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 / 고려대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오늘날 과학기술이라는 장은 다양한 주체들의 관점과 가치, 그리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매우 역동적인 곳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가지는 영향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따라서 어떤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 어떤 연구에 더 많은 연구비를 지원할 것인가 등의 의사결정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과거에는 과학기술이 공공재이고, 국가가 이러한 공공재로서의 과학기술 개발을 조율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중립적인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기술의 상업화가 가속화되고, 80년대 이후 과학지식 생산의 성격에 이른바 전지구적 사유화체제라는 구조적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더 이상 이런 가정은 받아들이기 힘들게 됐다. 국가, 즉 정부도 다른 많은 행위자들과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지식이나 인공물의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한 행위자, 즉 다른 집단들보다 더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또 하나의 이해관계 집단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광우병, 원자력 발전, 의료정책, 송전탑 건설 등 여러 가지 중요한 사회적 결정과정에서 정부는 중립적인 중재자가 아니라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의사를 관철하는 하나의 입장 그룹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한때 정부로 대표되는 제1부문이나 기업 등의 영리부문인 제2부문이 아닌 NGO와 같은 제3부문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NGO가 시민을 대변하는가의 대표성 문제, 그리고 NGO 역시 다른 부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문제 등이 나타났다.

  GM 식품, 광우병, 기후 변화의 원인 등 과학기술을 둘러싼 논쟁들이 잘 해결되지 않고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도 논쟁을 중재할 수 있는 초월적 지위를 가진 집단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펀토비치와 라베츠와 같은 학자들은 이런 상황 때문에 오늘날 과학기술이 과거와 다른 포스트-정상(post-normal)과학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주장한다. 포스트-정상과학론은 과학기술에서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 왜냐하면 과거와 달리 오늘날 과학기술을 둘러싼 논쟁에 가치의 문제가 깊이 개입되어 있고, 거의 항상 시급한 결정이 요구되며, 어떤 집단도 논쟁을 해결할 특권적 권위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의사결정에서 과거처럼 정부의 일방적인 통치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해서 함께 결정을 내리는 거버넌스, 즉 협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과학기술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시민사회의 다양한 행위자들을 논쟁과 의사결정에 참여시켜 불확실성을 줄이고 그 사회가 원하는 방향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많은 집단들이 논쟁에 참여해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관점들이 의사결정에 들어올 수 있도록 멍석을 깔고, 논쟁 과정을 진행하는 실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GM 식품에 대한 시민사회의 거부반응이 강한 영국의 경우, 정부는 2003년 GM Nation이라는 사상 초유의 전국단위의 공공논쟁을 조직했다. 대도시, 주, 지방의회에 이르기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단위에 걸쳐 일반 시민들을 GM 식품 논쟁에 직접 참여시켜서 문제 해결을 도모한 중요한 실험을 벌인 것이다. 물론 이런 실험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GM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 사례는 아직도 정부가 논의를 독점하고 소수 집단의 결정을 강행하고 시민들의 반대를 묵살하는 우리의 상황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직접민주주의의 전통이 강한 북유럽에서는 이미 70년대 후반부터 과학기술의 다양한 쟁점들에 일반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합의회의와 같은 시민참여모형을 개발해왔다. 합의회의는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후반부터 민간단체들의 주도로 여러 차례 이뤄졌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더 이상 과학기술의 의사결정이 정부에 의해 독점될 수 없고 다양한 행위 주체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통해서만이 견고한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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