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연 / 상지대 법학부 교수

 
 
 

  자본주의 국가의 규율 통치는 언제나 자본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관리·배제하는 시스템을 구조화한다. 관리와 배제의 전략은 범죄 통제의 영역을 넘어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경찰질서작용 또는 사회복지 시설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오늘날 강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경찰국가화는 법적으로 행위통제라는 표출의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자본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 빈곤자를 반사회적 질서교란의 위험을 지닌 잉여인간으로 낙인찍어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이다. <빈곤의 형벌화: 극빈과 인권에 대한 유엔특별조사관 보고서>는 빈곤의 형벌화(빈민을 처벌하고 분리하고 통제하며 빈민의 자율성을 해치는 정책, 법 및 행정규제)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예전부터 존재해왔고 현대에 점점 더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양상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도시 미화와 개발을 위한 투자유치에 대한 정부의 이익과 이러한 목표에 방해가 되는, 즉 도시 미관을 해치고 경제적 번영의 환상을 깨뜨리는 홈리스의 존재를 규제함으로써 이들의 존재를 감추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사회안전담론과 사회통제시스템


  사회안전담론과 더불어 공공의 안녕과 질서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사회통제시스템이 초래한 반문명적 인권유린의 위험성 그리고 법이 그 존립과 기능을 보장해야 하는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사건이 1987년 부산 형제복지원사건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부랑인 단속과 강제구금의 근거가 된 것은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좥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조치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지침좦)이다. 이 훈령에 따르면 “일정한 정주가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터미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건전한 사회 및 도시질서를 해하는 모든 부랑인(규칙 제1장 제2절)”이다. 심지어 이 훈령은 ‘노변행상, 빈 지게꾼, 성인껌팔이 등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자들’을 준부랑인으로 규정해 부랑인 대책에 준하여 단속 조치했다(규칙 제1장 제3절 6호). 즉 거리에서 외관상 아름답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경찰질서법상 단속과 강제구금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부랑인 문제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한다. 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농민을 토지로부터 추방함으로서 무일푼의 프롤레타리아화 했던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1960-70년대 초반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집약적 경공업분야를 확대하기 위해 농민의 이농을 부추겨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 결과 대규모의 농촌지역의 빈농들이 도시로 이주해 그들 중 일부가 부랑인 계층을 형성했다. 또한 이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해 무허가 판자촌의 철거 등 대규모 도시정비사업의 대상자가 됐다. 즉 주거의 불안정이 취업의 불안정과 함께 대규모의 부랑인을 양산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배제된 자들이 부랑인 또는 준부랑인들로 규정된 것이다.

  형제복지원사건은 이같이 한국의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야기된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을 보여줌과 동시에 독일의 히틀러 시대에 부랑인을 반사회적 행위자로 규정해 예방적 강제구금을 자행한 ‘노동 기피 왕국 작전’에서와 같은 파행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 특수성을 찾아야 한다. 이는 특히 당시 정치권력의 반민주성·반민중성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한 통치권력은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는 통치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적과 친구를 구별하고, 그 적을 박멸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는 반동적 정권보위전략을 필사적으로 구사한다. 적의 실체가 없으니 내키는 대로 조작해 가공하는 것이다. 불법적 군사정부에서 부랑인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교란하는 게으르고 나태한 반사회적인 ‘적’으로 등장한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가 ‘국토건설단’ 등의 이름으로 부랑인을 강제구금하고 강제노역에 동원했던 것과 같이 흠결된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정화와 사회악 일소를 내세우며 삼청교육, 사회정화위원회의 조직과 사회정화 국민운동, 학원정화사업인 녹화사업을 실시했다. 또한 대통령 훈령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공공의 안녕과 질서의 교란자로 부랑인을 지목하고 이들에 대한 강제구금과 사회격리의 통치전략을 수립·시행했으며,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대비한 거리정화프로그램을 통해 부랑인에 대한 단속과 강제구금을 강화했다.

  형제복지원사건은 이같이 불법적 군사정권이 정권보위를 위해 사회 안전과 복지의 이름으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자행한 총체적 인권 침해 그 자체다. 이 과정에서 부랑인은 생물학적으로는 사람이나 법적으로 인간실격의 더러운 존재에 불과해 청소돼야 했다. 즉 이들은 ‘권리를 가질 권리’ 조차 없는 법적 무지위 상태 그 자체였던 것이다. 결국 부랑인에 대한 일체 단속과 강제구금의 결과 수용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수용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기간에 수용된 사람들 대부분이 퇴소하지 못하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설에 수용돼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범죄란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중대한 인권유린행위를 말한다. 정부범죄, 인권범죄, 국가에 의해 조종된 범죄, 국제법상의 중대한 범죄, 중대한 인권침해행위 등이 국가범죄와 유사 내지 동일한 의미의 개념으로 사용된다. 제5공화국의 헌법에서도 법률에 의해서만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었다. 형제복지원사건은 당시 경찰관직무집행법, 경범죄처벌법, 사회복지사업법, 생활보호법 등 어떠한 법률에도 근거함 없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국가조직에 의한 단속 체계에 의해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자행된 불법적인 강제구금사건이다. 내무부 훈령은 행정규칙에 지나지 않으며 법률이 아니므로 부랑인의 강제구금에 대한 법적 근거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강제구금은 차치하고 형제복지원 내에서 자행된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은 없는가? 국가 범죄의 주체에는 제한이 없다.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국가기구나 국가의 후원을 받는 단체뿐만 아니라 사기업이나 민간조직조차 국가범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국가의 지원과 감독을 받는 사회복지법인인 형제복지원의 법적 지위나 국가와 사회복지법인의 업무위탁 법률관계상 국가는 형제복지원에서의 인권유린에 대해 관리·감독자로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자기책임으로 국가책임을 부담한다. 또한 형제복지원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위기 속에서 정권보위 차원에서 청와대, 내무부, 법무부, 보안사, 안기부, 검찰, 부산시장 등의 위법한 정치적 압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축소돼 진상규명과 피해자에 대한 효과적 구제조치가 저지된 체제의 범죄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과 경찰국가화를 성찰해야


  형제복지원사건은 민주정부로의 체제 전환기에 정리된 과거 인권침해 사건들에 버금가는 국가폭력에 의한 총체적 인권유린의 국가범죄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국가범죄는 다수 국민의 동의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형제복지원사건 역시 불법정부인 전두환 정권이 국민적 동의와 묵인 속에 자행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 역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 대해 시민으로서 공동 책임을 안고 있다. 나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책임은 진실규명, 책임자처벌, 피해배상과 함께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개혁과 인권침해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구축을 기본내용으로 한다. 형제복지원사건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 그리고 피해자에 대해 국가가 직접 사과하고 조세로서 국가배상을 하는 것은, 질서와 사회복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범죄를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주권자적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작은 정부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가난한 자를 관리하고 격리하는 ‘철 장갑’을 끼고 나타나는 정부다. 이 사건에 대한 국가책임은 최근 신자유주의적 안전 담론 속에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문화 구현’, ‘민주시민의 의식과 준법의식 함양’이라는 이름으로 한층 강화되고 있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집시법, 경범죄처벌법 등의 경찰질서국가화의 의미를 새롭게 성찰하게 한다. 이 점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2013년 현재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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