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석 /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대학원 교수

  위험과 재난은 계속해서 우리와 상존해왔다.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나 원자력과 전기 시스템의 과열과 오작동, 건물과 교량의 붕괴, 비행기 추락, 폭격과 테러, 환경 파괴와 훼손, 바이러스 확산과 광우병 공포 등이 물리적 재앙 혹은 현대 재난의 예들이다. 이와 함께 새롭게 정보기술을 통해 나타나는 위험의 영역 또한 확대되는 추세다.

  금융 전산망 해킹, 통신사나 온라인 서비스 사이트들의 고객 정보 대량 유출 사태와 이의 국제 범죄조직에 의한 악용, 국가 전산망의 바이러스 타격, 국민 정보들의 부실 관리로 인한 대외 유출과 피해 등은 정보의 효율적 활용차원을 넘어 정보화 국면 이후의 위험이자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재난 상황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연재해 등의 실제 상황을 지칭하는 ‘재난’이란 용어를 이용해 ‘정보재난’이란 말을 굳이 쓰는 이유는 두 가지 문제의식에서다. 하나는 정보와 지식이 메타 수준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단계를 넘어서 독자적으로 축적되고 유실·유용되면서 사회적 위험도를 구성하는 주요 요인으로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만 보더라도 1999년 Y2K 문제와 CIH바이러스 침해, 2003년 인터넷대란, 2009·11년 DDoS 공격, 2012년 대규모 해킹사건, 올해 방송·금융사 사이버공격 등은 국가재난 상황의 일부로 부각되기에 충분하다.
  ‘정보재난’의 또 다른 쓰임새는 이용자들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나는 비정형의 데이터 정보의 과잉 생산에 있다.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이와 연계된다. 개인 데이터의 경우 가치가 추출될 수 있도록 인터넷 이용자들이 뒤에 남기는 무수한 클릭과 네트상의 동선과 흔적들, 즉 ‘데이터 배출’이 빅데이터의 핵심이 된다. 매일같이 주고받는 ‘자발적’ 카카오톡 메시지와 페이스북의 코멘트들, 그리고 끊임없이 드러낼 수밖에 없는 ‘관찰된’ 위치정보 등은 데이터 배출의 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빅데이터들이 시·공간적 즉시성과 상호연결성을 기반으로 전 세계 어디든 흘러다니고 대량으로 축적·분류되어 특정의 목적을 위해 쓰인다는 점이다. 이는 수집 및 채집, 분류·저장·분석과 통합·생산 등의 순환 고리를 통해 데이터 자체가 정부나 기업 또는 특정 개인에 의해 새로운 가치 창출과 대중 통제의 기제를 만들어내는 상황을 의미한다. 특히 오늘날 빅데이터에 의해 조건화된 정보재난은 적어도 국내에선 다음과 같은 발생 층위를 지닌다.
 
빅데이터 정보재난의 층위들
 
  첫째, ‘내재적’인 층위가 있을 수 있다. 주로 기존의 국민/소비자 데이터베이스 영역으로 빅데이터가 생산·가공되어 유통·축적․분배된 후 네트워크 연결을 통해 흐르는 영역 전체가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와 가공된 지적 생산물들의 내부 위험 요인들에는 대규모 개인정보의 기업 유출과 국내·외 지하거래(네이트/싸이월드, KT의 소비자 개인정보 유출과 중국 암시장의 신용카드 정보로 재가공 등),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개인정보 관리와 통제(청와대 민정수석실 민간인 사찰 등), 시민정보의 범죄 및 공안정보 활용(경찰, 국정원 등의 범죄정보 기록·관리 등)은 주로 기업과 국가에 의해 소비자 정보와 국민들 개인 프로파일 정보를 축적·유용하면서 벌어지는 위험과 재난 상황이 존재한다.
  둘째, 빅데이터영역 간 데이터 정보의 융합 등에 의해 발생하는 정보재난도 특징적이다. 예를 들면 생물학적 유전정보와 개인 신상정보의 결합, 주민번호 시스템과 개인의 각종 의료 및 범죄정보의 결합 등 특정 개인정보들이 여타 정보들과 상호 연동되면서 개인의 정체성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탈취당하는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 구조적 혹은 정형 데이터(식별자 포함)와 특정의 비/무정형 데이터가 결합해 발생되는 위험과 파국 상황을 지칭한다. 이제는 무조건 기억되어 저장되는 현실이 ‘잊혀지고 삭제될 권리’보다 앞서 존재하는 시대가 됐다. 즉 인간의 사이버공간 내 우연과 목적된 행동들 모두가 기억되고 저장되는 현실에서 ‘데이터 알고리즘’에 의한 추출이나 ‘신상털기’를 통한 특정 관계의 추론과 공개가 보다 원활해지는 때가 온 것이다.
넷째, 빅데이터 바깥의 ‘외부적’인 기술 층위에 의해 발생하는 위험 혹은 파국 상황이 있다. 이는 빅데이터 영역과 상호 연계된 또 다른 기술설계 영역을 의미한다. 특정 기술설비와 아키텍처에 들어가는 데이터와 정보가 외부의 다른 빅데이터 위험과 연계되어 있는 경우를 지칭한다. 국가 기간망 시설과 외부 빅데이터의 연동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빅데이터 내부 침입이 특정 설비(송유관·전력·오폐수·핵발전 등)와 설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전에 대비할 수 없는 가공할 파국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빅데이터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문화적 층위가 있을 수 있고, 빅데이터영역과 상호연계된 또 다른 기술설계영역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는 국민국가 내에 존재하는 조직윤리·보안의식·인권수준·사생활보호·정보문화·기술신화 등이 빅데이터 설계부터 관리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지칭한다. 이에 따라 빅데이터 재난 상황을 키우거나 쉽게 등장하는 정치 논리와 반인권 개입의 문제가 고질적으로 존재한다.
종합해보면 정보재난의 시대에는 이렇듯 서로 다른 설계로 구성된 데이터들이 연동·연결되고 영향을 미치면서 (비)의도적 파국의 상황을 맞는 경우가 증가한다. 특히 빅데이터 국면에서 사기업과 국가에 의한 개인 정보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개인 신상정보와 더불어 삶과 관련된 정보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기술․경제의 무한 질주를 막고 빅데이터 위험과 재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의한 빅데이터 활용의 정보 공개와 투명성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거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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