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증여일까? 우리는 수많은 감정을 교환하면서 살아간다. 다만 여기서 피상적으로 ‘교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앞에 ‘등가’라는 말을 괄호 친 것이다. 나카자와 신이치에 따르면, 증여에 관해 말할 때 우리가 오히려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은 바로 (등가)교환이라는 만연한 자본주의 체제다. 요컨대 교환에서는 ‘재화’를 제외한 모든 가치가 소멸한다. 반면 증여에서는 재화와 함께 비물질적 가치들이 함께 전해지고, 증여자와 피증여자는 암묵적 권리-의무의 관계 속에 놓인다. 물론 여기서 연인 관계를 단순한 증여 관계로 치환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랑은 증여의 ‘논리’자체에 포함되며 증여를 추동하는 매개다.

  일찍이 마르셀 모스는 증여를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집단적인 것, 물질적 구체성과 동시에 미(학)적/상징적 가치가 함께 교환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른바 ‘포틀래치’(부족장이 자신이 가진 부와 재산을 증여하거나 파괴해 스스로의 권위를 추구한 축제)라 불리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도 결국 이러한 ‘전체적 급부’, 즉 부의 생산과 분배를 재구조화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는 모스에 의하면 ‘위계의 잔치’다. 답례할 수 없는 증여는 곧 예속을 의미하므로.

  모스 이후, 주로 증여에 관한 발전적 시선은 그것이 가진 역설적곂?瓚� 특성을 파헤치느냐(모리스 고들리에)와 상품교환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교환양식으로 보느냐(가라타니 고진)로 구분된다. 모리스 고들리에는 상품교환이나 증여에서 면제된 ‘실재’로서 양도 불가능한 ‘신성재’가 존재함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증여 속에는 상품의 물신성이 포함되어 있다. 고들리에는 이러한 신성재의 대표적인 예가 화폐와 상품이라고 밝히며, ‘점차 제도화되는 자선 또한 약속의 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기존의 맑스주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지만 상품교환과 자본주의 사회의 지양을 위해 호수제(증여와 답례, 교환양식 A)의 고차원적 회복인 X(교환양식 D)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바라보며 증여의 힘을 경제력이나 군사권과 같은 층위가 갖는 위치와 등치시킬 것을 주장한다.

  작금의 정세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증여에 관해 충분히 사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도 누군가와 주고받는 선물을 다시금 바라보는 것은, 상품(교환)이라는 정언명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유의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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