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 서울예대 문예창작 전공


  그것은 2006년의 일이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되었고, 나는 홍대에 가보고 싶었다. 그 때 나는 배우 고아성의 싸이월드를 탐독하면서 고아성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아성의 싸이월드에는 그가 좋아한다는 홍대 까페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고, 나는 한 눈에 반했다. 그곳은 폐쇄적인 아지트처럼 보였다. 비록 일촌 신청을 거절당했지만, 거기에 가면 고아성 혹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의 이름은 까페 그늘이다. 간판이 없고 반 지하에 위치해 있으며 테이블은 네 개 정도 밖에 안 되는, 좁지만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멋진 주인 언니가 있는. 미닫이문을 열면 아이언 앤 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의 세 줄은 사실을 묘사한 것인데도 왠지 식은땀이 날 것 같다. 예전의 이리 까페가 있던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까페 그늘이 있었다. 그 골목의 초입에 들어서기만 해도 긴장이 되어 가슴이 쿵쾅거리곤 했다. 나는 그나마 노력한 옷차림을 하고 서양 철학사를 껴안은 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책을 넘기는 척을 하는데 단 한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어떤 남자가 한창 인터뷰 중이었는데, 가만 보니 청소년 백일장에서 친구와 나에게 반말을 했던 재수 없는 꼰대 시인이었다. 이름은 알지 못했다. 다신 없을 기회란 생각이 들어 사인을 받기로 했다. 다시 까페 그늘을 찾았을 때 김경주 시인을 또 보았다. 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모습이었는데, 주인 언니는 아마 러시아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교보문고 신간 매대 위에서 시인의 여행기를 보게 됐다. 나는 이상한 감흥을 느꼈다. 그늘에서, 어른들은 와인을 마시며 파리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즐겁게 들여다보았다. 나는 내가 어린 것이 죄처럼 느껴졌다. 주인 언니는 항상 멋지게 입고 있었는데, 나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언젠가는 맞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언니는 가끔 손수 만든 치즈 같은 걸 내어주거나, “아성씨, 어제 왔다 갔어요”라고 했다. 어느 날 친구와 “나는 바이올린을 팔아야겠어”라며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를 엿듣던 언니가 내 바이올린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그 돈으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공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나도 그 피아니스트 이름 알려줘요. 난 요즘 머리가 썩을 것 같아”라고 말했고, 그 후로도 나는 아주 가끔 머리가 썩을 것 같다는 표현을 떠올렸다.

  까페 그늘의 출입문은 나무와 유리로 돼있어서 밖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였는데, 그 주위를 지나갈 때마다 주인 언니에게 손을 흔들고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그 골목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여전히 긴장이 되었다. 화장실 안에 있는 문을 열면 언니가 살던 방이 있었고, 고양이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조금은 죄책감을 갖고 그 방문을 열어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나중에는 그 방을 터서 까페가 넓어지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나는 학교를 그만 두게 됐고 까페 그늘도 다른 까페로 바뀌게 됐다. 내가 다시 그곳에 갈 수 있다면, 그 골목을 처음 서성거렸던 날처럼 그렇게 떨릴 수 있을까? 모두들 잘 지내는지, 다들 행복한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궁금하고, 그립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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