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1.11 수 11:46
기획문화
[문화] 예술협동조합, 구조적 이원화를 벗어나기김상철 / 예술인소셜유니온(준) 정책위원
윤정기 기자  |  wood01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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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호]
승인 2013.04.24  01: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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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전 세계의 협동조합의 순위를 정리한 ‘글로벌300’(2010년 기준)에는 문화예술분야 협동조합을 찾아보기 힘들다. 분야별 매출액 순위를 봐도 농업과 임업이 5천억 달러로 가장 높고 다음이 은행과 신용조합, 우리에게 친숙한 소비자조합은 3천억 달러 규모로 3위에 해당한다. 통상적으로 문화예술분야가 교육 쪽인 점을 고려해 공공분야로 보면 전체의 1.13%로 200억 원 규모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은 주요 국가들의 현황을 봐도 알 수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이탈리아는 7만 천5백여 개의 협동조합이 있다. 이 중 문화예술 협동조합은 3.5% 정도에 불과한 2천여 개 정도이고, 지난해 기준으로 1만 7천여 개의 협동조합이 있는 스페인에서도 문화예술 협동조합은 1.3%에 불과하다.
 
  지난해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후 곳곳에서 ‘협동조합’ 붐이 일고 있지만 국내 상황도 비슷한 처지다. 2004년에 함께 일하는 재단의 프로젝트성 사업으로 출발했던 ‘신나는 문화학교’의 사례를 보자. 이후 ‘자바르떼’로 이름을 바꾸고 2007년 노동부 인가 사회적 기업이 됐다.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협동조합연구소를 만들고 단체의 협동조합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소외계층에게 찾아가는 문화예술교육을 하겠다는 단체의 취지는 사회적 기업으로 바뀌면서 일선 학교의 방과 후 교사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사기업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협동조합의 성지’라 불리는 원주에서 출범했던 문화생활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지역 유지와 일반회원들이 출자해서 1억 원 정도의 출자금이 마련됐고 조합원 수도 4백 명 가까이 됐으나 지금은 조합원들의 탈퇴로 자본잠식상태고 상근인력도 없는 상태다.
 
  그나마 생존해 있는 문화예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상황도 극히 불안하다. 이탈리아의 A형(조합원 주식) 사회적 협동조합인 ‘바 바라카’는 극단을 모체로 하는 문화예술협동조합이다. 그런데 이 조합은 볼로냐 시로부터 볼로냐 극장운영을 위탁받고 있고, 부분적으로 별도의 공연작품을 올려 조합사업을 펼친다. 그러다 보니 수익구조도 티켓판매 등의 직접수익은 41.6%인데 반해 기부금이나 지원금으로 채워지는 간접수입이 58.4%에 달한다. 마을만들기의 모체가 되고 있는 ‘성미산마을극장’ 역시 현재 수입의 40%가 국가보조금이고 위탁수입이 27%로 간접수익이 67%에 달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보여주는 의미는 의외로 간단하다. 문화예술분야의 협동조합은 힘들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바로 상품화가 가능한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문화예술인의 창작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용역화되는 창작활동은 그 자체로 ‘주체적인 예술창작’이라는 작품의 작가성에 위배된다. 그러면 협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은 창작인가 노동인가. 예술활동의 노동성에 대한 질문은 낯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상사적으로 보면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기존 공공영역에서의 활동들, 예컨대 벽화그리기 혹은 재래시장 활성화에 참여했던 사례를 보자. 통상적인 공공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벽화그리기나 재래시장 활성화에 개입하는 것은 창작활동의 연장이어야 할 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즉 작가들의 예술활동을 위해 주택가의 벽이나 재래시장의 골목이 ‘제공’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외려 마을을 꾸미고 재래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작가들이 ‘동원’된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간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은 동원을 장려하는 사업부서와 예술활동을 제공하는 활동부서라는 이원화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을 협동조합이 바꿀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해외의 문화예술 협동조합이 공간을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에서 제공하는 공간을 위탁운영하면서 지원금을 받고 여기에 추가적인 예술활동을 부가해서 직접 수익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아니면 문화예술 협동조합은 경제조직으로 자립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창작활동을 용역으로 시장에 내놓는 것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 생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장이 갖춰져야 한다. 냉정하게 보자면 전 세계적으로 산업화되지 않는 순수한 문화예술창작물에 대한 시장은 문화예술인들이 자립할 만큼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상적인 문화예술 협동조합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이유이며, 어쩔 수 없이 공적 지원을 매개로 존립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려면 산업구조 내에서 문화예술 노동이 가지는 현재의 조건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과도하게 기술기반형 산업구조로 편입된 문화산업의 특성상 산업 구조에서 생산자들의 정당한 몫을 찾는 과정과 협동조합을 통해서 대안적인 생산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문화예술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안경제를 꿈꾸는 모색에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딛고 있는 발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사이에 모호하게 놓여 있다. 이런 모호함에 대한 해갈 역시 소위 대안경제 내에서의 노동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문화예술 협동조합을 시도하는 다양한 고민들이 이 문제 위에 놓여있다. 문제는 시작됐다. 노동의 재구성인가, 창작의 도구화인가. 문화예술 협동조합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부터 비로소 가능한 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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