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일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지난 10일 개최된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안)>(이하 트래픽 관리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통신정책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 과장은 “이 관리안에 따라 모든 요금제에서 무선인터넷전화(이하 mVoIP)가 허용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얽힌 문제여서 여전히 고민 중”이라며 “경제여건을 보고 시기를 고려해야할 문제”라고 답했다. 공청회의 대상이 된 트래픽 관리안이 현실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지침도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미래부 담당자의 발언은 우리 사회에서 망중립성 문제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통신규제기관조차 망중립성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 없이 단지 통신사, 콘텐츠/애플리케이션 사업자, 소비자 사이의 이해관계 조정 문제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망중립성과 관련한 가장 큰 현안은 모바일 통신 환경에서 mVoIP 서비스의 차단 문제다. 지난해 6월, 통신사들이 카카오톡의 mVoIP 서비스인 보이스톡을 차단하면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통신사들은 다음(DAUM)의 마이피플이나 네이버의 라인과 같은 mVoIP 서비스를 차단해왔다. 이후 LGU+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요금제에서 mVoIP을 허용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다른 통신사들도 이후 출시된 요금제에서 mVoIP을 허용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10월 현재까지도 여전히 일부 요금제에서는 mVoIP 차단이 약관에 명시돼 있기는 하지만, 점차 허용하는 추세로 가고 있으니 괜찮은 것일까?


인터넷에서 사적 검열관을 허락할 것인가


  mVoIP 차단 문제가 현안 이슈이기는 하지만, 모든 요금제에서 mVoIP를 허용하라는 요구는 비단 ‘좀 더 저렴한 요금으로 인터넷전화를 사용하게 해달라’라는 요구가 아니다. 단지 요금의 문제였다면, mVoIP 서비스를 통한 전화든 통신사를 통한 전화든 보다 싸게 이용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이슈는 훨씬 더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통신사에게 인터넷 상의 트래픽을 자의적으로 차단하거나 차별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인가의 문제다. 통신사들이 mVoIP 서비스를 자의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면, 다른 인터넷 콘텐츠나 서비스 역시 차단하거나 차별할 권한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KT는 지난해 2012년 2월,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서비스를 5일 동안 차단한 적이 있으며, P2P 트래픽 역시 차단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통신사들이 자의적으로 어떤 트래픽은 더 빠르게 전송하고, 어떤 트래픽은 차단하는 식의 통제를 쟁점으로 하는 것이 망중립성 문제다.

  간단히 얘기해서 망중립성은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트래픽을 그 내용, 유형, 송수신자, 이용기기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통신사는 통신망을 통해 전송되는 것이 메일인지 동영상인지, PC로 이용하는지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지 등과 상관없이 동등하게 전송하는 도관의 역할만 하라는 것이다. 전기 콘센트에 세탁기가 연결되는지, TV 제조사는 어디인지, 냉장고의 성능은 어떠한지 전력회사가 상관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인터넷은 그렇게 설계됐다. 이를 인터넷의 단대단(end-to-end) 원칙이라고 하는데, 이에 따른 인터넷 개방성은 지금까지 인터넷의 자유와 혁신을 가져온 원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만일 냉장고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전력회사가 어떤 기능을 허용하는지 눈치를 봐야 한다면, 냉장고의 빠른 혁신이 가능할까? 마찬가지로 통신사가 mVoIP 서비스를 자의적으로 차단한다면, 누가 mVoIP 서비스의 개발에 매달리려 하겠는가.

  아이폰 도입 전후의 무선인터넷 이용환경을 비교해보면 인터넷 개방성이 혁신에 미치는 영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이폰 도입 전에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통신사의 관문을 거쳐야 했다. 휴대전화로 통신사가 설정한 관문에 접속하면 통신사가 제공하는 메뉴들이 나온다. 이용자들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제한된 콘텐츠를 이용해야 했고, 콘텐츠 제공자들은 메뉴의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통신사들에 의존해야 했다. 와이파이가 가능한 휴대전화도 공급되지 않았다. 무선인터넷 이용요금도 비싸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는 이용자들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이폰 도입 이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굳이 통신사의 관문을 통하지 않고도 3G나 와이파이를 이용해 인터넷에 바로 접속할 수 있게 됐다. 애플리케이션 제작 업체들도 통신사의 허락을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앱을 만들어 앱스토어를 통해 제공할 수 있게 됐고 다양한 앱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누군가 중앙에서 어떤 앱들은 되고, 어떤 앱들은 안된다고 통제했다면 인터넷의 다양한 혁신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망중립성과 공정경쟁, 그리고 인권


  통신사들이 망을 통제하려는 이유는 물론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통신가입자가 포화상태에 가까워지면서 통신사들은 콘텐츠 영역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경쟁사의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는 품질을 낮추거나, 자신의 계열사 혹은 추가 비용을 지불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은 우선적으로 전송해주려는 동기가 발생하게 된다. mVoIP 서비스가 1차적인 논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통신사들의 전통적인 수익원인 전화 서비스 수익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정경쟁의 문제를 야기하는데, 통신사가 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경쟁사업자를 차별겧窪┎�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0일 공청회에서 통신사들은 ‘mVoIP 차단은 기술적인 트래픽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음성통화 수입 감소 우려’에서 비롯된 것임을 언급했는데, 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경쟁업체의 애플리케이션을 차단하는 ‘반경쟁행위’를 하고 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망중립성은 인터넷 이용자의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 영리적 목적이든 비영리적 목적이든, 인터넷에 연결된 이용자는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나 콘텐츠를 다른 이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통신사가 자의적으로 트래픽을 통제할 수 있다면, 정부의 압력으로 혹은 정부에 협조해 정치적 목적의 검열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통신사들이 저작권 단체와 협력해 저작권 침해가 의심되는 이용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발송하고, 반복적으로 저작권 침해가 이루어질 경우 이용자의 인터넷 품질을 저하시키는 제도(6-Strike)를 시행했다. 저작권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저작권을 명목으로 이용자의 인터넷 이용을 통제하는 것은 사적 검열이고 망중립성 침해다.

  망중립성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와도 연결된다. 통신사들이 트래픽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선 트래픽을 분석해야 하는데, 이는 이용자들이 mVoIP 서비스와 P2P 서비스 중 어느 것을 이용하는지 알아야만 선별적인 차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망중립성 논란이 일고 있는 배경에는 이와 같이 트래픽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 즉 심층패킷분석(DPI)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망중립성 법안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통신사들이 트래픽 분석을 통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망중립성은 우리가 미래에 어떤 인터넷을 원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통신사와 같은 망소유자가 통제하는, 국가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제된 인터넷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개방되고 자유로운 인터넷을 만들 것인가. 즉 망중립성은 중앙의 권력이 아니라 말단의 이용자에게 인터넷에 대한 통제권을 줘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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