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 /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텔레비전의 탐사 프로그램이나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사회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제도와 방식이 다양하지만, 공통된 것은 전문가들에게 상당한 보수와 안정된 지위가 보장되면서 동시에 그에 걸맞은 사회적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과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제도화되기 전이었고, ‘과학자(scientist)’라는 말조차 없어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man of science’라 불렀던 17세기에는 과학의 전문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천체 역학의 혁명을 이끈 갈릴레오나 케플러와 같은 사람들도 귀족들의 후원 없인 연구는 물론 생활도 보장되지 않았고, 후원자들의 요구에 따라 별점을 봐주는 일도 흔했다. 그러나 근대 과학의 설명력이 인정받고 과학이 중요한 사회적 제도로 수립된 이래 과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을 이루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과학자들이 자신의 주도 하에 연구하고 그 결과를 소신에 따라 발표할 수 있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갈릴레오의 시대로부터 수백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주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체계적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특히 과학의 거대화와 상업화가 급속히 진행된 1980년대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난 수십여 년 동안 급성장하고 있는 생의료분야의 경우, 대기업에 의한 전문성의 동원이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웨스 레들레’ 소아백신사는 로타 바이러스 백신을 제조해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었다. 로타 바이러스는 설사를 동반한 심한 위장염을 일으키며, 특히 유아와 어린이 환자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 백신은 승인을 받은 지 1년 만에 시장에서 회수됐다. 백신을 맞은 아이들 사이에서 1백회 이상 중증 장폐색의 부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조사 결과, 문제의 백신을 승인한 위원회가 해당 백신 제조업체에서 연구비를 받는 과학자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특정 업체로부터 일정 금액 이상의 연구비를 받는 과학자들이 해당 기업의 제품과 관련된 심사나 승인에 참여할 수 없게 하는 ‘이해상충 방지제도’가 채택됐지만 미국의 경우 온갖 명목의 지원금이 주요 연구자들에게 워낙 많이 제공되는 탓에 이해가 상충되지 않는 심사자를 찾기 힘들 지경이라고 한다.

  생의료분야 이외에도 이런 예는 무수히 들 수 있다. 담배와 폐암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담배회사들이 막대한 연구비를 걸고 논문을 공모하고,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가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다는 연구결과를 위해 천문학적 연구비를 제공하는 석유재벌의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례다. 지난 MB정권 하에서 무리하게 추진되어 최근 들어 수질 오염을 비롯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4대강 사업도 당시 내로라하는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비호되고 정당화됐다. 이것은 특정 정권에 의해 전문성이 정치적으로 동원된 사례이다. 정권에 의해서든 초국적 기업에 의해서든 전문성이 특정한 방향으로 편향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동원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가된다.

  모든 전문성이 그렇듯, 과학의 전문성도 이런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1940년대에 제도주의 과학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과학자들에게 ‘탈이해관계’와 같은 특수한 규범이 작동해서 다른 전문가 집단과 달리 자율적으로 스스로를 규찰한다고 주장했지만 오늘날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학자는 거의 없다. 

  최근 일부 과학기술학자들과 시민운동 진영에서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동원되는 전문성에 맞서는 대항 전문성(counter-expertise)이 요구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주의료원 사태 이후 의료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스스로 통제하고 공중에게 해로운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서는 공익적 전문성을 세워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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