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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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정치
테러와의 전쟁, 그 불가능성박민하 / 게발트 회원
김건우  |  madein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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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승인 2013.10.24  07: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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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동상의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출현을 목격했습니다. …… 적이 예상하지 못하고 일찍이 세계가 본 적이 없는 정확성과 신속성, 대담성을 결합하여 ……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2003년 5월 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군복 차림으로 항공모함에 오른 채 이라크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실제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군사적 성과는 눈부신 것이었다. 2차 대전 초기 독일이 2만7천 명의 사상자를 내며 44일 만에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를 함락한 것에 비해 미국은 프랑스 3/4 규모의 이라크를 점령하는 데 161명의 전사자만으로 26일 소모했을 따름이다. 이제 테러리스트들이 제거되고 이라크에 (서구식)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지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부시의 자신만만한 연설 이후 이라크는 어떻게 됐는가. 내전과 테러, 부족/종파 갈등 등이 지속됐다. 미국은 9년 동안이나 지루한 내전에 휘말린 끝에 2011년 어설픈 전쟁 종식 선언 후 군대를 철수시켰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혼란에만 빠뜨린 미국.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대테러전쟁과 전쟁에 대한 ‘낡은 사고’


  2003년 이라크전쟁의 작전명인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 Freedom)’의 당위와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후세인이 알카에다 세력과 연계돼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함으로써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 둘째, 이라크를 민주화하고 중동의 다른 이슬람 국가들을 민주화 하기 위한 개입이다. 셋째, 후세인은 자국민(특히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죽인 범죄자이기 때문에 처단해야 한다. 이를 보면 이라크전쟁의 목표가 당초 이라크라는 ‘국가’ 또는 ‘후세인정권’에 한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둘째 목표는 폭정을 무너뜨리고 이라크를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로 재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를 담은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 전쟁을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전쟁이라 주장했다. 무기과학과 정보기술의 현격한 발달에 의지해 최소한의 피해로, 단기간에 원하는 타깃을 제거할 수 있는 ‘스마트 전쟁’ 개념이 그것이다. 마치 외과수술을 하듯 문제되는 적만을 제거하면 이미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 군대의 인도 하에 이라크는 보다 안전한 사회로 재편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영국의 정치학자 메리 캘도어는 미국의 전쟁에 대한 이러한 사고가 오히려 이라크 정국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를 ‘낡은 전쟁’이라 규정한다. 낡은 전쟁은 클라우제비츠에 의해 정의된 전통적인 전쟁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클라우제비츠에게 있어서 전쟁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정치적인 과정이다. ①전쟁은 “상대에게 우리의 의지를 강제하기 위한 폭력 행위”, 즉 상대방에게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행위이다. ②전쟁이 비록 합리적인 과정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이 목숨을 걸도록 설득하기 위한 감정적 대의명분 또는 도덕적 정당성의 확보가 필요해진다. 따라서 전쟁은 애국심, 종교적 열정, 충성심 따위의 감정을 자극하는 내러티브들을 동반한다. ③여기서의 전쟁은 정치적 목표에 종속된 전문적인 주체(군인)에 의해 수행되는 제한적인 전쟁이다. 전쟁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목표와 도덕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이를 도입해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은 세계적/지역적(중동) 차원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 또는 영향력 확대이며, ②는 ‘악의 축’, ‘정의의 전쟁’ 등과 같은 감정적 선동들, ③은 앞서 설명한 스마트전쟁, 외과적 타격 따위의 신속한 군대 전술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양상은 미국이 그리던 낡은 전쟁의 구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고, 미국은 이라크 정국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여기서는 도덕적 대의명분도 정치적 목표도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발달한 군사기술로도 이를 역전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이라크 전쟁이 전혀 다른 ‘새로운 전쟁’의 형태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새로운 전쟁’


  독일의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이라크 전쟁과 같은 상황을 ‘새로운 전쟁’이라 칭했다. 새로운 전쟁은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①비대칭적 전쟁 ②전쟁의 탈군사화 ③전쟁의 경제화. 이를 이라크의 상황에 빗대어 설명해보자. ①비대칭적 전쟁. 현존하는 모든 국가들을 압도하는 미국의 전력 앞에 대칭적으로 맞서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실제로 이라크에서는 침공 직후 이라크 군대와 국가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관습적이지 않은 방법이라면 의미가 달라진다. 이러한 비대칭 전략은 이라크전쟁에서 ‘테러리즘’으로 드러났다. 테러리즘에서 상대에게 군사적 피해를 입히는 것은 목표가 아니거나 부차적이다.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는 이미지를 이용해 상대의 정치적 의지를 직접적이고 상징적으로 타격한다. ②전쟁의 탈군사화. 점령이 길어지면서 미국의 공격대상이(후세인 잔당을 겨냥한) 수니파 지역에 집중됐는데, 이것이 종파적인 내전을 촉진했다. 이전에는 큰 영향력이 없었던 수니파-시아파 갈등이 서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심화됐다. 이라크 정부와 시아파·쿠르드족은 서구의 점령과, 그 반대는 후세인 독재 지지자·테러리스트와 동일시됐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폭력이 심화됐고, 폭력은 각자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메리 캘도어가 ‘정체성의 정치’라 칭한 이러한 현상에서 전투원은 더 이상 정규군대로 한정될 수 없다. 따라서 이에 맞서는 미군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 아니라면 전쟁 규칙에 입각한 전투 대신 상대방을 말살하는 것 외에는 대처법이 없었다. 그 결과 이라크에서 대규모의 민간인 살상과 도시 파괴가 벌어졌다. 실제로 연간 2-3천 명 수준이던 민간인 사망자 수가 전쟁종식선언 이후인 2006-7년에는 연간 2만5천 명 규모로 폭등했다. 이는 다시 ‘성전’에 뛰어드는 전쟁성원들을 보충하도록 했다. 이러한 유형의 폭력은 정규군간의 제한적인 전쟁에 비해 폭력의 강도는 약할지언정, 더 잔혹하고 끔찍하며 오랜 기간 지속된다. ③전쟁의 경제화. 전쟁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이른바 ‘지하경제’가 형성됐다. 직접적으로는 약탈을 통해, 좀 더 장기적으로는 상대측 정체성을 공유하는 민간인에 대한 노예노동, 학살 또는 각종 무기 밀매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각지에 흩어진 군벌들이 이를 주도했다. 군벌들은 폭력과 내전이 확대될수록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고, 국가붕괴로 인해 절망한 민간인들이 이들의 전투성원이 되는 현상이 빈번해졌다. 또한 민간군사회사들이 출현해 고문, 학살 등 각종 더러운 업무들을 대행했다. 이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동기는 애국심, 정의 따위보다는 경제적 이해에 훨씬 가깝다. 또한 정규 미군에 비해 미국 내외의 비판적 여론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새로운 전쟁에서 클라우제비츠는 유효한가?


  클라우제비츠적 사고에서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는 것은 곧 그 대상이 명확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에서 그 대상은 모호하다. 대체 어디까지 상대방을 꺾어야 미국의 정치적 목표(민주주의 국가 건설 또는 테러리즘 종식)가 달성될 수 있는가? 그 전에 상대방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미군의 공격이 계속될수록 현지에서 이 전쟁이 제한적 의미에서 후세인 정권, 테러리스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슬람을 상대로 한 서구의 전쟁이라는 믿음을 강화했을 뿐이다.

  전쟁의 대상이 소멸됨과 동시에 전쟁의 주체도 소멸됐다. 전쟁의 주체는 국민과 병사에서 군벌과 용병으로 교체된다. 이들은 정치적 의무감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이 주체가 되는 근·현대의 국가건설전쟁이나 국가 간 전쟁과는 다르다. 단지 다른 이들에 대한 증오, 또는 경제적 생존을 위해 잔혹한 폭력을 반복할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대테러전쟁이 낳은 것은 이라크에서 책임 있는 정치체제의 건설과 국제사회로의 온전한 복귀보다는 국가와 사회 자체의 붕괴였다.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전쟁기술에만 의존할 뿐이지 낡은 전쟁의 프레임에 갇혀 현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합리적 목표 달성과 제한 전쟁, 애국심을 통한 동원을 주된 골자로 삼는 클라우제비츠적 전쟁론은 오랜 시대에 걸쳐 전쟁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그의 고찰은 현 시대에 들어와 무력화된 것일까?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전쟁의 양상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미국이 자신의 ‘제국적 권력’에 사로잡힌 이상 이라크와 같은 사회의 전망은 어둡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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