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1.11 수 11:46
기획문화
'문화의 도살장'화 되어가는 현대미술관심상용 /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
문성준  |  tmhbit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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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승인 2013.10.24  07: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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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에 대우엔지니어링, 대우조선 부사장과 대우전자 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CEO 관장이 취임했다. 미술관장직은 전문경영인이 맡고, 학예실과 큐레이팅은 외국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그 CEO 관장의 소신이었다. 그래야 예술이 관광수익 창출에 기여해 예술수출 전선이 활기를 띨 거라는 게 그 이유였다. 반면, 같은 해에 있던 인터뷰에서 밝힌 알프레트 파크망 당시 퐁피두 국립미술관장의 생각은 이와 사뭇 달랐다. 세계와 함께 고민하되 답은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는 것,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기획과 사회공공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 고도의 전문성으로 당대와 후대의 지적, 정신적 물음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글로벌 미술관의 사명이었다. 전 피카소 미술관장 장 클래르가 오늘의 미술관에서 ‘문화의 도살장’을 목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술관의 성공은 미술관을 방문한 방문객의 숫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술관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방문객의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 미술관의 성공은 보여줄 수 있는 소장품의 숫자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인간적인 차원에서 인식하는 방문객들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다. 미술관의 규모는 성공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다만 그 안에서 방문한 관객이 진정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이성적인 통찰을 가능케 할 공간들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미술관이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문화의 도살장이 되고 말 것이다”. 한국의 미술관 담론이 경쟁우위, 성장주의, 실적 등의 논리에 경사되면서 제대로 된 문제의식조차 정립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단 증거다.

  CEO 관장 뿐만이 아니다. 작가 출신이건 학자출신이건, 새로 취임한 관장들의 일성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스타 마케팅을 비롯한 이윤창출 논리와 성장주의 이데올로기 사이를 맴돈다. ‘한국미술을 성장 시키겠다’, ‘스타작가를 만들겠다’, ‘미술 한류 붐을 만들겠다’, ‘외국인을 포함한 관객 수를 수백만 명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것. 게다가 이미 기업 스폰서를 끌어들이는 게 유능한 관장을 결정하는 유력한 증표가 된다. 필립 모리스 같은 담배회사를 끌어들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글로벌 정유회사인 BP를 끌어들인 테이트 모던 미술관 등의 성공사례로 구성된 교육프로그램 신설이 유행한다. 광고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관객유치에 초점을 맞춘 블록버스터 전시개최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하지만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한 바 있듯,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기업 이면의 부도덕적인 기업 활동을 은폐·정당화하면서 공공선과 대중의 복지를 위하는 척하는 비교적 값싸고 효과적인 선전효과로서 기능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반감을 살 개연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들은 자체검열에 의해 배제된다. 오늘날 미술관은 대단히 분주한 사업이 됐지만 정신적으로 척박하고 도덕적 퇴락의 면모가 역력하다.


그들만의 몰취향


  엄격하게 차단된 클럽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미술의 작동에서 미술관의 역할은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 지구촌에서 단 수십 명의 억만장자들이 어떤 작가가 띄울만한 가치를 지녔는지, 누가 가격을 불문하고 무조건 구매하고 보아야 할 작가 인지를 결정한다. 수백만 달러나 하는 현대 미술품에 눈독을 들일만 한 사람은 LVMH그룹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나 피노 프랭탕 르두트의 회장 프랑소아 피노 같은 소수의 바이어들로 제한될 뿐이다. 이들이 컬렉션과 경매기록과 기사거리의 중심이자 현대미술품을 사고 팔면서 이익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 클럽 주인공들의 취향에서 그들 자신과 사람들을 인도할 어떤 번뜩이는 사회적 모델이나 밝은 빛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그것이다. 이들의 판단은 정보의 공유와 상호 모방으로부터 온다. 이들 모두는 서로 잘 알고, 늘 서로를 살피고 모방하며 동시에 같은 것을 사들인다. 미술품의 투자 매뉴얼은 간단하다. 그들이 사들이는 동일한 것들을 구매하면 된다! 브랜드와 소문 이외의 판단기준을 가진 컬렉터를 찾아보기 어려운 건 뉴욕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콜렉터들은 다른 사람이 구매하는 작가를 그대로 따라 구매한다. 그들은 마치 블루피시처럼 떼지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작가라면 안심해도 좋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떤 콜렉터가 줄리앙 슈나벨을 찾는다는 소문이 돌면 모두 슈나벨을 사지 못해 안달한다. 또 어떤 콜렉터가 키스 해링의 작품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돌면 해링의 작품 200점이 순식간에 팔려 나간다. 파리 2대학의 장-루이 아루엘 교수의 냉혹한 표현을 빌자면, 그들의 취향에선 “역사와 정신과 감성의 촉수들에 돈을 연결시키는 것 외의 다른 어떤 것도 확인되지 않는다. …… 이들이 하는 일은 그들의 사기-예술 놀이로 진정한 예술을 광범위하게 오염시키는 것이다”. 마크 블로흐는 이미 1940년에 이러한 사회의 도래를 예견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이자소득으로 사는 상류계층의 종말, 즉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취향이 부재하는 인종 말이다. 블로흐가 지적한 마지막 단계에서 부자들, 심지어는 억만장자조차도 자신들의 부를 유지겵村컸歐� 위해 매우 많은 시간을 일해야만 한다. 헌데, 갤러리를 방문하고 예술작품들을 많이 보고, 예술에 관련된 글을 읽거나 역사와 문학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바로 그들이 현대 미술의 먹이사슬에서 지존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세대를 거쳐 내려온 탁월한 취향의 주체들이었던 과거의 귀족들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그들의 몰취향에서 진정한 예술적 선택으로 인도할 수 있는 상위 준거들의 부재를 확인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새로운 부자들에게 톱으로 이등분된 채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상어건, 코끼리 배설물로 범벅이 된 마리아건, 성기와 성교의 적나라한 노출이건, 고철덩어리건, 케케묵은 카펫이건, 폐타이어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더라도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자주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그들의 행위를 매우 탁월한 심미안의 결과일 뿐 아니라 숭고한 공공적 행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술관의 새로운 역할이 요구된다. 즉 그들이 선택한 것들을 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에 올림으로써 그것들의 미적 수준과 투기적인 가치를 확인하는, 일련의 정당화 절차를 밟는 것이다. 예술의 억만장자 아마추어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진정한 걸작들 사이에 동등하게 배치함으로써, 그것들을 과거의 걸작들이 지닌 탁월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포장하고 우상화하는 것이 미술관의 새로운 임무가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결국 유능한 미술관장이 내리는 박애주의적 결정들은 일관되게 컬렉터들의 배를 불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필립 레니에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큐레이터들도 미술관의 운영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기꾼이 되도록 강요 받는다.

  매출 1조 원을 목표 삼아 달려가는 미술시장을 보조하는 미적 정당화 기제, 관람객 2백만 명 동원이 궁극의 비전이 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관 담론의 현주소다. 그런 미술관을 가진 사회의 미래는 어둡고 위태롭다. 그것은 소중한 가치를 모두 현금화한 사람이 봉착하게 되는 위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장과 그 가치체계를 어느 것보다 확고한 가치우위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한국사회에서 미술관의 파국은 그래서 더 피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돼가고 있다. 기술·전략적인 목적들의 가시적 달성이 지속적으로 구성원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 것이다. 또한 거래가 활발해지고 매출액이 증가하며, 관람객의 줄이 길게 이어지는 광경은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느 때보다 순조롭다고 느껴지는 한 시점에 티핑 포인트가 도래할 것이다. 이것이 더 늦기 전에 우리의 미술관과 미술관 담론을 되돌아 봐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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