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선 / 시인

 

  간단하게 그곳에 대해 말하자면 주말에는 공연을 하고 평소에는 바로 운영되는 커다랗고 텅 빈 지하 벙커 같은 곳. 엄폐할 것들이 많다. 물에 잠긴 주머니칼이다.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 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면 너는 눈을 찌푸릴 것이다. 나무를 붙잡고 속주를 하는 사람과 함께 다리 위에 서 있다. 우리 주류트럭을 들이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서로 묻지 않았다. ‘보위’는 산울림 소극장 맡은 편에 있(었)다. 무단횡단을 하기에는 횡단보도가 너무 가까운 곳이다. 난 기억의 천재이기 때문에 하나도 까먹지 않고 낱낱이 떠올린다. 죽은 물고기가 차곡차곡 물가로 떠밀리는 것처럼. 밤들은 밀려온다. 모르는 노래가 모르는 크기로 모르는 사람들을 애워싼다. 피부 곁을 떠돈다. 조금씩 몸통이 앞뒤로 흔들린다. ‘보위’를 알게 된 것은 몇 번의 공연과 몇 번의 뒤풀이를 통해서다. 그날은 어디선가 어떤 밴드의 공연이 있었던 날이었고 함께 공연을 했던 구성원들과 지인들은 ‘보위’로 몰려가 어느 날처럼 술을 퍼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취할 수 있을 만큼 취한다. 기타와 드럼 혹은 베이스 아니면 드럼 혹은 드럼과 같은 형태로. 폴짝거리거나 흥얼거리거나 빽-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고음으로만 이루어진 노래를 부르는 ‘불길한 저음’, ‘광란Frenzy’이라고 쓰지만 자주 친구Friend로 오해 받는 사람들, ‘백일몽Daydream’ 속에서 자꾸 우산을 잃어버리는 장마철이 흘러간다.

  무관하게 얼굴은 빨갛고 더 빨갛고, 잡은 손을 놓치기 위해 손을 잡고, ‘보위’는 연인의 눈동자를 가르고 차가운 어깨와 어깨를 가르고 이미 출발한 두 발목을 끊는다. 물 바깥에서 아가미가 벌어지는 것처럼. 어떤 온도가 가능할 때 다른 온도는 불가능해진다. Y는 화가 난 무릎을 하고 베이스를 풀어 바닥에 내리친다. 벽에 내리친다. 보위, 보위, 보위…… ‘Murmursloom’ 중얼거리면 딱딱한 막대들이 낱장으로 흔들리며 둘러서는 기분이다. 모르겠는 기분인 것이다. 주인이라기엔 너무 작고 마른, 소녀의 인상을 가진 일본 여자 또 사랑 받는 여자. 장마의 습기를 붙들기에 적당한 코드로. 연인은 음악을 연주해줄 수 없다. 이토록 불길한 얼굴에 대해. 끝나지 않는 밤의 돌림노래에 대해. 단 한 번도 시작한 적 없는 거울 뒤편의 눈동자에 대해. 왜 여기 있어? 왜? 계단을 내려가면 늘 같은 냄새가 난다. 연인이 진짜로 연인을 모른척할 때만 기둥은 유용하다. 냄새는 익숙하니까 너무한 그런 냄새이고 그런 냄새는 정신을 날려버리기에 적당하지 않다. 사라진 걸까. ‘연인을 모른 척 하세요.’라고 포스터에 적혀 있다. 낯설어 보이기 위해 화장을 고친다. 모두 충실하다. 드럼 주변을 빙글 빙글 돌며 쿵쿵 발을 구르며 킥 페달을 부서져라 밟으며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들어온 상태로 영원히 그래왔고 그럴 것처럼. 이젠 없지만, 이젠 없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음악이 내게 보여준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이다. 벌어진 아가미의 빨강. 그런 연출로 시작되는 공공의 연습이라는 것. 손이 너무 많은 음악은 물방울처럼 흩어진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