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일 /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빈센트 반 고흐 <탕기영감> 1888
빈센트 반 고흐 <탕기영감> 1888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와 일상화에 관한 논의는 흥미로운 역설을 다룬다. 즉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일상 속에서 항구적으로 경험하려는 욕망이 바로 카리스마의 가장 카리스마적인 어떤 것을 삭제해 버린다는 것이다. 카리스마를 일상화하려는 욕망의 비극적 소산은 ‘제도’로 남는다. 손에 잡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손으로 움켜쥐었을 때, 정작 욕망되었던 것은 휘발해 버리고 쥐어진 것은 딱딱하게 말라버린 허물 뿐이다. 우린 그 딱딱한 허물 속에서 처음 욕망되었던 것을 추론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처음부터 그 허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최면을 스스로에게 건다. 그것은 뒤르켐의 ‘사회를 사물로 간주하라’는 언명 속에서도 발견된다. 인간과 인간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는 물리학의 대상으로 간주돼야만 비로소 연구의 대상이 된다.

  사물 아닌 것을 사물로 간주하라는 억지는 예술에서도 관찰된다. 예술은 가슴 떨리는,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신비를 일상 속에서 경험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결국 그 욕망에 의해 빈 껍질의 사물로 남는다. 사물로 남은 예술은 강남 타워팰리스 거실에 걸린 과시용 장식물이거나 아니면 예술제도라는 기이한 사회적 사실의 형태를 띤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제도화는 언제나 비극적 서사로 나타난다. 예술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촉각 될 수 있는 형태의 사회적 사실이 되고, 또한 그것을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 “외부에서 작용하는 강제력”으로 행사된다. 적어도 예술의 경우 마르크스의 소외와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 개념은 정확히 일치한다. 예술은 처음에는 자신의 것이었으나 이제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며, 동시에 처음엔 자신의 것이었으나 이젠 자신에게 작용하는 외부의 강제력이다. 그런 방식으로 예술의 제도화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자, 예술의 속박을 의미한다.
 


상품화하는 기제로서의 제도


  바로 그런 이유로 제도로서의 예술은 가장 위험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어야 한다. 지금-여기 한국에서 예술은 이미, 그것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요구가 무색하리만큼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에게 예술은 수많은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을 배신하고, 그들의 욕망을 착취하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 예술은 상품에 의해 매개된 교환가치를 일컫는 단어이며, 그 상품의 천문학적 시장가격에 대한 공허한 탄성만큼이나 예술에 대한 대중들의 욕망을 핍진하게 만들어 버리는 어떤 것이다. 아, 방금 발설해 버렸던가? ‘교환가치’, ‘시장가격’이라는 음험한 단서를 말이다. 구차하게 커서를 되돌려 그 단서들을 지우지 않겠다. 이들은 제도화된 예술의 심장을 박동하게 하는 거대한 힘이 곧 이윤추구의 논리를 통해 맹렬하게, 끝 모르게 확장하는 자본임을 드러내 보인다. 이걸 다른 방식으로 서술해 보랴? 제도는 예술의 신비를 상품화하는 장치다. 제도는 예술이 그것의 형언할 수 없는 신비, 카리스마의 존재반경을 시장으로 둘러싸고 그 포위망을 좁혀가면서, 종내에는 그것의 숨통을 옭아매는 기구라 할 수 있다.

  이를 달리 설명해 보자.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예술가로서 대접 받지 못했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어쩔 수 없는 천형으로 받아들인 반 고흐의 불행이 일찍이 아카데미와 살롱의 대립과 투쟁 속에서 형성되어 갔던 당대 프랑스 예술계에 의해 일종의 ‘유예된 성공’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죽음 이후였다. 죽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었던 반 고흐의 유예된 성공은, 비록 원초적인 형태의 예술제도이긴 하나 그 제도의 원활한 작동을 그들의 손끝을 통해 담보했던 호사가, 평론가, 기자들에 의해 “목숨과 맞바꾼 불멸의 예술혼”으로 각색된다. 물론 그 불멸의 신비가 도달하는 궁극적인 목적지는 반 고흐 자신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우리 돈 1천5백억 원(<탕기영감>, 1888)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장가격이다. 우리가 반 고흐의 작품 앞에서 느끼는 이른바 감동의 실체 역시 따지고 보면 반 고흐를 비롯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살갗으로 실감할 리 만무한 그 숫자의 기괴함과 분리되지 않는다. 자본의 이윤추구 논리와 예술제도 사이의 이 경악스러운 공모 앞에서 정작 반 고흐 자신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왜소한 존재일 뿐이다.

  예술제도는 자본주의의 시장과 아귀를 맞출 수밖에 없다. 예술계와 시장 사이의 공모는 어쩌면 예정된 사회적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예술계의 존재근거는 생각보다 너무나도 취약하다. 이 글을 쓰고, 또한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처럼 예술의 신비한 아우라에 심취해서, 혹은 예술가의 카리스마에 동참하기를 욕망함으로써 인고의 학습과 수련을 거쳐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예술계의 구성원들은 정작 시장이 배분하는 다소간의 수수료에 생계를 의존하게 된다. 그 수수료는 운 좋게도 교수의 월급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미술관이나 화랑의 비정규직 큐레이터의 급여, 메이저 화랑 주변을 배회하는 평론가의 원고료, 미술기자의 월급, 옥션의 판매 수수료의 형태를 띤다. 그 대가로 예술제도는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최대한 중립화하고 나아가 그것의 작동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로 기능한다. 미술관에서의 전시, 언론의 기사, 평론가의 찬사는 한계생산성 체감의 법칙을 무색하게 만드는 파격적 기울기의 가격곡선을 갖는 상품을 만들어낸다.
 


개인으로서의 예술가, 명품으로서의 예술작품


  예술제도와 시장 사이의 중첩은 생각했던 것보다 본질적이다. 예술과 자본주의는 보다 정교하게 결합하는 톱니들로 맞물린다. 무엇보다 예술과 자본주의는 ‘개인’의 신화를 공유한다. 주지하다시피, 완전한 형태의 시장의 이념형은 생산과 공급의 모든 정보로 무장한 시장 행위자로서의 ‘개인’을 상정한다. 물론 그러한 시장적 존재로서의 개인을 정당화한 것은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구가하는 자유인이며, 이 자유인은 보수적 민주주의 담론에 의해 지탱된다. 하지만 완전한 개인의 형상은 시장과 자유에 관한 기존의 정치경제학 담론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서 예술은 지배와 저항의 정치공간에서 발견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개인의 이상을 제공한다. ‘아리스토노토스’라 했던가. 기원전 700년 어느 예술가가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처음 새겨 넣음으로써 자신을 타자와 구별된 존재로 규정하려 시도한 이래, 예술은 자율적 존재로서 개인을, 세계와 투쟁하고 그 투쟁 속에서 가난과 멸시로 죽어간 수많은 예술가들의 비극적 삶을 통해 육화시킨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 고흐가 단순한 예술가 아닌 불멸의 존재로 신화화되는 이유 또한 그것이다. 그가 선택했던 비극적 죽음은, 마치 십자가를 통해 “스스로 원한 죽음과 부활”이라는 궁극의 내러티브를 완성했던 누군가의 그것처럼, 곧 세계에 대한 개인의 승리를 영웅적으로 증거했다. 이른바 ‘창조’라는 예술생산의 신학적 모델에 함축된 것처럼 예술가는 조물주의 반열에 오른 완전한 개인을 상징한다.

  나아가 예술은 수요와 공급의 교점에서의 가격결정이라는, 거추장스럽고 기계적인 이윤추구의 한계상황을 넘어설 방법을 제공한다. <모나리자> 앞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가격을 논하는 것은, 중세 말기에 구원의 대가를 논하는 일만큼이나 불경스러운 일이다. 예술작품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모든 상품이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이 된다. 작품이 된 상품은 곧 ‘명품’으로 호명된다. 명품은 예술의 아우라를 경험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을 대리충족시키면서 이윤추구에 관한 시장논리의 한계를 무력화시킨다. 이제 알겠는가? 오늘날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명적 자본가가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예술가의 이름과 나란히 호명되는 이유를? 또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보수적 정치와 극단적 이윤추구의 자본주의적 형태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미술시장에서 현현되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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