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 /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정책은 경제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와 같은 경제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학이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데에는 크게 이견이 없겠지만, 과도한 시장 중심의 접근방식은 과학정책의 구조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최근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과학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시장으로만 평가하는 이른바 시장실패 개념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가령 보즈먼과 세어위츠는 시장 가치평가, 시장실패 가설, 그리고 경제적 메타포가 과학정책의 담론을 과도하게 지배하면서 ‘왜’라거나 ‘어떤 목적으로’라는 정치적 물음들을 ‘얼마나?’라는 경제적 물음으로 바꾸어 놓는다고 지적한다. 두 사람은 시장 중심 모형 대신 공공가치 실현을 중심으로 과학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 공공가치 모형이라는 대안적인 분석틀을 제기한다.

  공공가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사회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권리, 규범적 기준, 사회적 지원, 그리고 절차적 보장 등을 평등하게 구현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이 모형에서 시장가치와 공공 가치가 상호배타적이지는 않다. 즉 공공 실패가 시장 성공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공공 실패와 시장실패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고 가장 바람직한 상황으로 공공 성공과 시장 성공이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공공가치 모형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은 시장 효율성과 무관하게 ‘시민들에게 필수적인 공공가치를 제공하는데 성공했는가’이다. 그동안의 시장 모형이 정교화 됐지만 경제적 분석만으로는 사회가 직면하는 정책 선택의 모든 범주를 포괄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더라도 공공가치를 실현하는데 실패했다면 좋은 정책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밀양 송전선 건설을 둘러싼 갈등에서 창원지법은 ‘송전선 건설이 공익사업이며 완공하지 못할 경우 전력수급에 차질이 우려된다’며 한전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공익을 시장적 개념으로 잘못 인식한 전형적 경우에 해당한다. 공공가치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약자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밀양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강행되고 있는 송전선 건설은 실상 도시민들이 쓸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지역민들의 생존권과 거주지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경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보즈먼과 세어위츠는 공공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는 과학정책의 대표적인 문제를 ▲가치 구분과 우선순위 설정에서 나타나는 공공 실패 ▲단기적인 전망 ▲자원의 대체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의존 ▲혜택의 불평등한 누적 등으로 꼽았다. 가치구분과 우선순위 설정은 어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한정된 자원을 어떤 정책에 지원할 것인지의 문제다. 단기적인 전망의 문제는 경제적 합리성과 환경 문제의 상충에서 비롯된다. 자원의 대체 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 문제는 환경문제에 대한 총량제식 접근의 문제에서 잘 나타난다. 가령 자연습지 대신 인공습지를 만들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거나 송전선 건설부지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보상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이다. 이처럼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을 대체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경제적 환원주의가 시장적 접근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마지막으로 혜택의 불평등한 누적은 사회적 평등의 문제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게 쏠린다면 그것은 공공 실패인 셈이다.

  공공가치는 경제적 가치에 비해서 구체적 지표를 만들거나 정량화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공공가치가 실제로 시장가치보다 덜하거나 실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동안의 과학기술정책이 주로 시장가치나 경제적 영향을 중심으로 그 틀이 생성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가치 모형을 향후 과학기술정책 수립과 평가체계에 적용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