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족국가는 정념의 모방에 기초한다. 그것은 가상적 동일성을 생산하는 제도적 토대 위에 구축되며, 민족적 동일성은 개인들의 다양한 가상적 동일성의 최종적 심판자로 기능한다. 이 때 민족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상징들은 그것에 가상적으로 예속된 대중 내부에서 ‘정념의 정치’를 작동시킨다. 신성한 민족 구성원으로 과잉 동일화된 개인들은 과소 동일화된 개인들을 증오하고, 민족적 동일성의 침해에 대한 공포와 민족의 이익에 대한 희망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국가 내부에서 이러한 공포와 희망 사이의 무수한 모순을 목도할 수 있다. 민족적 동일성에 휘감긴 대중은 어떠한 변혁적 힘도 갖지 못한다.

  대학공동체는 어떠할까. 학교 커뮤니티 ‘중앙인’을 잠시 둘러봐도 대중의 가상적 동일성에 대한 자발적 예속을 확인할 수 있다. 중앙대라는 신성한 장막을 몸에 두른 과잉 동일화된 개인들은 학교 비판자들을 처단하고 낙인찍는다. 중앙대라는 동일성에 위해를 가하는 자들은 증오의 대상으로 환원된다. 그리고 중앙대 내부에 작동하는 원한이 가장 손쉽게 응징할 수 있는 자들은 구체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운동권’이다.

  운동권에 씌인 오명의 일부는 스스로가 자처한 모순들이 노정된 결과다. 여기서 구구절절 그들의 잘못된 편향을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학교라는 정치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개인들 사이의 이성적 교통을 강조하고, 중앙대라는 가상적 동일화와 그로부터 유발되는 공포/희망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청해왔다. 그것은 우애로운 관계·신뢰라는 능동적 정동을 동반하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연합 속에 결합함에 따라 더 많은 권리를 집단적으로 쟁취할 토대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절차·형식·제도의 틀을 넘어서는 것으로 기존의 교통관계를 변형시켜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된다. 여기서 자유는 이성이 정념을 압도하고 독립이 예속을 압도하는 개인의 권리를 말하게 된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정치적 중립이라는 기괴한 장막을 거두고 학교 공간을 다양한 개인이 교차하는 교통의 공간으로 사고하는 것, 중앙대라는 가상적 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나 학생들의 현실적 공통성과 이성적 교통을 재건하려는 집단적 시도는 운동권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중앙인에서 몇 글자로 훈수 두듯 가르치려는 이들보다 그리고 학내 모든 교통의 심판자를 자임하는 학교의 몇몇 부처보다 최소한 ‘건강한’ 운동권이 학교 ‘발전’에 더 큰 힘을 보탤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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