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규 /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연구교수

     
 
탈냉전 이후 콩고민주공화국, 라이베리아, 알제리, 앙골라, 르완다, 수단 등에서 일어난 분쟁은 유럽에서 주요 뉴스로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유럽인들에게 이런 사건은 아프리카에서 늘 일어나는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러나 면적 7만1,740㎢에 인구는 5백만 명밖에 되지 않는 아프리카 서부의 작은 국가 시에라리온에서 일어난 분쟁의 비극이 <블러드 다이아몬드>(에드워드 즈윅, 2006)라는 영화를 통해 (일부분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지구촌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자원분쟁에 단순한 경제적인 문제 외에 다른 문제도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시에라리온 정부군과 반정부군 간에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10년간 2십만 명이 사망하고 2백만 명이 난민이 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원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 때문에 소년병이 생겨나고, 내전 와중에 손이 잘린 장애인이 10만여 명이나 발생했다는 점이다. 자원분쟁은 누가 일으키고, 누구를 위해서 일어나며, 분쟁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완전한 해결책은 없는 가? “아프리카에서는 항상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요즘 다시 새롭게 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기서 ‘새로운 것’은 부정의 의미인가, 긍정의 의미인가?

 

아프리카 낙관론과 자원


90년대는 탈냉전과 동시에 아프리카 발전의 제4시대를 맞이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다. 제1시대는 유럽인에 의해 자행된 300년간의 노예무역 시기였다면, 제2시대는 유럽 식민지배의 착취로 인한 방황의 시기였다. 또한 제3시대는 60년대 각 국가의 독립 이후 국민통합과 경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일어난 정치·사회·경제적 왜곡과 실험의 시기였다. 마지막으로 제4시대는 90년 이후 ‘수입된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혼란 속에서 수많은 내전의 아픔을 발전과 동시에 겪은 시기이다. 이 시기 아프리카는 전체적으로 연평균 5%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기근, 에이즈, 사막, 종족 분쟁, 절망의 대륙 등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부정적 수식어는 블루오션, 아프리카 르네상스, 경제 파트너, 떠오르는 대륙 등 기적의 수식어로 바뀌었다.


그러나 원조와 부채 탕감을 위해 수입된 민주화와 국가의 시장독점을 무장해제시킨 시장경제가 과연 아프리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됐는지는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를 숲에 비유해 보자. 많은 나무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념과 발전모델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숲에 가려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무참히 부러지고 쓰러지고 있다. 그 숲에는 정체성 없는 잡종들이 원래 잘 자라야 할 나무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썩게 한다. 이들이 바로 금, 다이아몬드, 우라늄과 같은 작으면서도 운반하기 좋은 고부가가치 자원들을 먹고 사는 ‘나쁜’ 나무들이다.


90년 이전까지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분쟁은 종족, 종교, 국경 등이 원인이었고, 국가 혹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고 확립하려는 내부적인 요구가 강하게 작동됐다. 이러한 분쟁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언어, 문화, 공동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국경을 획정한 1884년 베를린회의에서 연유했으며, 독립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민통합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비극이 됐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권력 분점, 전통문화의 가치 준수, 지방분권화 등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치유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분명히 내부적 발전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반면 94년 르완다의 종족 대학살을 제외하면, 탈냉전 이후 분쟁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원을 권력의 수단으로 하려는 정부와 반정부군 간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자원을 매개로 한 분쟁은 지역 외부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연결된다. 이를 틈타 공동체 혹은 종족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것보다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개인의 한탕주의가 번성했고, 이는 다른 분쟁의 양상을 만들어 냈다.


 
‘우리’가 아닌 ‘나’만을 위한 자원이 문제다


아프리카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관계는 ‘우리’다. 아프리카에서는 개인의 행복과 출세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공동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 특수한 문화가 있다. 따라서 각자는 모두를 위해 일하고, 모두는 각자를 위해서 일한다. 이러한 문화가 종족 및 혈연공동체를 뛰어넘어 국가공동체로 승화되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우리’ 문화는 3백년가량 지속된 노예무역과 식민지배, 숱한 분쟁을 거치면서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든든한 끈이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우리’의 존재는 ‘소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종족 및 종교분쟁이 큰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아프리카에 불어닥친 세계화 속에서 자원개발을 위한 진출이 용이해진 다국적 기업과 정부 사이의 힘겨루기는 자원 선점 싸움으로 나타났다. 다국적기업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문제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뿐만 아니라 반정부 단체와도 접촉하며 자원개발 독점권을 획득하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한편 아프리카 각국 정부는 민주화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재원이 줄어, 국민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국민의 지지를 받고 권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잃어버렸다. 또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위와 파업, 공무원의 태만,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 그리고 국제금융기구가 행사하는 정부에 대한 압력 등으로 국가의 영향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졌다. 식민 경제의 유산인 카카오, 바나나, 커피, 목화 등의 생산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국가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이것들의 수출만으로는 이전만큼 큰 이익을 거둘 수도 없었다. 따라서 남은 방법은 서방 국가와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금, 다이아몬드, 망간, 코발트 같은 미래형 산업자원을 채굴해 판매하는 것 뿐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 특히 고부가가치 자원을 보유한 국가들의 정부는 점점 정치권력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 등 자원으로 인한 심한 내전을 겪었던 국가들은 대부분 한두 차례의 정권교체를 경험했다. 이들 국가들은 아직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해, 정권교체 시기에 정부의 힘이 약해진다. 이를 틈타 정부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지역적 할거를 통해 정부를 위협하고, 한 국가 안에서 또 다른 정부처럼 행세하고 있다. 신정부이든 반정부 세력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영역을 유지·강화해 줄 수 있는 ‘우리’가 아니라 ‘나’를 위한 고부가가치 자원이다.

 

멀리 있지 않은 탈식민주의


탈냉전 이전에 아프리카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면,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엔 자원에서 나오고 있다. 자원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용되려면 ‘강한 국가’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 구조조정, 시장경제 등으로 무장이 해제된 아프리카 정부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기껏해야 공적 개발 원조(ODA)를 끌어들여 가난을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정도다. 여기서 ‘강한 국가’란, 8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대중을 이끄는 탁월한 영향력과 능력을 가진 정부를 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는 아프리카에 무조건 ‘작은 정부’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프리카는 노예무역, 식민지배, 각종 분쟁 및 구조조정 등 인류가 태초부터 가졌던 모든 경험을 충분히 다 겪었다. 이제 국제사회는 아프리카의 자원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우리’가 아닌 ‘나’를 조장하는 다국적기업들의 문제부터 해결한 뒤에,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리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물론 아프리카인들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또다시 세계화라는 이른바 21세기형 ‘문명화’의 굴레에 가두고 아프리카를 끊임없이 뭔가 해보려는 식민지적 사관은 이제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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