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1.4.7 수 01:33
기획과학
[인간 행동에 관한 새로운 연구] 진화론이 특정한 가치를 옹호하는가?김성한 / 숙명여대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 조교수
박효진 기자  |  saviniencd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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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호]
승인 2012.11.18  13: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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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를 발간한 이래 진화론이 윤리에 무엇을 시사하는 가에 대해서는 계속 논란이 있어 왔다. 이에 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19세기에 이르러 신 중심의 서구 전통 사회에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진화 과정을 신을 대신하는 힘으로 간주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둘째, 과거로부터 철학자들은 도덕감의 기원과 특성을 해명하고자 했는데, 일부 학자들은 진화론을 이용해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이 둘 가운데 전자는 진화를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진화를 우주를 관장하는 힘으로 파악하고 이로부터 특정한 윤리적 결론을 이끌어 내려 노력했다. 이처럼 진화론을 형이상학으로 탈바꿈시킨 19-20세기의 일군의 사상가들을 흔히 사회진화론자라고 부르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허버트 스펜서가 있다.


스펜서를 위시한 사회진화론자들의 입장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다윈의 진화론이 자연계에 대한 설명에 머물러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진화론을 인간 사회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 확대 적용하고자 했다. 이들은 우주를 관장하는 힘으로서의 진화가 삼라만상에 두루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 다윈과 달리 사회진화론자들은 진화를 곧 발전의 원리라고 생각했다. 다윈은 진화를 어떤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는 의도적인 운동이 아닌 맹목적인 자연력의 작용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여긴다. 반면 사회진화론자들은 진화가 더욱 복잡하고 완벽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셋째, 사회진화론자들은 다윈의 ‘자연선택’을 ‘적자생존’으로 해석했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 사회 또한 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장소다. 여기에서는 오직 적자만이 살아남을 따름이며, 약자는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인 자연적 진화 과정의 산물이므로 이에 개입해 시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회진화론자들의 입장은 다양한 방식의 차별과 약육강식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됐다. 그래서 인간을 진화론적인 시각에서 다루려는 시도는 이들을 정당화하는 이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제기됐다. 먼저 진화 과정 자체는 도덕적인 함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에 따르면 진화 자체는 선이나 악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진화의 진행 과정을 진보라고 말할 수 없다. 더불어 ‘진화’는 여러 분과의 수없이 많은 가설체계와 검증 과정 등을 총괄한 단어로, 우리가 진화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 또는 상호 간의 존중과 사랑을 통해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압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진화는 한두 마디로 요약·정리할 수 있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진화는 약육강식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이론이 아니다. 사회진화론은 진화론을 이용해 사실상 강자들을 위한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했는데, 이는 과학을 빙자한 이데올로기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진화론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규범을 함축하고 있지 않은 가치 중립적 과학 이론이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이 노출됨으로써 진화론을 통해 규범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한동안 자취를 감춘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윌슨이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을 발간하면서 또다시 진화와 윤리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재연된다. 이 논쟁에서 윌슨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에 사회진화론자들이 범했던 잘못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예컨대 그들은 진화론을 형이상학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으며, 대체로 도덕적 판단의 진화론적 기원을 해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유전학을 포함해 동물행동학·생태학·심리학 등 현대 과학의 성과를 두루 활용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래적인 이타성을 찾아냄으로써 도덕성의 기원을 해명하고자 한다.


일부 학자들은 사회생물학의 도전이라는 명목 아래 과학을 넘어 규범까지도 도출하려 했다. 윌슨은 자신의 책에서 생물윤리학을 탄생시켜 기존의 규범들을 일신하겠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도는 과거와 달리 진화가 갖고 있는 막연한 특성으로부터 일정한 규범을 이끌어 내지 않고, 인간에게서 살펴볼 수 있는 공통적인 도덕적 특성에 대한 고찰로부터 일정한 규범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이후 이뤄진 비판적 검토 결과, 설령 과거와 면모가 달라졌다고 해도 진화적 사실을 통해 규범을 직접적으로 도출할 수 없다는 입장이 재차 확인됐다. 다윈이 원래 의도했던 도덕적 현상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벗어나 일정한 규범을 직접적으로 이끌어 내고자 할 경우, 자칫 키처가 말하는 ‘과도한 야심’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 또는 진화적 사실과 학문으로서의 윤리학을 연결해 보려는 노력은 다방면으로 이뤄질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시도가 한결같이 잘못이라고 간단하게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도덕의 본질을 밝히려 노력하는 윤리학의 또 다른 분야인 메타윤리학이 진화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검토를 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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