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들은 <꽃잎>, <동막골> 등 영화뿐만 아니라 ‘광년이’를 전면에 세운 김미영의 만화 <야! 이노마>에서도, 사진작가 박영숙의 <미친년>시리즈에서도 머리에 꽃을 꽂고 있다. 심지어 수많은 화가들이 그린 미친 오필리어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미쳤다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계의 눈으로 보면 미친 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주가 폭락에 대한 근심이나 명품백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일 따위야말로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비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삶을 사는 미친년을 합리적인 이성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도 없다. 미친년은 미침으로 인해서 인공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연이 된 것이고, 그 주요 행동으로 자연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며 예쁘기까지 한 꽃을 꽂는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꽃과 같은 자연물이 된 미친년, 그 미친년은 타자다. 이미 여성은 이성과 문명에 대립된 위치에서의 ‘자연’이다. 원형적이고 원시적이며 신비한 존재다. 그래서 더욱 두렵거나 불미스럽고 꺼림칙한 타자가 된다. 
 

 
 

  미친년들 대부분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어떤 외적인 충격과 직면한 경우가 많다. 전쟁이란 참혹한 과정을 몸소 겪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부모가 군인들에게 살해당하고, 자신도 겁탈을 당한 불행한 여자 말이다.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사건에 직면할 때는 일반 사람도 본능적으로 기억을 삭제하거나 왜곡시키는 등 자신의 정신활동을 중지시키기도 한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비자발적인 반응이다.
 

  위의 예를 종합해 미친년이 꽃을 사랑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불운에 마주쳤다. 둘째, 그녀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본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셋째, 그녀는 자신이 능동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약한 대상을 찾았다. 이렇게 미친년이 왜 꽃을 머리에 꽂는지 예상하는 순간, 다시금 확인되는 것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미친년의 행동을 결정하는 세 가지 계기, 즉 불행한 현실, 행복에의 욕망, 그리고 능동성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녀는 사실 전혀 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삶에 절망해 허무주의에 깊게 젖어 살고 있는 ‘정상인’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한경은 편집위원 | femiwalk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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