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구조조정과 공대위 대응


  현재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매주 2-3회씩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본교 측의 일방적 행정절차에 대한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지난달 22일과 24일 회의에서는 21일 교무회의를 통해 심의된 구조조정 수정안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정태영 공대위원장(비교민속학전공 3학년)은 “절차상 구조조정이 완료됐고, 학생들 편의를 위해 후속조치를 논의해야 한다”는 본교 측 입장을 전달하며 구체적 논의와 대응의 시급함을 일깨웠다. 이후 23일 교수평의회에서 도출된 결과와 30일 기자회견 및 총장과의 면담, 그리고 이후 개최된 두 번째 문화제, 추후 진행될 학칙개정 절차 등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다양한 대응전략도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제소와 법적 대응, 학생-교수-본부 협의체에 대한 의견, 언론/페이스북 등을 활용한 홍보방안에 관한 내용이었다. 총장ㆍ부총장과의 대화 시도도 계속됐다. 하지만 27일 본부는 교수평의회의 시정 요청과 학생들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한 채, “구조조정은 마무리 단계”라며 학과 통폐합과 해당 4개 전공 폐지라는 구조조정 원안이 포함된 ‘2014학년도 학문단위 및 정원 재조정 결과’를 중앙인에 통보했다.


계몽의 객체들에게 고하노니…


  ‘비민주적/일방적 구조조정 반대’, ‘소통의 요구’, ‘수업(교육)권 보장’ 등은 공대위의 움직임에서 항상 발견되는 슬로건이다. 하지만 의견수렴이나 당사자 논의없이 진행되는 구조조정의 맥락에서, 김호섭 인문사회계열 부총장이 밝히듯 ‘쌍방적’인 구조조정이란 마치 상상적인 것처럼 들린다. 총장은 부총장에게, 다시 부총장은 총장에게 학생들과의 소통이라는 차원을 떠맡겼고 그 와중에 해당 학과 신입생ㆍ재학생의 수업권ㆍ인권은 자연스럽게 탈구됐다. 이러한 형상을 바라보면 구조조정은 기업과 같이 효율성을 향한 논리적 비약을 통해 조직의 구조를 ‘조정’하는 데서 나아가 마치 구성원들의 정신을 ‘개조’하고 ‘세뇌’시키는 것에 그 진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모든 소통을 거부한 채 자신이 내뱉는 말이 곧 진리라 믿는 본부 측 태도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 속에서 어떠한 논리-소통-구조도 필요치 않은 계몽의 주체라는 위치/차원이 덩그러니 출현한다. 이처럼 계몽의 정치를 결정짓는(흔히 본부 측에서 사회적 분위기와 현실이라고 부르는) 장소에는 사회적인 것이라는 토대가 은닉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계몽의 객체들에게는 한 줌의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투쟁은 다른 학내 구성원들의 반감을 사거나 투쟁의 방법론이라는 까다로운 실천전략에 의해 진정한 ‘구조조정의 객체’로 봉쇄당한다. 이를 위해 공대위가 선택한 방법은 새내기 교양학교와 두 번의 문화제, 그리고 성명서와 현수막, 탄원서를 통한 입장표명이었다. 또한 학내 여러 단위들과의 연대를 통해 ‘계몽에 대한 계몽’을 이루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30일 어렵게 성사된 공대위와의 면담에서 이용구 총장은 “구조조정은 수많은 고민을 통해 나온 결과이니 이를 받아들이고 학교 발전을 위해 동참하라”는 계몽적 레토릭을 되풀이했다.
 

 
 

지금 속에서 지금을 싸운다


  물론 본교 구조조정의 역사와 여타 대학들의 상황을 살펴볼 때, 본교 측의 이러한 계몽적 위치성이 쉽사리 분해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또한 분명 공대위의 대응과 투쟁이 점점 어려워지고, 구조조정이 현실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투쟁과 실패에 관한 것이다. 본교 측과 대화를 통한 해결 및 문제인식의 공유지점을 찾기 어려워진 지금, 공대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지속해나가는 힘이 아닐까. ‘더 나은 실패들’에 관여하는 것, 그리하여 “후퇴는 없다”는 부총장의 상징적 문장을 끝까지 밀고나가 스스로의 것으로 만드는 용기(<중앙문화>, 64호)야말로, 지금 공대위를 비롯한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불가결한 태도다.

  예컨대 1960년대 일본의 새로운 학생운동 세력으로 떠올랐던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해방구=바리케이드’라는 역설을 제시하고, 동경대라는 제국주의의 상징 속에서 고립에 기초한 연대를 구축하려 시도했다. 물론 하나의 실패로 끝난 운동이었지만 그들이 말하는 이 역설에 기초한다면 스스로를 가두는 것(바리케이드)은 곧 해방구를 찾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실천 속에서 우리는 ‘지금 속에서 지금을 싸워내는’ 학생-주체로서의 자신을 발견해내고, 비로소 구조조정이라는 타자의 진실 속으로 들어갈 전략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공대위는 지난달 30일 총장과의 면담이 끝난 후, 본관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르고, 다른 누군가에겐 생경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구조조정의 메카로 탈바꿈하는 본교에서 공대위의 실천은 스스로를 가두어 모두를 향하는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이는 대학원을 포함해 전사회적인 범주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나아가 이같은 투쟁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학우들이 단순한 관심이나 감정적 동조의 차원이 아닌, 스스로 권리를 이행하는 주체라는 차원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맥락을 이해하고 직접 실천해나가는 일이다. 또한 교육ㆍ계몽의 객체로서 학생이라는 방관자적 입장을 넘어, 학생사회의 일원이자 ‘대학의 생존과 발전’이라는 모호한 기표의 거부자라는 층위에서 공대위의 활동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관련기사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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