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 이화여대 철학과 외래교수

 

  좋은 광고와 나쁜 광고를 가릴 수 있을까? 사실 이는 기준과 주체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평가가 가능한 복잡한 문제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무조건 상품 판매에 도움이 되면 좋은 광고일 것이고, 소비자들에게는 재미있고 기발한 광고가 좋은 광고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나쁜’ 광고는 있다. 자사 제품을 팔기 위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하고 나쁜 실천을 하게 만드는 경우다. 환경 관련 단체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나쁜 광고상’을 여러 번 수상한 어느 탈취제 광고를 예로 들어보자. 
 

  초등학생 아들의 방을 환기시키려 하자 아들이 춥다며 불평을 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탈취제. 다국적 기업의 상품인 이 탈취제는 일관된 컨셉에 주인공만 바꿔 가며 여러 편의 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욕실이나 카시트 등 환기가 어려운 공간이나 빨기 어려운 물건, 혹은 손님이 급히 들이닥쳐 환기가 어려울 때 제품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자연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 화학제품으로 대체하도록 소비자를 현혹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판단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무작정 화학제품을 사용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상술을 넘어 부도덕에 가깝다. 유아용품에 사용하도록 권하는 것 역시 문제다. 세균은 죽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화학성분으로 인한 2차적 피해는 감춰지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 광고만의 문제는 아니다. 찾아보면 자사 제품을 선전하기 위해 중요하고 심각한 위해를 가리거나, 실천의 주체로 아이들을 내세우는 등,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광고들이 상당하다. 그러나 사실 광고를 주문하고 만드는 쪽에 자기 검열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레이더를 작동시켜 문제 삼아야 하는 쪽은 소비자들이다. 광고는 세상의 욕망과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세상에 무엇을 욕망할지 가르치고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소비의 지도서와 같다. 저항하지 않으면 지도서가 시키는 대로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그저 카드를 긁는 기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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