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상희 / 북디자이너

출처: http://blog.naver.com/goya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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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정역과 서교호텔의 사잇길, 아직은 ‘거대한 홍대’가 닿지 않았던 골목의 콘크리트 건물 지하에서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새어 나왔다. 곁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리석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애초부터 간판은 없었다. 친구로부터, 친구의 친구로부터 그 언저리에 재미있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공간을 채운 사람들. 운 나쁜 어떤 이들은 입구를 찾지 못하고 양화대교 중간까지 걸어간 뒤 되돌아가기도 했단다.
  계단 아래 두꺼운 철문을 열면 무경계팽창에너지가 펼쳐졌다. 공간을 받치는 기둥은 거대하고, 2층 높이의 천정엔 미러볼이 가득했다. 샹들리에와 미러볼에 반사된 빛이 벽면 가득한 것만 뺀다면 차라리 황토찜질방에 흡사한 공간이었다. 이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은 칸칸이 넓고 길었다. 벽에 걸린 원형의 거울 속에 원형의 방이 온전히 들어찬다. 병맥주와 하우스 와인, 간단한 칵테일 따위가 손쉽게 만들어져 서빙 되는 중에 뭔가 제대로 된 안주를 주문해 먹은 기억이 없으니, 공간이 재정난에 시달린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당신들이 옳으니 서로를 믿고 오늘밤을 보내요.’ DJ 박스 윗쪽의 벽면에 무경계의 문구가 쏘아 올려지면, 드랙퀸들과 그들만큼 화려하게 치장한 관객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며 춤과 땀과 음악으로 뒤섞였다. 트루컬러즈라는 이 퀴어 파티는 세 번 정도 이어지며 무경계를 대표하는 파티가 되었다. 독보적인 파티와 공연들이 계속되고, 그런 밤을 사람들은 뜨겁게 기억한다. 하지만 평소 무경계는 텅 비어 있는 날이 많았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마룻바닥은 따끈하고 공기엔 향이 배어 있어 기운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그 곳에 들어서면 세상으로부터 안전한 기분이 되었다. 플라스틱 컵에 담긴 맥주를 홀짝거리며, 익숙하지 않은 담배도 피우면서 우리들은 어떠한 순간을 기다렸다. 반짝이는 곳에서 더 반짝이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래서 몇 번의 밤엔 마주쳤을까. 무경계의 주인이었던 수정언니는 처음부터 2년만 운영하겠다고 다짐했단다. 하지만 그 2년을 운영하는 것조차 버겁게 이어지면서 무경계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경계를 아는 사람들은 작별을 위한 유예기간을 원했다. 3일 동안 파티가 열렸다. 파티의 이름은 ‘무경계팽창에너지’ 입장료는 3만 원이었다. 공간의 한달 임대료인 300만 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다. 별, 코코어, 3호선버터플라이 등 인연이 있던 이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무경계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누군가’ 무경계를 더 오랫동안 지켜주고 유지해 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결국 우리가 될 수 없었고, 사람들은 아쉬운 밤에 함께 모여 작별 인사를 했다. 발바닥이 새까매진 채 우리는 더 기다리고 싶었지. 그 컴컴한 계단 아래에 무경계가 사라지고 우린 가끔 네 평짜리 방에 촛불을 켜고 누웠다. ‘우리는 집에 가기 싫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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