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현재 박근혜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대표하는 개념은 명백히 창조경제다. 지난해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할 시점까지만 해도 경제민주화였지만, 2010년 10월에 스마트 뉴딜 개념이 나오더니 올해 2월 취임사부터는 아예 경제민주화는 하위 개념으로 잡히고 창조경제가 상위 대표 개념으로 정착한 듯싶다.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경제민주화라는 개념보다 창조경제라는 개념이 더 자주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그림. 참조).

<그림. 구글 트렌트로 검색해본 지난 1년 동안의 검색 빈도 추이>

 
 

모호한 창조경제 속으로 들어가는 우리사회

  지난해 대선에서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던 경제민주화의 역사적 맥락은 분명했다. 바로 더는 미루기 어려워진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시민운동의 화두는 불평등 해소가 됐다.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사회를 개혁하여 99%가 더 나은 삶을 보장받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1990-200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 성장기에 감춰졌던 소득 불평등 구조가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수면위로 부상했다. 위기에도 불구하고 상위 1%는 타격을 거의 받지 않는데 비해 서민은 심각한 빈곤으로 떨어져 생존권을 위협받고 중산층은 쪼그라드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고용불안과 경제적 불평등‧불공정의 뿌리이자 부를 독점하는 1%가 있다면 당연히 그 맨 앞자리에 재벌 대기업 집단이 있다. ‘부유한 월가와 가난한 미국 국민’이 있다면 ‘부자 삼성과 가난한 한국 국민’이 우리 앞에 있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배경으로 외환위기 이후 15년만에 부활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종인 전의원은 "1962-87년까지 25년은 압축 성장, 1987년-2012년, 그리고 현재까지 25년이 정치민주화의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경제민주화의 시기”라 규정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가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던 것은 이와 같은 역사적 압력을 정치권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 상 경제민주화 정책과 어울리지 않는 박근혜정부가 집권 이후에도 경제민주화를 완전히 포기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논설실장과의 오찬에서 "중요 법안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이번에(6월 임시국회) 통과됐다. 그래서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경제민주화 입법 7개 중 6개가 됐으니 할 만큼 했고, 이제는 움츠러든 기업들의 기를 살려 투자를 유도할 때라는 뜻으로 읽힌다. 경제민주화 종료 선언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경제민주화를 털어내고 오직 창조경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지금, 창조경제의 비전은 명확한 것인가? 우리도 이제 창조경제에만 관심을 가지면 되는 것인가? 불행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창조경제에 대한 국민인식을 조사한 결과 54.4%가 ‘창조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답한 것을 보면 국민들도 창조경제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이미 반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정부의 모든 정책이나 의제에는 ‘창조’라는 접두어가 따라다녔다. 지난 6월 5일 ‘창조경제 실현계획’발표를 계기로 각 부처는 분야별 후속대책과 사업계획으로 35건을 쏟아내는 등 창조경제 관련 세부 정책 발표도 꽤 있었다. 집권 초기 행정부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했던 것도 창조경제를 이끌기 위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선임을 두고 정치권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인데 지금 은 ‘미래창조과학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마저 들려오고 있다.

창업국가 이스라엘에서 배울 것?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왜 여전히 창조경제는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논리와 정책이 불분명하면 실제 사례를 보면 된다. 역대 정부들도 아일랜드나 두바이 등 다양한 해외 참조 사례를 제시하면서 자신들의 정책 방향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정책의 실제적 형태를 보여주기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점에서도 박근혜정부는 자신이 어느 모델을 참조하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스라엘의 창업국가 모델이 창조경제와 유사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중소기업청은 ‘이스라엘식 창업 프로그램’을 본격가동하고 인큐베이터 운영기관 5곳을 지정하기도 했다. 어쨌든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중요 모토로 내걸고 있는 만큼, 그 모델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경제는 당분간 우리의 관심영역 안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른 국가들과 다른 이스라엘만의 몇 가지 특수성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우선 이스라엘과 미국의 특수 관계다. ‘미국은 코끼리, 이스라엘은 그 위에서 춤추는 발레리나다’라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의 생존에 미국은 필수적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자기나라의 국채 보증을 서주는 그런 나라, ‘작은 미국’ 이스라엘은 모든 면에서 미국과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다.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IBM, 구글, 페이스북, EMC 등 미국의 주력 정보통신 기업들이 최근 3년 동안 이스라엘 벤처들을 인수합병하고 투자하는 현상은 이스라엘의 정보통신 기술이 뛰어나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유대인의 미국 정치에 대한 막대한 로비, 미국인이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호적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병영국가 이스라엘의 특징에 있다. 남녀모두 징병제인 이스라엘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최고 우수한 인재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보 공수특전부대에 입대한다. 그리고 제대 후 군대에서 경험한 기술과 인맥을 기반으로 벤처 창업을 하는 코스를 밟는다. 이스라엘에서는 한 사람의 군사적 경력이 학문적인 경력보다 더 중요하다. 모든 취업 인터뷰에서 지원자들에게 하는 질문이 바로 어느 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일반적인 수학이나 과학 학력 평가는 그다지 좋은 수준은 아니다. 과학을 기준으로 2009년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는 잘 알려진 대로 핀란드가 1위, 한국이 2위였지만 이스라엘은 꼴찌 쪽에 가깝게 분포되어있다. 이는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의해 기초기술 기반이 마련되고 사회에 진출하여 기술을 축적하는 구조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을 참조할 때에는 이런 점들을 유념해야 한다.

더 많은 여가가 더 다양한 창조적 발상을 줄 것

  창조경제 개념 자체는 다양한 차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주는 개념이다. 그러나 창조경제라는 개념에 내제된 특성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다음과 같은 이슈들이 제대로 해결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경제민주화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창조경제를 위치 짓지 말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불평등의 해소,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기회를 확대시켜주는 것은 국민들의 창조적 잠재력을 발휘시키기 위한 기본 전제다. 또한 경제민주화의 결과로 불평등이 줄어들면 사회적 갈등요소들이 현저히 완화될 수 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사회통합을 촉진시켜 국민들의 창조적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이 사회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는 창조경제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이기도 하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불안정한 노동, 좁은 취업 기회 여건 속에서 창조경제를 말할 수 없다. 연간 2천 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것은 각 시민들로 하여금 더 많은 여가 시간을 만들어줄 것이고, 그 시간 속에서 더 다양한 창조적 사고를 하게 해줄 것이며, 최종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많은 시민들이 창조적 활동을 할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어려운 불황여건에서 창업만을 반복한다고 해서 창조경제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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