다. 이는 사거리 확보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기술적으로 전혀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거칠게 말하자면, 위성을 탑재해 우주궤도에 올리면 우주발사체이고, 탄두를 탑재해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면 ICBM이 되는 것이다.


ICBM과 우주발사체를 가르는 국제사회의 이중기준


  지난해 12월 12일 광명성 3호를 궤도에 진입시킨 북한의 은하3호와 올해 1월 30일 나로과학위성(STSAT-2C)을 궤도에 진입시킨 나로호(KSLV-1)를 두고 남북한 당국은 각각 우주발사체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창했다. 한국은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행위의 중단을 요구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근거로 북한의 은하3호를 규탄했다. 북한 역시 나로호 발사를 두고 “이중기준을 둔 차별”이라며 격렬히 반발 했고, 외신들은 이를 빌미로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다며 우주발사체로 비롯된 동북아 군사위기 고조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중기준 논란과 북한 당국의 격렬한 반발이 비합리적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1874호가 우주발사체와 탄도미사일 기술이 사실상 동일하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주발사체와 ICBM을 구분하는 기준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늘 분쟁이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나로호가 ICBM 개발을 위한 전초 작업이라고 절대 인정하지 않지만, 3차 발사를 불과 석 달 앞둔 지난해 10월 7일 개정된 ‘한미 미사일 지침’(이하 지침)을 보면 의혹을 떨칠 수 없다. 개정된 지침의 핵심은 사정거리를 3백km에서 8백km로 연장한 것인데 탄두의 무게도 줄이지 않고, 거리에 따라 기존의 2배까지 늘릴 수 있게 됐다. 즉 미사일지침 개정으로 북한 전역을 더욱 파괴적으로 타격할 수 있게 미국의 허가를 받아낸 것이다. 지난해 3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나로호 2단 추진체 개발로 축적된 로켓 기술을 탄도미사일 개발로 활용하면 수년 안에 1천km급 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개정 이후 정부 고위관계자는 “고체연료 로켓과 관련된 재협상을 추진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은하3호를 ICBM 위장용 발사라고 비난한 근거였던 ‘고체연료’의 개발을 한국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나로호 발사를 순수한 우주개발기술로 활용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기술구조의 유사성과 미사일 규제의 완화로 주변국들의 군사적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은 나로호 발사를 빌미 삼아 3차 핵실험 감행했다. 최근 심상치 않은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일본 내에서는 탄도미사일 기술이 축적되고 사거리가 8백km로 늘어나 일본 일부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평화헌법의 족쇄에서 벗어나 로켓 기술을 탄도미사일로 전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로의 선회(Pivot to Asia)’를 천명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 삼각동맹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중국의 경우도 본토에 한국의 미사일이 다다를 수 있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1년 여가 지난 현재 상황에서는 애국주의의 광기를 빼고 냉정하게 나로호 발사를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나로호의 성공이 우주개발의 계기였는지, 한반도 군사위기의 촉매였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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