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엄지 / 소설가

 

  그는 지쳤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어두움과 비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그는 어두움과 비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덜 어둡거나 더 어둡거나. 창밖은 늘 어두웠다.

  그는 밤마다 생선구이를 먹었다. 고등어나 도미, 가끔은 연어를 먹었다. 우유도 먹고 카레를 먹기도 했다. 환기가 잘 되지 않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 석 달이 지났고, 비는 석 달 동안 한 번도 그치지 않았다.

  그치지 않는 비 때문에 몇 개의 도시가 물에 잠겼다.

  넘쳐나는 비 때문에 괴질이 확산되었다.

  원인 모를 스파크와 대형화재가 빈번했다.

  사람들은 종종 번개를 맞았다.

  그는 비가 내리는 내내 성실했다. 그는 비가 내리기 전에도 성실했다. 지금처럼 성실하다면 그는 곧 그가 원하는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배터리가 없고 충전기도 없었다.

  충전기는 어디로 간 걸까? 그는 충전기 구입을 결심했다. 그는 마트로 향했다.

  하늘은 검고 구름은 알 수 없는 빛으로 무리지어 흘렀다. 구름 때문이었군. 그는 그치지 않는 비의 원인을 구름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구름의 음모. 그는 걸음을 빨리했다. 우산은 비로부터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그는 우산에 배신감을 느꼈다. 우산의 음모. 그가 우산의 음모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안 비는 더욱 거세졌다. 마트에 도착했을 때 그는 완전히 젖어있었다. 그는 새 우산을 사고 싶었다.

  그는 우산 코너로 향했고, 우산 코너는 비어 있었다. 그는 새 우산을 포기했다. 그는 생선 코너로 향했고, 생선 코너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는 생선을 포기했다. 그는 충전기 구입을 위해 전자기기 코너로 걸어갔고, 전자기기 코너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는 충전기를 포기했다. 물 먹는 하마 코너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마트 안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는 빈손으로 마트를 나왔다. 그는 그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음모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이불은 무겁고 눅눅했다. 핸드폰을 언제 다시 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누구에게 전화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매일 닦아도 매일 새로운 곰팡이가 벽에 자라났다. 아마 새벽이 된 것 같았다. 덜 어둡거나 더 어둡거나. 창밖은 늘 어두웠고, 그는 문득 겨울을 예감했다.

  크리스마스가 되겠지. 크리스마스가 되겠어. 춥겠지. 춥겠어.

  그는 무릎이 시렸다. 그는 코트가 필요했다. 그는 검정코트를 원했다. 그는 무릎까지 오는 검정코트를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검정코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는 언젠가 번개를 맞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곧 그것에 대해서 확신했다.

  번개를 맞겠지. 번개를 맞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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