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인권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사람이 취약해지면 자신들의 요구나 이익을 적절하게 보호할 기회에 접근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건강과 인권’이라는 관점은 다른 집단에 비해 건강을 결정하는 조건(환경, 위생 등)이 열악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불리해 건강의 격차를 경험하는 취약계층의 존재를 인식하게 한다. 건강과 관련된 내적?외적 자원의 격차 때문에 취약계층이 겪는 문제는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얻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생명을 박탈할 위험까지 초래한다는 데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장애인, 이주민, 빈곤층, 구금시설 수용자 등으로 알려져 있다. 

  UN의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은 구금시설 수용자의 건강권에 관해 매우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어서 각 국가의 행형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UN의 ‘모든 형태의 억류, 구금하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에 의하면 수용자에게 ‘필요한 경우 언제라도 의학적 검사와 진료가 제공돼야 하며 그것은 무료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제기준들은 구금시설 수용자들이 신체적 자유의 제한으로 의료서비스에 관한 접근성이 취약할 수 있으므로, 국가는 자격을 갖춘 전문 의료진에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더불어 구금시설 내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는 접근성, 형평성, 질적 수준, 연속성 등에서 사회 일반에서 제공하고 있는 의료서비스와 차별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제기준은 구금시설 수용자가 비록 신체적 자유는 제한됐으나 일반 시민과 같은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대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구금시설 수용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식은 수용자의 처우 개선과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구금시설의 열악한 환경은 범죄 행위에 대한 응보로써 당연하며, 열악한 환경의 수감 생활이 수용자에게 오히려 교정효과를 줄 수도 있다고도 인식한다. 언론 보도와 각종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구금시설이 수용자 교정이라는 목적에 적합한 시설이나 프로그램의 마련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처벌을 위한 수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구금시설 보건의료시스템의 열악함과 구금시설의 환경 및 수용자 처우의 열악함으로 나타났고 결국 수용자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구금시설 의료서비스 현황
 

  2010년 인권의학연구소의 구금시설 수용자 인권 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구구금시설은 총 49개이며, 수용 현원은 4만8512명으로 정원 대비 현원 비율이 1.06배로 초과 상태였다. 또한 과거 3년간 12개 구금시설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중 자살이 14건(총 사망사고의 31.1%)였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수용자는 독거 수용을 원칙으로 하되 특정한 경우 혼거 수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거 수용은 사생활 보호 및 혼거생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정신, 육체적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재범 방지와 구금시설의 안전을 위해서도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조사 결과 독거실 비율은 30% 이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남녀 혼거실의 화장실은 매우 비좁았으며, 여러 명의 세면과 샤워, 용변은 물론 일부 시설에서는 설거지 공간으로까지 사용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구금시설은 충분한 면적의 운동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장이 협소할 뿐만 아니라 별다른 운동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걷기, 달리기 외에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었다. 또한 운동시간도 30분으로 정하고 있으나 운동장으로 이동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포함하고 있어서 실제 운동시간은 하루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의료서비스 제공 수준은 정말 최소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사 대상이었던 구금시설 대부분이 투약 치료와 외부 진료 의뢰에 초점이 맞춰져 단순 흉복부 촬영, 골절상태 확인을 위한 간단한 영상의학 장비 등 기초적인 진료 장비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야간과 주말에는 의료진이 없어서 교도관에 의해 의료체계가 관리?운영됐다. 치명적인 응급상황에 대처할 기본 시스템과 흔한 급·만성질환 관련 약품, 24시간 내내 의료진에 의해 관리되도록 해당 필수 인력을 보유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의료서비스체계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신뢰에 기반한 의사-환자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구금시설 의료서비스체계는 반복적·관행적 투약과, 낙후된 수용 환경 혹은 과밀 수용 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의료행위 요구, 의료진에 대한 수용자들의 근본적 불신 등이 얽히고설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매일 수십 명의 수용자를 진료하는 공중보건의에 대한 인권과 건강권 교육을 실시하는 등 법무부의 "교정보건의료"에 관한 전향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실정이었다.

  현재의 구금시설에는 의료 인력과 시설·장비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표준화 작업은 구금시설에 적합한 필수 의료서비스에 대한 주기적인 교육과 훈련, 적정 선발기준 적용과 처우 개선, 교정의료 목적에 부합하는 시설·장비 등을 통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구금시설 의료진은 전문적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수용자의 치료 문제에 있어 판단하고 집행할 전문적인 권한을 존중받는’, 적어도 구금시설 소장과 수평적 협의를 통한 결정으로 직무 규칙과 지위 규정을 명시화할 필요가 있다.
 

구금시설 수용자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구금시설 안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수용자들은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자율성에 의거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다. 따라서 그들의 건강권을 국가가 원천적으로 완벽하게 책임지고 보장해 줘야한다. 구금시설 내에서 1차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행 ‘응급의료체계’에서와 마찬가지로 2차 병원은 해당 지자체 안에 있는 2차 공공의료기관이나 위탁의료기관, 3차 병원은 해당 광역자치구 내 3차 공공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구금시설 수용자는 일정 기간 동안 구금시설에 격리돼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고 있다. 이들은 제한된 공간과 집단생활에서 오는 심리적 스트레스, 긴장, 불안 등의 요소로 인해 정신적?신체적 질병이 발생할 위험성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마땅히 보호돼야 할 구금시설 수용자들의 건강권은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여전히 인권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구금되어 있다고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면 국가는 그를 구금하는 조건으로 필요시 수용자의 건강을 책임질 의무를 갖는 것이다. 

  또한 수감 기간 이후 사회로 복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수용자의 건강 증진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기본적인 처우로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구금시설이 소외 집단에게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높여주고 건강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시행하게 하는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구금시설 의료서비스가 형평성을 증진시키고 사회 복귀를 앞둔 수용자들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킨다면 이는 지역사회 건강 수준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한 이후 구금시설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많은 노력이 이뤄졌지만 수용자들의 건강권 문제는 질적인 변화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 10여 년간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이 교정직원에 의한 폭력 행위, 수용자 인격 무시와 멸시적인 교정 관행을 바로잡고 교정행정에서 인권이 중요한 가치임을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구금시설 수용자의 건강권 보호를 통해 수용자의 건강한 사회 복귀를 위한 노력을 실행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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