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여성 공간의 부재

  대학원 내 공간문제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매학기 제기되는 강의실·열람실의 부족과 지하에 위치한 연구공간의 열악한 환경문제는 원우들이 실제 이용가능한 공간이 부족한 현실에서 근본적인 대책보다 구조의 재배치나 시설개보수와 같은 일부 개선만으로 변화를 모색해왔다. 따라서 학내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도 사회적 약자의 배려, 권리의 측면보다는 공간 확충이나 개선에 집중됐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공간의 부족문제도 심각하지만 무엇보다 학내 공간을 둘러싼 논의과정에서 점차 개선돼야 할 차별과 배제가 오히려 ‘공간 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내공간 배정과 운영원칙은 공간 효율성의 원리에 지배된다. 즉 얼마나 그 공간을 많이 이용하는지 여부로 다수의 필요가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공간이 갖는 상징적 의미나 인권은 배제된다. 이의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본교 여학생 휴게실 축소다.

‘공간 효율성’에 밀린 여성의 권리

  본교는 지난 2월 서울캠 학생회관에 위치한 여학생 휴게실을 공용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통합휴게실로 개축했다. 이에 따라 기존 여학생 휴게실은 ‘CAU Student Lounge’라는 이름으로 변경되면서 테이블 두 개 남짓 들어가는 공간으로 축소됐다. 즉 작은 공간이나마 여학생 휴게실 존속이라는 명맥은 유지한 셈이다. 이에 본교를 졸업한 원우 A씨는 “리모델링을 통해 축소된 공간이 얼마나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축소의 형태는 지난 2008년에도 진행된 바 있다. 로스쿨 유치로 인해 법학관에 존재하던 여학생 휴게실이 폐지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본교 여성주의 교지 <녹지>(제47호)는 지면을 통해 “여학생 휴게실 축소로 인해 학내 여학생 복지의 후퇴가 우려되며, 이는 최소한으로 제공되던 복지조차 말살시키는 행태”라 비판했다.

  이처럼 효율적 공간 활용의 명목으로 단행된 여성 공간의 축소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한양대 등 경쟁대학이 앞다퉈 여학생 휴게실을 확장하고 모유수유실 등과 같은 여학우의 권리를 위한 제반시설을 마련해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오히려 타 대학들은 기능적·인권적 측면에서 여성 공간마련의 필요성을 절감해 점차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고려대·한양대와 같은 경우 양성평등센터를 두어 센터주관으로 직접 여학생 휴게실을 운영·관리하고 있으며, 연세대·한양대 경우에는 각 단대별로 설치하는 등 학내 공간의 성평등적 차원의 분배가 이뤄지고 있다. 반면 축소로 이어진 본교의 모습은 공간 점유에 있어 효율이 아닌 권리의 차원으로 인식하는 타 대학의 모습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효율성 이데올로기는 고스란히 대학원으로 옮겨왔다.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제기돼 온 여학생 휴게실 등 휴게공간에 대한 원우들의 요구는 공간 효율성의 논리에 밀려 여전히 답보상태다. 따라서 여학생 휴게실 축소를 대학원생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학부생만의 공간’ 혹은 ‘변화’로만 이해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내공간, 권리와 욕구에 따라 재구성돼야

  그렇다면 대학원의 공간 구성에 있어 여성주의적 관점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대학원은 학부보다 상황이 더 열악하다. 현재 대학원을 기준 전체 재학생 중 57%가 여성으로 절반이 넘는다. 여성비율 증가와 더불어 일-가정 균형에 대한 사회적 의제가 형성되고, 학업과 가정을 병행하는 여성 원우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내 여성을 위한 배려나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따라서 단순히 성차이를 강조한 대책보다는 원우들의 실제 욕구에 기반한 섬세한 대응방안이 요구된다. 대학원의 경우 가장 시급한 것은 수유공간의 확보다. 여성공간 문제와 관련해 문성아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회장(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은 “총학에 수유실에 대한 문의가 온 경우도 있고 여학생 휴게실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여러번 있었다”고 전했다. 이종림 씨(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는 “학내 수유 공간이 없어 화장실에서 유축한 적이 있는데 이걸 내 아이에게 어떻게 먹이나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다”며 “수유 공간이 없는 것도 큰 문제지만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 유축한 수유를 어떻게 보관해야 하나 걱정된다”고 답했다. 더불어 “여성이 생리적 현상이나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비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수영 씨(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는 “출산을 한 여성에게 수유실은 꼭 필요한 공간이고, 설치된다면 많은 여성 원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전했다.

  이처럼 학내 여성 공간의 필요성이 적극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본교 인권센터 성정숙 전문연구원은 “사회적으로 불리함을 갖는 집단이나 소수자의 공간을 학내에 마련하는 것은 대학에 요청되는 중요한 인권친화적 정책”이라며 “특히 수유공간은 모성보호와 소수자 배려, 성평등과 인권보호 등 중대한 사회적 가치에 있어서도 대학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기본적 공간인만큼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해관계나 효율성의 논리로 점철된 공간 문제는 이제 단순히 공간 확충이나 환경개선의 논의를 벗어나 원우들의 욕구에 근간한,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따라서 공간문제를 다양한 이해관계와 욕망이 개입하고 충돌하는 장으로만 이해하기보다는 변화하는 원우들의 욕구에 발맞춰 이를 어떻게 담아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 학내 공간의 문제는 연구의 질적 제고와 대학원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성과주의적 목표를 뛰어넘어 기본적 욕구와 권리의 문제로 인식돼야 마땅하다. 본교는 잠정적 약속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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