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2.28 금 17:55
특집
한국 청년학생운동의 과거와 현재최철웅 / 문화연구학과 박사수료
박지혜 기자  |  utois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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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호]
승인 2013.03.06  13: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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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한국사회의 제도적 민주화를 이끌고 대안적 이념을 생산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던 ‘학생운동’은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1990년대 이후 고등교육의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지식엘리트로서 사회운동의 주축세력 역할을 하던 ‘대학생’의 특권적 지위와 위상은 사라졌다. 어느덧 청년세대는 실업과 빈곤 등 사회경제적인 곤경에 내몰려 미래를 잃은 세대로서 우리 사회의 난제이자 치유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학생운동 ‘종언’의 선언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구석이 있다. 이미 90년대 내내 대학가에선 ‘학생운동의 위기’에 대한 지난한 반성과 대안 모색의 시도들이 존재했고, 끝내 어떤 전화의 계기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소멸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세의 한복판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주체는 어쩔 수 없이 단기적 시야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청년학생운동의 (불)가능성의 조건을 사유할 수 있는 역사적 시야를 확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가능했던 학생운동은 변화한 정세 속에서 새로운 과제와 전망을 모색해야만 하며, 한국 청년학생운동의 역사에 대한 탐색은 오늘날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무엇을 취하고 버릴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청년학생운동의 약사

  일제강점기 3.1운동,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으로 전개된 청년학생운동은 주로 지식인층이 주도하는 가운데 부르주아 민족주의적 성격과 사회주의적 성격이 혼재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서구식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민족주의를 학습한 청년지식인층은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반북·반공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으면서 사회주의 계열 청년운동의 흐름은 약화되고, 청년학생운동의 흐름은 이승만 정권하 부정선거 반대투쟁으로 시작된 4.19 혁명, 박정희 정권하 1969년 3선 개헌 반대운동 등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형태로 분출하게 된다. 박정희 정권 시기 청년운동은 ‘긴급조치 9호의 시대’로 대변되는 제도적인 탄압 속에서 실패와 좌절로 점철되고, 주로 소규모 인자들의 ‘비합법 지하투쟁’의 형태로 전개됐다.

  1980년대 이르러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은 이념적으로 성숙하고 조직적으로 체계화 되면서 사회운동의 주축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70년대 말 노학연대의 흐름과 80년 5월 광주항쟁의 상흔은 학생운동이 과거의 자유주의적 한계를 벗어나 ‘민중주의’와 ‘노동운동 중심성’으로 정향되는 단절적 계기가 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84년 학원자율화 조치 등의 유화국면을 통해 학생운동의 급진화를 저지하려 했으나, 이를 계기로 오히려 학생운동은 외연을 넓히고 내용과 형식을 다양화한다. 학생운동권은 비합법 소규모 시위 형태를 벗어나 대규모 정치집회와 투쟁을 벌이고, 대자보와 유인물 등의 선전매체를 적극 활용하고, 총학생회 등 학생자치기구들을 구성했다. 또한 이념서적의 출판이 활발해지면서 학생운동 주체들의 의식은 물론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과 담론의 지평이 확대됐다. 이를 통해 학생운동 안에서 ‘사상 노선’을 둘러싼 논쟁도 본격적으로 전개됐고, 한국사회의 성격과 구조적 변혁의 방향성에 대한 입장을 중심으로 크게 민중?민주주의적 흐름과 민족통일을 추구하는 흐름으로 갈라진다. 

  1980년대 학생운동은 87년의 6월 항쟁을 계기로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무너뜨리면서 정점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후 학생운동 진영은 정치적 민주화와 냉전체제의 해체, 경제성장과 분배구조의 개선에 따른 소비문화의 확산 등 변화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이념적 혼란과 방황을 겪게 되고, 권위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조직행태와 학생회 조직의 관료화라는 내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학생대중에 대한 영향력과 지도력을 점차 상실한다. 노태우 정권의 폭압성을 고발하려다 오히려 운동권의 폭력성에 대한 도덕적 질타 속에 실패한 91년 ‘열사투쟁’, 관성적으로 ‘통일투쟁’에 매진하다 결국 대중의 외면 속에 철저한 탄압을 받은 96년 ‘연대 사태’는 사실상 한국 학생운동의 한 국면을 마감한 단절적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고등교육의 대중화와 학생운동의 위기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가에선 ‘학생운동의 위기’와 그에 대한 ‘반성’의 담론이 주를 이룬다. 학생운동의 위기는 대체로 구태의연한 운동방식과 조직문화 등 내부적 차원에서 이해됐고, ‘오래된 습관’에 대한 ‘복잡한 반성’이라는 주체적 실천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전까지 내려오던 민중?민족주의적 흐름에 더해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과 유럽 신좌파의 영향을 받은 ‘문화주의적’ 흐름이 이 시기에 새롭게 부상한다. 대학문화가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에 침윤되고, 개인주의적이고 탈정치적인 성향의 ‘신세대/X세대’ 대학생들이 진입하던 상황에서 문화주의적 학생운동은 교육운동, 문화운동, 페미니즘, 소수자, 일상문화 등 다양한 의제들로 학생운동의 외연을 넓히고자 했다. 문화주의적 학생운동은 일상에서의 진보적 실천을 강조하고,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면서 새로운 감수성과 삶의 태도로 특징되는 일종의 ‘스타일의 정치’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한 가치들은 유연성과 심미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과도 친근성을 갖았고, 의도하진 않았겠으나 결과적으로 학생운동의 탈정치화에 일조했다.

  1990년대 진행된 학생운동의 위기는 내부적 한계에서 기인하기도 했지만, 고등교육이 대중화되고 대학생 수가 대폭 늘어나는 외부적 조건 속에서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었다. 이미 70년대 10%에서 80년대 초반 30%대로 급증한 대학진학률은 95년 대학정원 자율화 정책과 1997년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채택되면서 가속화되어 2003년에는 대학 입학자의 수가 고등학교 졸업자 수를 초과하는 수준에 이른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논리에 따라 특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추진된 95년 ‘5.31 교육개혁’을 통해 대학 간 경쟁이 심화됐고, 국가와 자본은 재정위기를 이유로 대학 구조조정을 강제했다. 99년부터 전면 도입된 학부제와 학사관리 엄정화 등의 정책은 대학 입학 이후에도 끊임없는 내부경쟁을 강제했고, 연대의 체험이나 집단적인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들을 봉쇄했다. IMF 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취업문마저 좁아지면서 대학생은 더 이상 80년대와 같은 특권적 지위와 취업과 고용에서의 안정성을 누리지 못하게 됐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청년학생운동이 주로 청년층의 사회경제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계층운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고등교육이 일반화되는 경향은 일견 고등교육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과 계층상승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과주의’에 근거해 오히려 위계적으로 청년계층을 분할하고 차이 체계를 심화시킨다. 학력자격의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이르면서 사교육과 해외유학, 스펙 쌓기 등 경쟁에 투여해야 하는 자원의 양은 무한히 증대되고, 상층부를 향한 경쟁은 더욱 격화된다. 성과주의에 따라 대중 내부에 위계와 경쟁을 부과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고유한 경향이다. 자본주의는 대중교육의 보급을 통해 축적에 필요한 지식노동자를 육성하는 한편 성과주의를 통해 대중을 내부적으로 분할하고 위계화하면서 계급투쟁을 대중 내부의 경쟁과 투쟁으로 전치시킨다. 나아가 자본주의 불황기에는 실업률 상승에 따른 사회문제를 봉합하고자 오히려 고등교육을 팽창시키고, 교육위기를 은폐하기 위해 이른바 ‘교육개혁’을 시도하는 것이다.

  대중교육의 역사는 교육이 자본축적에 포섭되는 한 지식에 대한 권리가 온전히 실현될 수 없으며, ‘학력자본’을 매개로 청년계층 내에 무수한 분할과 경쟁이 강제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새로운 청년학생운동은 교육문제가 계급착취 및 위계화의 중요한 ‘매개 고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소수의 기득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수를 배제하는 사회구조적 모순에 적극 맞설 필요가 있다. 대학개혁이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와 노동시장에서의 위계화라는 사회적 조건들과 무관하지 않은 만큼 사회운동, 노동자운동과의 적극적인 결합도 중요하다. 운동의 과제가 아무리 명확하더라도 그것을 수행할 주체적 역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청년세대는 경쟁을 내면화한 존재이며, 매우 파편화되어 있고, 지배이데올로기를 체화하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과거 학생운동이 수행했던 것처럼 대학 내에 대안적인 커리큘럼과 지식공동체를 재건함으로써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적인 대항주체들을 길러내는 시도들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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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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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다들 잘 아는 내용 요약해놓은 수준의 글이군요... 요즘 박사는 아무나하나봅니다.
(2013-03-29 12:36:08)
학생
조직적 연대와 집단적 저항 대신 교양수업 잘 받고 돌아가 평소보다 조금 더 진보적으로 개별적 실천을 하는 것으로 자위하는, 혹은 필자가 특권적으로 가치를 부여한 "문화주의적 학생운동"의 아나키적 실천은 과잉결정된 모순의 과학적 분석과 비판을 선진대중조직의 구축 속에(또는 노학연대 속에) 수행하며 변혁을 모색해왔던 학운의 치열함에 비한다면 귀여울 뿐이다.
(2013-03-26 22:28:10)
학생
단편적인 글.. 학생운동의 역사에 대해서도 수박겉핥기로 일관. 학생운동이 위기이나 끝난건 아니다. 전화의 노력과 유의미한 실천과 계승도 있었다. 필자가 학생운동 근처도 못가봐선지 2000년 이후는 더듬지도 못했다. 결국 "지식공동체 재건"이 "대항주체"의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어설픈 결론으로 끝맺었다. 그러나 지배계급에겐 자유인문캠프류의 비판적 문화운동이 공포가 아니라 자신들의 관용을 선전하는 적극적 계기일뿐!
(2013-03-26 22: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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