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2.28 금 17:55
특집
[픽션]P와 N 사이오창록 / 문예창작학과 석사수료
한경은  |  femiwalk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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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호]
승인 2013.03.06  21: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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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의 최근 소식을 접한 건 짤막한 인터넷 기사였다. 무심코 들어간 포털사이트에서 N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P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반값등록금 및 최저임금 현실화 요구 집회 청년유니온…… 연행.’ 전의경들과 드잡이를 벌이는 사진 속에서 N은 여전히 결연한 표정으로 무언가 부르짖고 있었다. 한 손에는 녹아서 이지러진 양초를 위태롭게 쥔 채로.
  벌써 11년이 됐나. P는 N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학과 2학년 선배들이 주축으로 마련한 새내기 환영회였다. N은 총학생회에서 나눠준 후드 티의 모자를 둘러쓰고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저렇게 입고 다니고 싶을까. P는 의아하게 여겼다. 그런데 후드에 가려진 N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촌스럽긴 한데…… 그래도 예쁘다.
  너는 여기 왜 들어왔니? 돌고 돌아 앞에 앉은 N의 첫마디였다. P는 점수 맞춰 들어왔다고 어물쩍 넘기려다, 여기가 취업이 잘 된대서 들어왔다고 답했다. 풋. N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P는 혹시나 대답이 어색했을까 부끄러웠다. 그렇게 물꼬를 튼 P와 N은 대학생활과 전공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술자리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N은 갑자기 주머니를 뒤적였다. 옛다, 기념이다. N은 작은 책갈피 하나를 꺼내 P에게 건넸다. 초록색 네잎클로버가 반듯하게 코팅돼 있었다. P는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내심 촌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어느새 벌게진 N의 얼굴이 꽤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뒤 P는 고백했고, N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N은 잘생긴 사람이었다. 외모도 그렇고, 내면도 그렇고. 다른 선배에게 듣기론 입학했을 때부터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덜컥 운동권 총학생회의 한 직책을 맡고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N에게 몰래 흑심을 품고 있던 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말하자면 P는 그런 N을 단번에 잡은 운 좋은 놈이었다. N은 아는 게 많았다. P는 전공 이외의 다른 분야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N이 어려운 사회과학서적들을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사회문제나 시사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줄 때마다 속으로 우러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N은 항상 가르치려 들었다. 마치 독야청청한 지식인이 무지몽매한 대중을 계몽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이었다. P가 학생으로서 과분한 데이트를 원하거나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해 아무런 견해도 갖고 있지 않으면, N은 늘 다그쳤다. 우리 사이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많아. 우리가 시대의 대학생으로서 고민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지금 이런 것들이 너와 상관없다고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그건 틀린 생각이야. 너의 생계와도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문제라고. 너도 그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야. 상대적 약자인 청년과 학생들을 착취하는 사회를 향해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주장해야만 해. 이런 의지의 목소리들이 결국에는 사회구조를 바꿀 거야. 나는 취미로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야. N의 어조는 구호를 외칠 때처럼 단호했다. N이 그렇게 고압적으로 나올 때마다 P는 어쩔 줄 몰랐다. 열변을 토하는 N 앞에서 P는 그저 관조자일 뿐이었다. 확실히 N의 언어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때로는 정말 아니꼬운 적도 있었다. P는 자기 말만 늘어놓고 학생회장의 호출로 자리를 떠나는 N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만 볼 수밖에 없었다. 


  P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방이 아닌 쌍방의 연인으로서 N에게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자신도 취미로 연애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깟 학생운동이 뭐라고. 연애도 제대로 못하면서 시대의 대학생이 어쩌고저쩌고. 데이트도 늘 칙칙한 총학생회실이나 캠퍼스에서 해결해야 했다. 결국 P는 극약처방을 내놓기로 했다. 그러나 N은 무섭도록 ‘쿨’했다. P의 결별 선언은 기다렸다는 듯 즉각 수락됐다. 두 달 하고 아흐레. 남은 건 N의 체취가 묻은 후드 티와 촌스런 책갈피뿐이었다. 아직 섹스도 못해 봤는데. P는 그길로 후드 티를 총학생회실에 던지고 나와 버렸다. 책갈피는 찢었다. 끝이었다.
  P는 상사의 꾸중을 피해 회사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녀는 날 좋아했을까. 나름 첫사랑이었는데. 짧은 연애 기간 동안 N의 속마음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P는 담배 연기를 허공으로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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