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2.9 수 12:16
오피니언
[특별기고] 중앙대분회의 ‘뜨거운 가을’안명호 / 사회진보연대 회원
김건우  |  madein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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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호]
승인 2013.11.13  08: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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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철폐! 투쟁! 단결투쟁!”의 함성이 교내에 죽비소리처럼 울린다. 어떤 우울감과 패배감이 지배하던 교내는 활기를 띤다. 자신들의 삶을 건 당차면서도 절실한 목소리가 그대는 깨어있는가라고 묻는다. 중앙대에서 청소·시설·경비직 업종이 간접고용화 되며 오랜기간 ‘최저의 침전지’로 머물렀던 그/녀들은 ‘더이상 억압할 수 없는 최저한도’에서 폭발했다. 청소·시설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갖지 못했을 뿐 모순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자유연상’처럼 진행된 면담들 속에서 그/녀들은 검열을 해제하고 무의식을 해방시켰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개선되길 욕망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 중앙대분회’의 탄생은 노조와 학생, 노동자들의 산고를 거쳐 만남과 만남의 연속, 집단토론과 담론의 해방을 통해 가능했다.

  그러나 그 후로 사태는 긴 터널처럼 지난하게 전개돼왔다. 용역업체의 교섭해태와 원청으로서 학교본부의 책임회피가 지속되는 가운데 사측은 관리자계층의 포섭과 노무법인을 통해 노조무력화시도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동요한다. 방호직 노동자들(A,B조 모두)은 한국노총에 자발적(?)으로 가입했다. 민주노총의 전투성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코포러티즘에 경도돼온 계급배신의 역사가 한국노총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학습할 기회를 얻었다. 노조설립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노조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변화에는 반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을. 계속해서 단결을 확대하는 것, 나아가 조직과 학습의 결합으로 노조의 이념을 재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그리고 다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와 여성노동의 특수성을 사고할 필요를 얻었다.

  한국에서 노동유연화는 97년의 외환·경제위기를 기점으로 1998년-2003년의 ‘3제’ 도입(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으로 일단락됐다. 정부주도하에 대규모 산업구조 개편이 있었고 수출-대기업은 노동력가치 절하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나갔다. 위계적 하청(도급)계열화 체제는 ‘실업의 조직화’된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보편적 일자리로 확산시켰다. 또한 주 40시간 노동주의 도입은 반대로 변형근로제를 통해 노동일의 연장을 가져왔다. 잔업, 특근의 초과노동과 교대제를 통한 노동자 수의 증가(노동시간의 외연적 연장)와 성과급제(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를 통해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 전면화됐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에서 실물경제의 침체와 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하며 자본축적률은 지속적으로 하락됐고 이는 연쇄적으로 구조적 실업, 노동의 교섭력 약화,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로 이어졌다. 원청 대자본은 사내하청 고용과 외주 하청구조를 통해 비용부담을 완화해나가며 시장의 불확실성을 임시직 고용과 노동시간 변동을 통해 흡수해나갔다. 이같은 노동유연화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간 경쟁과 노동시간 및 임금의 개별화를 조장하며 노동조합 단결력을 약화시켰다.

  그렇다면 여성-어머니들은 어디에 있는가. 여성-어머니들은 가치사슬구조의 기층을 형성한다. 사적소유제 안에서 남성-아버지에 봉사하고 국가에 봉사하는 기계들로 호명되는 주체들인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평등하지 않으며 사회적 결정들의 권능 밖에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경제위기는 여성노동에 대한 이중적 착취(가사노동, 임금노동)의 극단화로 극복돼왔다. 저임금·비숙련노동이 대부분인 여성일자리는 가정에서 여성에게 특화된 청소·돌봄노동 등이 사회화되며 보편적 형태가 됐다. 아메리카 핵가족제도의 이식과 남성생계부양자 모델 아래 여성노동력의 가치는 짜골로프식으로 표현하자면 ‘괴리’와 ‘지체’를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부수적 노동이라는 사회적 편견 탓이기도 하다. ‘반찬값노동’이라는 노동력가치 절하는 노동자 단결을 가로막는 큰 장애다.

  공간적으로도 청소직 여성노동자의 휴게실은 방호실 안에 구획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같은 공간구획은 ‘수다’를 통한 전복의 가능성을 상실시킴은 물론 노동의 규율화를 강제한다. 실제로 면담과 인터뷰는 매우 사려깊은 접근이 필요했다. 중간 관리자들은 청소직 노동자를 감시한다. 방호직 노동자(연대의 대상이면서 극복의 대상인 그들)는 물론 호의적이다. 그러나 격리된 공간만이 그녀들에게 자유를 부여한다. ‘말(parole)의 해방’은 그녀들에 고유한 속성, 억압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특별한 정신분석가(노조활동가)를 매개로 하기 때문이다.

  경제는 여전히 긴 터널 속을 지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노동의 권리와 복지는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다. 사회적-민족 국가는 수출주력 기업과 컨설팅업체, 국정원과 공조해 민주노조의 핵심고리들(주로 금속노조 핵심사업장)을 타격하고 있다. 여성과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공세에 가장 취약하다. 중앙대분회는 사측의 분열획책과 원청(학교본부)의 방관이라는 풍랑이 이는 바다에 배를 띄웠다. 그러나 함선엔 ‘죽음의 욕동(타나토스)’ 대신 ‘삶의 본능(에로스)’이 지배적이다.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언어(langue)의 세계에서 상처받고 방황하던 주체는 이제 언어자체를 갱신하려 한다. 노조라는 조산원을 통해 억압된 주체의 해방을 선언한다.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는 공간(‘권리의 권리’)이며 단결의 구심점이 바로 (민주적)노동조합이기 때문이다. 노조는 노동유연화라는 자본의 전제적 침략을 막는 것은 물론,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추구하는 지렛대다. 그 속에서 간접고용의 폐해와 지배이데올로기의 모순을 인식하고 여성노동에 고유한 억압과 착취의 형태들을 폐절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학문공동체와 지역사회는 적극적인 연대를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압박을 통해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용역을 퇴출하고 원청으로서 학교본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에 대한 2010년 대법원과 2013년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헌법재판소 판결(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기간제법의 합헌)과 서울시립대의 청소경비직 직접고용 실시로부터 무엇을 깨달았는가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곁에 존재하는 계급투쟁의 장소로부터 배울 수 있다. 1968년과 이듬해, 그 이듬해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업종과 지역, 지적·성적차이를 뛰어넘는 단결, 노동자와 학생 사이의 강고한 동맹, 그리고 오직 더욱더 확대되는 단결과 투쟁이다. 멈추지 않는 단결! 투쟁!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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