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범 /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지금은 들을 수 없지만 예전에 오랫동안 즐겨 들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라는 저녁시간대 방송이었다. 이슈가 됐던 각종 시사문제를 쉽게 풀어주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가슴 깊이 들어주었다. 정부의 어긋난 정책에 대해서는 우리를 대신해 날카롭게 비판해 주던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도 진행자가 아는 체 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던, 김미화 씨 본인의 표현대로 OOOcm의 작은 키로 세상을 보았던 ‘보통사람’을 위한 눈높이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김미화 씨는 더이상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다.

  지난 연말 대선부터 통합, 행복, 복지, 안전, 일자리 등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이 중에서 여야 공히 강조했던 것이 바로 통합이었다. 우리 사회가 깊은 갈등의 골에 빠져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여야 모두 통합을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국민대통합위원회’라는 명칭의 대규모 선거조직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갈등은 ‘다름’의 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사회가 온갖 다른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를 부정적으로 또는 문제로 봄으로써 갈등은 시작된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다른 것을 지향하면 그 사람은 나의 적이 된다. 특히 권력자나 주류가 생각하는 바대로 생각하지 않고, 의도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는 사회를 분열과 혼란에 빠뜨리는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이것이 일상이었던 때도 있었다.

  얼마전 헌법재판소는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놓았다. 유신시대 내려졌던 긴급조치 1, 2, 9호가 헌법에 전면 위배된다는 판결이다. 긴급조치 1호가 1974년 시행됐으니,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에 비로소 위헌결정이 이뤄졌다. 긴급조치는 당시 독재 정부와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범죄시한 것으로서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생각의 자유, 행동의 자유를 부정하고 소통과 통합의 장이어야 할 사회를 분열과 갈등의 장으로 만들어버린 반공동체적 범죄였다. 이 범죄가 당시 대통령에 의해, 정부에 의해, 국회의원들에 의해, 그리고 사법부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됐다. 누구보다 헌법이 지향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주체들이 앞장서서 이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분열의 장으로 몰락시켰다.

  국민대통합을 강조하는 새 정부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과 관련한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장관 등 고위공직자의 인선에 있다. 후보자의 정책 전문성에 대한 논의도 해보기 전에 이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도덕성 논란에 빠진 것이다. 대다수의 후보자들이 일반 국민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정당하지 못한 이익을 추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은 진실된 자기 반성보다는 과거의 관행과 부주의로 그 이유를 돌린다. 정직하게 살아왔던 수많은 국민들을 자신과 같은 부정적 관행에 빠졌던 부류의 사람들로 거리낌없이 격하시켰다.

  작년 8월 헌법재판소는 또 다른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놓았다.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공직자윤리법상의 백지신탁제도가 국회의원의 재산권이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청구한 위헌심판에 대한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백지신탁제도가 공직자로서 국회의원의 공정한 직무수행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민의 신뢰 확보를 위해 유효한 제도라며 합헌 결정을 했다. 공직자에게 엄격한 윤리를 요구하고 일반 국민과 비교해 축소된 사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공직자의 정체성 확보를 위한 방법이며,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권력의 소유자인 공직자가 국민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방법임을 말해준다.

  아이들은 퍼즐 맞추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운다. 퍼즐 맞추기는 서로 다른 것들을 조화롭게 완성해 나가는 작업이다. 조각들이 제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퍼즐은 아름답게 완성된다. 퍼즐을 맞추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다른 것들이 존재함을 배우고, 다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를 배운다. 인내심도 배운다. 시간이 없다고, 빨리 해야 한다고 엉뚱한 곳에 퍼즐 조각을 끼울 수도, 모난 귀퉁이를 잘래낼 수도 없다.

  통합은 ‘다름’의 인정 속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이뤄진다. 이 사회가 우리 이웃들의 가치를 온전히 수용하고, 이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른 통합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은 인간의 존엄, 법 앞의 평등, 차별의 배제, 신체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양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국가의 구조를 받을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벗어나 현실로 나오면 이 가치들이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존엄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법은 불평등하게 작동한다. 차별은 오히려 무차별적으로 이뤄진다. 또한 사생활은 보호가 아닌 감시의 대상이 되고, 양심의 표현은 범죄가 되기도 한다. 인간다운 생활은 일부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헌법적 가치와 심각하게 유리되어 ‘위헌의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주변에는 위헌적인 법과 제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헌적 삶’도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위헌적 삶을 ‘합헌적 삶’으로 바꾸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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