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섭 / 이보섭융연구소 소장

<우리 민담으로 읽는 분석심리학>


  옛날 한 마을에 예쁜 각시와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고 있는 차복이라는 나무꾼이 있었다. 평소 하루에 나무 한 짐을 하던 차복이는 어느 날 가난에서 벗어나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이튿날부터 무리하게 일을 해 두 짐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보니 나무 한 짐이 사라졌다. 계속해서 같은 일이 벌어지자, 어느 날 밤에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둑을 잡기 위해 나무 짐 속에 숨어 누구 짓인지 지켜보았다. 이윽고 달이 질 무렵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차복이가 숨어 있던 나무 짐을 붙잡아 하늘로 훨훨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나무를 두 짐 했더냐? 쯧쯧, 어리석은 인간들! 제 복을 모르고 그리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차복이는 옥황상제임을 알아차리고 나무 짐에서 나와 사정을 얘기했다. 옥황상제는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너의 복이니 난들 어쩌겠느냐?”라고 말하면서 차복이를 창고로 데려가 누군가의 이름이 쓰여 있는 크고 작은 복주머니들을 보여줬다. 그러나 차복이의 복주머니는 작은데다 안에 든 것이 없었다. 한편 그 중에는 유난히 큰 복주머니가 있었는데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석숭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차복이는 옥황상제에게 사정해 석숭이가 태어나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만 복을 빌려 쓰기로 하고 동아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니 그새 며칠이 지나 있었다.

 
 

  나무를 베어 파는 일을 하는 나무꾼은 자연을 가공해 문화를 창조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욕심이 개입되어 도를 지나치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한다. 최근 이상기후와 자연재해가 그 예로 설명될 수 있겠다. 개인적인 삶에서는 사람마다 타고난 복이 있어서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지나치면 화를 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나무꾼의 아내이다. 그녀는 현재의 행복에 만족해 남편이 무리하게 일할 때나 도둑을 잡겠다고 할 때 만류했다. 그러나 나무꾼은 아내를 행복하게 하려는 욕심 때문에 결국 아내를 불행에 빠뜨리게 한 것이다.
 

  아내와 입장을 달리하는 나무꾼은 자신의 의지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자아(ego)의 태도를 상징한다. 짐 속으로 들어갔다가 번쩍 들려서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모습은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가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옥황상제를 만나게 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자아의 상징적인 죽음은 입문의례 원형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세상(의식의 세계)을 떠나서 저 세상(무의식의 세계)을 체험하는 것이다. 동아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은 입문의례 원형에서 죽음 뒤에 따르는 재생과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무의식의 세계를 체험하는 동안 자아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이 민담의 전반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인간에게 할당된 복, 즉 운명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기지를 깨닫게 된다. 따라서 옥황상제와도 협상을 시도하고 설득할 수 있는데 이것과 관련된 것이 트릭스터(책략가) 원형이다. 셋째,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즉 자아가 인도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self)가 인도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차복이의 삶을 통해서 보여지는지, 또한 그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지 다음 호에서 풀어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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