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강형준 / 문화평론가


  하길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에서 철학과 1학년생인 주인공 병태와 영철은 끊임없이 쫓기거나, 훈계를 듣거나, 맞는다. 장발 단속을 하는 경찰에게 쫓기고, 돈 까먹을 거면 짐 싸서 내려오라며 아버지에게 훈계를 듣고, 학교에서 담배를 핀다며 교수에게 뺨을 맞는다. 맘에 드는 여자는 “뭘 해서 돈을 벌지 모르는 철학과 학생과는 결혼할 수 없다.”며 쏘아댄다. 엄격한 아버지(경찰, 교수, 아버지, 군인)와 현실적인 여자 앞에서 한없이 움츠러든(“나는 바보, 쪼다, 여덟 달 반이에요.”) 병태와 영철은 경찰서에서 도망치거나, 죽도록 술을 마시거나, ‘고래’를 잡으러 무작정 ‘동해’로 떠나는 방식으로 저항하다가, 결국 입대와 자살로 숨 막히는 청년 시절에서 탈피한다. 


  약 40년이 지난 오늘, 그 어디에도 청년들을 주눅 들게 하는 ‘엄격한 아버지’는 없다. 경찰이며 교수며 아버지며 군인은 권위도 힘도 없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이들은 부족한 밥그릇을 위해 싸우는 ‘경쟁자’ 혹은 내 처지를 이렇게 만든 ‘원흉’에 가깝다. 홍상수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에서 여학생과 여관에 갔다가 그녀를 좋아하는 남학생의 분노에 겁이 나 어쩔 줄 몰라하는 교수가 전자라면, 양익준의 <똥파리>(2009)에서 한때 폭력을 휘둘렀다가 이제 아들에게 매일 얻어맞는 존재인 아버지는 후자다.
  ‘아버지’의 시대는 가버렸다. 이제 시대정신은 아버지에서 ‘자본’으로 바뀌었다. 자본은 더 이상 청년을 훈계하지도 때리지도 않는다. 일하려는 자가 넘치고 돈을 쓰려는 자가 넘치는 사회에서 자본은 그저 미소지으며 가장 능력있는 자를 뽑거나 돈을 빌려준 대가만 받으면 된다. 들뢰즈에 따르면, ‘아버지’의 시대가 곧 미련하게 일하는 근대적 ‘두더지의 시대’였던데 반해 ‘자본’의 시대는 영악하게 자기계발하는 탈근대적 ‘뱀의 시대’다. 전면적 금융화로 표상되는 이 시대의 자본은 훈육 대신 빚과 일자리로, 채무와 경쟁으로 삶의 모든 부면을 통제한다.  


  뱀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의지해야 할 새로운 ‘아버지들’이 있다.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독설을 퍼붓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눈높이와 말투로 말을 건네는, 궁극적으로는 성공의 길을 알려주는 이들, 멘토라는 우스운 이름으로 알려진 이 시대의 셀레브리티들 말이다. <청담동 앨리스>(2013)의 좌절한 국내파 인턴사원은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 ‘시계토끼’를 유혹하고, <광고천재 이태백>(2013)의 지방대 중퇴 간판장이는 광고의 비밀을 알려 줄 ‘마사장’에게 무릎을 꿇는다. ‘드림워커’를 기른다는 <김미경 쇼>에서 청년들은 쉴 새 없이 멘토들의 말을 받아 적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를 ‘채무자’로 만들어 포획겶萍淪求� 뱀의 시대에 아무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은 이 새로운 아버지들 앞에서 눈을 반짝거린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정언명령이라면, ‘동해바다의 고래사냥’ 같은 허망한 이상을 좇는 것 보다야 현실적 생존전략을 들려주는 이를 이용하는 게 나으니까.
 

  자발적으로 아버지들을 찾아 헤매는 상황에서 ‘청년운동’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그것이 독재든, 권위주의든, 청년운동은 언제나 ‘아버지’를 넘어서려는 불만이 있어야만 꽃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하듯, 탈근대의 지배적 속성은 과거와 미래를 지우면서 주체를 영속적인 현재 속에 묶어두는 것이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 앞에서 ‘청년’은 ‘개인’이, ‘운동’은 ‘자기계발’이 대체하게 마련이다. 청년운동 뿐 아니라 노동운동도, 여성운동도, 학생운동도 이제 더 이상 존재감이 없다(대신 새 정부 아래서 ‘새마을운동’이 다시 뜰 예정이라고 한다). 이 추세를 거스를 강력한 동인은 지금으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자본에 포획되지 않고 멘토/아버지라는 상상적 해결책에도 기대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홀로 서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버거운 시기다. 그렇게 홀로 선 주체들이 손을 맞잡고 함께 공부하고 경험을 나누는 것,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바로 그런 작은 연대(새로운 ‘바보들의 행진’)를 조직하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이 악독하고 영악한 시대 ‘너머’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밑거름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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