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사회
[메디컬 디스토피아]한국 의료 대안에 대한 소고이원영 / 중앙대 의과대 예방의학과 부교수
박지혜 기자  |  utois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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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승인 2012.12.03  20: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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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선진국들의 건강정책은 국민들의 평균기대수명의 연장보다 사회경제적 계층간 건강수준의 격차를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평균기대수명 80세를 90세로 늘리기보다 평균수명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사회경제적 계층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켜 전체 평균수명을 늘린다는 전략이다. 발달된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치료서비스를 공평하게 잘 배분하면 이러한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 사회경제적 건강 격차는 국가 간 혹은 국가 내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러한 건강 격차의 결정 요인에는 의료서비스 접근의 차이뿐만 아니라 소득, 직업, 사회적 지지와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제도의 위기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부터 2003년까지 공무원 및 교직원, 그리고 부양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은 최상위 25% 그룹의 평균기대수명은 약 75세인 반면 최하위 25%는 69세이다. 또한 2000-2004까지 서울시 사망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성과 연령을 보정한 구지역 간 사망률은 강남구가 인구 10만 명당 1,809명인 반면 동대문구는 2,334명으로 약 525명의 초과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태어난 동네에 따라 기대수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건강 격차는 전체적으로 선진국보다 높은 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사망률 격차가 선진국들이 약 1.6배인 반면 우리나라는 3.5배로 보고된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 겪는 고용 불안, 장시간 노동, 각종 차별 등으로 인한 건강 관리 소홀은 결국 질병을 키우거나 야기할 가능성을 낳는다.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의 빈센트 나바로 교수는 현재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자유주의 국가인 미국이나 영국보다 건강 격차가 더 적고 더 높은 평균기대수명을 누리는 이유는 경제적 부가 아닌 정부의 사회복지지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한 사회의 건강 격차를 줄이는 데 노동조건이나 사회적 차원의 복지지출 수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의료 혹은 건강정책에 대한 논의는 의료제도뿐만 아니라 건강과 사회구조의 관계 등으로 더 확장돼야 한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대의학이 건강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발달된 현대의학의 혜택이 불균형적이라는 데 있다. 영국의 일차 진료의사이며 의료정책 연구자인 줄리안 투도 하트는 1972년 의학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잡지인 란셋에 <inverse care law>를 발표했다. 이 글은 의료서비스의 제공이 시장에 맡겨질 경우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곳일수록 수요와 공급 간 역상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법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소득층 암환자들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의학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충분히 받지 못해 고소득층 암환자보다 사망률이 더 높다. 농·어촌지역은 낙후된 응급실과 부족한 응급의학 관련 의사, 간호사 등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의료기관을 전전하다가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출산 시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어 도시로 나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의료서비스 제공에 있어 국가의 개입은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며, 그 개입 정도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나라는 영국이나 북유럽국가들처럼 의료서비스를 국영하며, 가장 소극적인 나라는 서비스 제공과 재정의 대부분을 민간부문에 맡기고 정부의 역할은 주로 모니터링과 최소한의 규제만 맡는 미국식 의료제도를 따른다.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 제공의 90%를 민간부문이 맡고 있지만 모든 의료기관들이 국민건강보험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 강제지정을 받고 있다. 의료재정의 60%는 사회보험이나 정부예산 등 공적재원으로 조달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두 유형 사이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국민 의료보장제도는 의료서비스의 접근성, 의료기술 수준, 전 국민으로 확대된 의료보장의 보편성을 고려해볼 때 비교적 성공적인 모델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의료비 본인부담수준이 OECD 평균인 20-30%에 미치지 못하는 40%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약 30년 만에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의료제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첫째,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매우 압축적으로 의료보장제도를 구축하다 보니 많은 내재적 모순들이 축척돼 있다. 민간부문의 급성장으로 인한 공공의료부문의 위축, 의원?중소병원?대형병원 간 무한 경쟁, 병상 및 고가장비의 과잉공급 등 의료공급체계의 비효율성과 낭비적 요소들이 가속화되고 있다. 둘째, 아시아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국가경제정책이 여전히 건재해 보인다. 의료부문에서 이를 반영하는 현상이 각국 정부의 의료관광 활성화정책이다. 수익이 되는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 국부를 창출하자는 것인데 인도, 태국, 파키스탄, 중국, 말레이시아 등이 대표적인 나라이다. 현재 이들 나라 중 일부에서는 의사들이 모두 외국인 환자를 돌보는 영리병원으로 유출돼 공공병원이나 농촌지역 병원의 진료대기 시간이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영리병원 도입 및 확산, 민간의료보험제도 활성화, 한미 FTA체결로 인한 다국적제약회사들의 국내 약가정책에 대한 영향력 증대 등이다.
 

보편적 의료보장제도 도입돼야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의료보장제도를 선진복지국가모델로 바꿔 나가는 데 필요한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개혁과제를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국내 경제정책에서 비롯한 영리병원도입, 민간의료보험활성화 등으로 대표되는 의료서비스의 시장화 노선을 폐기하는 것이다. 특히 영리병원의 도입과 민간의료보험활성화는 현행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붕괴시킬 만큼 파괴력이 크다. 많은 자본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영리병원과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갖는 본질적인 속성인 의료서비스 가격과 제공량 규제 경향은 서로 공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생명보험회사들이 판매하고 있는 실손형 의료보험은 의료비 본인부담의 일부를 부담해주므로 결국 실손형 의료보험가입자들은 직장 및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인상시킬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실손형가입자 증가는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붕괴시킬 개연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의 행정비용은 전체 지출의 5% 이내지만 각종 생명보험회사들의 광고 등 사업비용은 보험료의 약 20%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현재 의료비 본인부담수준이 약 40%로 전체 병원비가 500만 원이 나오면 약 200만 원은 환자본인부담이다. 이와 같이 다소 어정쩡한 본인부담 수준은 저소득층계층 입장에서는 매우 불만스럽다. 과거 본인부담 수준이 높을 때는 의료기관 문턱이 높아 잘 이용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문턱이 낮아져 자주 이용하다보니 40%의 본인부담비용이 저소득층한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유럽, 영국, 독일 등 선진복지국가들처럼 의학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 누구나 재정적 부담을 갖지 않도록 본인부담 수준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셋째, 본인부담 수준의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감축하기 위한 선행 조건은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의료공급체계의 개혁이다. 현행 의료시스템에서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 투입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효율성을 유도할 수 있는 병원입원환자 모두에 대한 진단군명포괄수가제도를 도입하거나, 국민들이 적절하게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치의제도의 도입, 과잉 공급된 병상과 고가장비에 대한 지역별 총량규제제도의 도입 등이다.

  세계보건기구는 2005년 세계총회에서 회원국들에게 모든 국민들이 재정적 부담없이 양질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이른바 보편적 의료보장제도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정적 여력, 정부나 보험자의 운영 역량, 그간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정착될 동안 이해관계자들 간 갈등과 합의가 되풀이 되면서 축적된 사회적 역량 등에 비춰볼 때 보편적 보장제도의 도입은 정치권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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