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사회
[사회]분열과 구획의 두려움을 뛰어넘자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김슬기  |  skkim9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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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호]
승인 2013.06.06  0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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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인권위원회 권고안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들이 200만 명이나 된다. 청년들의 실질적인 실업률은 10% 가까이 되고,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다. 그런데도 비정규직의 조직률은 1.8%에 불과하고, 최저임금으로 고통 받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조직률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투쟁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나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기도 하고 체념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삶은 참으로 우울하다. 이런 삶에서 새로운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민주노조운동이 제대로 서고 방향을 잘 잡아 나간다면 이러한 불만과 분노가 새로운 운동으로 폭발할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위계화되고 무력한 노동자들의 삶

  노동자들의 삶이 무력해진 데는 위계화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0년 이후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들의 집단성을 해체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직무와 고용형태를 달리하는 유연화 정책을 활용해왔다. 소위 핵심직무는 정규직 고용을 하지만 성과연봉제 등으로 노동자들을 경쟁시키며, 특정 직무는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주화하거나 계약직을 활용한다. 임의로 핵심직무와 비핵심직무를 나누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면서 노동자들을 위계·서열화한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안에서도 직접고용인지 아닌지, 1차 하청인지, 2차 하청인지에 따라서 노동자들의 권리가 차등된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러한 위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 더해 고용형태는 더욱 복잡해졌고 책임 주체는 희미해졌다. 따라서 노동자의 법적 권리도 제한된다. 파견업체를 통해 여기저기 이동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저임금·불안정노동에 시달리더라도 도대체 누구를 향해 어떻게 불만을 터뜨려야 할지 알 수 없다. 산재사망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하청 노동자들은 현실을 개선하고 싶지만 원청이 법적으로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으니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반면 수십년간 불법파견을 해서 수십억 원을 챙긴 사용자에 대한 벌금은 고작 칠백만 원이다. 사용자들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는 데 더욱 소극적이게 된다. 
  그런데 불만의 방향을 잘 제시하고 앞에서 싸워나가야 할 조직 노동운동이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몇 달째 공전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관심이 없다. 경찰도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집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다. ‘창조컨설팅’처럼 노조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판치고 회사 승인이 취소된 뒤에도 버젓이 다른 이름으로 영업을 한다. ‘컨텍터스’와 같은 노조파괴용 용역깡패 집단도 구속되거나 처벌되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하며 고공으로 올라가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있지만 이 싸움에 힘이 집중되지 않고 있다. 가히 노동운동의 위기라고 말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먼저 민주노조운동을 다시 세우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하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조직운동의 주체를 세우는 것이다. 현재 조직된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운동이 된 것은 자본의 분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이제는 가장 어려운 조건에 놓인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운동의 성격과 의제를 바꿔나가야 한다. 특히 10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조직률이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들은 기업단위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자신의 삶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기업단위의 틀을 벗어나고 노동권과 생활권을 결합한 지역투쟁을 만드는 새로운 운동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운동의 주체로 서있지 않았던 노동자들을 새로운 주체로 조직하려면 권리를 다차원화 해야한다. 지금까지는 사업장에서 노조를 결성해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켜왔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만들기조차 어려운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도 사치로 느껴진다. 설령 사업장 단위의 노조를 만들어 임금과 노동조건을 올린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삶은 충만해지지 않는다. 점차 불안정해지는 노동자들의 삶은 실업부조와 지역사회의 보육시설, 문화활동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기업에서 임금을 더 많이 받아서 ‘소비’하는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 쟁취돼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싸움이 소중하다. 이 싸움의 대상은 자본가집단이 될 수도 있고 정부나 지자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싸움은 한 사업장에 머물지 않는 지역적인 운동으로 확장될 때 가능하다.
  또한 불안정한 시대에서 이제는 노동권도 법적 권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면 부당해고로 법적 소송을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해고의 권리가 자본에게 주어져 있는 고용형태다. 그러므로 이 노동자들에 중요한 것은 ‘부당해고’라는 법적 권리가 아니라 ‘계속 일하고 싶은데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사회화되는 것이다. 또한 최저임금이라는 법정 임금을 받을 권리가 아니라 그 최저임금을 뛰어넘어 ‘누구라도 생활 할 임금을 받을 권리’가 이야기돼야 하는 것이다. 불안정노동자들은 법에 규정된 권리로부터도 배제되고, 설령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법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이들은 이러한 권리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그러한 권리 개념에 입각해 투쟁을 다시 만들어나가야 한다.
   
 

운동의 새로운 의제와 새로운 주체를 세우자

  삶의 불안과 고통은 노동자들을 짓누르고 있기에 어떤 형태로든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이런 불만의 폭발 조짐을 불안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 불만을 정규직에게 돌리거나 사회적 희생양을 만들어 해소하려고 한다. 그리고 고용율을 70%로 올리겠다느니, 복지정책이니 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노동자들의 불만을 관리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정부와 자본의 이런 공작은 아주 잠깐은 불만을 잠재울지 모르지만 이미 거대한 폭발력으로 나아갈 잠재력으로 남아있다. 이미 희망버스로 확인됐던 연대의 기운, ‘갑’의 권력에 대한 사회적 불만 등으로 조금씩 그 폭발력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노동자만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자영업자들, 공동체, 법과 인권을 파괴하고 수탈하면서 탐욕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자본에 대한 저항의 주체는 확산된다. 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우는 이들도 이제는 건설자본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고 평화를 원하는 이들도 그것을 파괴하는 자본에 맞서 싸우게 된다.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자 했던 영세자영업자들도 이제는 대기업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과 농민, 자영업자, 인권과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들의 투쟁이 이제는 이것을 파괴하는 공동의 적인 대자본을 향한 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자본의 탐욕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을 포위하고 극악한 자본이 만들어내는 탐욕의 세계에 대해 문제제기할 뿐 아니라 이제는이러한 삶이 변화가능함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 맹아들을 보고 있다. 치열한 투쟁 그 자체로 정리해고가 더욱 확산되는 것을 막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자신의 문제도 힘들지만 다른 이들에게 더 힘을 보태며 싸움에서 이겨보자고 연대하는 투쟁사업장의 공동투쟁에서, 재기발랄하게 싸움을 만들어가는 학생들의 새로운 운동의 형식에서, 이 싸움에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기 공간에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승리의 맹아를 찾는다. 자본이 만들어놓은 분열과 구획, 고통과 두려움을 뛰어넘는 이들이 많아질 때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전망이자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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